어느 학원에 가야 잘 배우나.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학원은 왠지 다 학원비만 속이고, 제대로 안가르쳐주는 사기꾼 과외선생.
예민해서 살기 힘든 건지.
살기 힘들어서 예민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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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갓'은 GOD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니고,
내가 쓸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를, 대한민국산 순수 "특산품" '갓'이다.
(이렇게 썼는데, 계급적 관점의 '갓'으로 읽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행태이며,
자행되는 "만행"이다.
우웩!
내가 쓸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를, 대한민국산 순수 "특산품" '갓'이다.
(이렇게 썼는데, 계급적 관점의 '갓'으로 읽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행태이며,
자행되는 "만행"이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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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르지 못하고 사는 삶인데.
이런 말을 쓴다는 건 뭔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나갔다.
실은 모든 일들이 손에 안잡히고, 자꾸만 게을러지고,
주변 탓만 하는 듯하고.
뜬 구름은 전혀 내려올 줄 몰라서,
세상이 앞뒤가 안맞는다고만 생각해서..
그런데 그건 사실 전부 '앞뒤에 맞게 살려'고 하는 맹랑한 욕심때문이렷다.
집을 출발해서, 한강변으로, 성산대교 밑을 지나, 강을 따라갔다.
집앞에 던져진, '버려야 할' 강냉이봉지를 들고,
'방금 산' 강냉이인 척 휘적휘적 들고 걸어갔다.
어느새 한강변의 가판점들은 커다랗게 "7"자의 불을 밝힌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들로 바뀌어있고,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지나치면서, 나는 '강냉이'를 과시했다.
꼭 먹을 것인양...
운동보다는 산책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 세븐일레븐을 만났을 때, 그곳에 놓여진 거대한 쓰레기봉지를 발견하고, 맘껏 투척해버리리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른 걸음, 스무 걸음, 아홉 걸음, 일곱 걸음 좁혀가는데,
어떤 조끼 아줌마가 크악한 가래침을 뱉으러 100리터 쓰레기봉지로 다가왔다.
앗, 두어 걸음밖에 남지 않았는데.
휘적휘적 리듬을 죽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크악 퉤!
바시락바시락, 강냉이 봉지는 내 발자국 리듬과 같이 그냥 손에 들려 왔다.
쳇.
강변을 따라 걷는데, 이젠 더이상 쓰레기 봉지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무데나 던져놓고 말았다.
질서를 만들어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사는 대로 질서는 생기는 거라고 마음을 고쳐 먹어본다.
결국 인생은 질러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그냥
독일 남부의 어떤 언덕바지에 도착해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쓴다는 건 뭔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나갔다.
실은 모든 일들이 손에 안잡히고, 자꾸만 게을러지고,
주변 탓만 하는 듯하고.
뜬 구름은 전혀 내려올 줄 몰라서,
세상이 앞뒤가 안맞는다고만 생각해서..
그런데 그건 사실 전부 '앞뒤에 맞게 살려'고 하는 맹랑한 욕심때문이렷다.
집을 출발해서, 한강변으로, 성산대교 밑을 지나, 강을 따라갔다.
집앞에 던져진, '버려야 할' 강냉이봉지를 들고,
'방금 산' 강냉이인 척 휘적휘적 들고 걸어갔다.
어느새 한강변의 가판점들은 커다랗게 "7"자의 불을 밝힌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들로 바뀌어있고,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지나치면서, 나는 '강냉이'를 과시했다.
꼭 먹을 것인양...
운동보다는 산책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 세븐일레븐을 만났을 때, 그곳에 놓여진 거대한 쓰레기봉지를 발견하고, 맘껏 투척해버리리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른 걸음, 스무 걸음, 아홉 걸음, 일곱 걸음 좁혀가는데,
어떤 조끼 아줌마가 크악한 가래침을 뱉으러 100리터 쓰레기봉지로 다가왔다.
앗, 두어 걸음밖에 남지 않았는데.
휘적휘적 리듬을 죽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크악 퉤!
바시락바시락, 강냉이 봉지는 내 발자국 리듬과 같이 그냥 손에 들려 왔다.
쳇.
강변을 따라 걷는데, 이젠 더이상 쓰레기 봉지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무데나 던져놓고 말았다.
질서를 만들어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사는 대로 질서는 생기는 거라고 마음을 고쳐 먹어본다.
결국 인생은 질러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그냥
독일 남부의 어떤 언덕바지에 도착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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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소모하라지. (1) | 2009/03/06 |
오랜만의 포스팅.
막혀있던 혈들을 초큼 뚫어내기 위해서라도 억지춘향 글쓰기를 해야할 때가 아닐까.
맨날 쳐다보고 있는 뉴스들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리겠다. 가공할 손가락으로 내 혈을 뚫어줄 그 사람은 어딘가?
뭐 잠시 쓸데없는 소리좀 하고,
오늘은 언제나 반복하는 정치적 문제로 시작.
꾀꼬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죽는 것도 기술인가 싶다.
으악새는 슬피우니깐.
구 열린우리당 전 의원 우상호께서 파워블로거로 나섰다는 데, (지금은 그의 블로그는 보지 않고, 일단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글을 쓰는 중) 박연차 리스트 관련 문제다.
언제나 터지는 도덕성 논쟁이다.
물타기 전술의 고전은 '비교 우위'다.
간단히 말해 상대평가 전술이라는 뜻이지.
'내가 아무개보다는 낫지 않느냐' 라는 식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뭐랄까 주어가 잘못 되었거나, 문장 자체가 절대 성립불가능한 '거짓 명제'라는 게 핵심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갖고 나서 부터 가장 끔찍한 현실은 누구도 더이상 도덕성의 잣대를 제대로 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버니어 캘리퍼스 라는 측정기가 있다. 19mm의 길이를 20눈금으로 나누어서, 1/20mm 오차를 통해 그 오차범위를 5%로 낮추는 측정기다. 이러한 공학적인 도구로 우리가 도덕성을 측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5%라는 신뢰도로 혹은 누구보다는 좀 더 정확하거나, 낫다는 식으로 들이댈 문제라면, 언제나 우리 국호 대한민국의 점점 더 맑아졌으리라.
386세대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저런식의 상대적 도덕성으로 빠져나가려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세력들에게 내적으로 체화되어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는 이명박의 당선 직전부터 도덕성을 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민적인 의식으로 그를 당선시켰고,
그 안에는 역시 상대적인 비교에서 마음이 작동하는 어설픈 한 표들을 양산해 버린 셈이다.
노무현보다는 뭔가 낫겠지라는 기대감들이 그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1년여시간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터뜨렸고, 그 문제들은 더욱 해운대의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다.
그 가운데 아고라에는 노무현을 그리워 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은 다른 문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대선관련 정치후원금 문제에서 한나라당과 비해 1/10이 넘으면 '하야'를 하겠다고 했던 모습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일단 '하야'라는 단어를 썼다. 틀릴수도 있음.)
어찌되었거나, 그 역시 상대적인 비교론을 통해서 '나는 쟤네보단 좀 낫다. (그러니깐 봐달라)'라는 식의 생각방식이다.
결과적으로 1/10이 넘기도 했었지만, 그 결과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상호의 말들은 언뜻 틀린 바가 없어 보인다.
'정치적 의도'라는 둥의 말은 입장만 바뀔 뿐 언제나 같은 전략으로 임하는 그들의 고전 전술이다.
그러니 더이상 설득력은 없을 수 밖에 없다.
제 살을 진짜로 도려낼 줄 알아야 도덕성은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 상대주의 전술식의 문장은 사실 한 구절만 바꾸면, 점점 신뢰도가 높아진다.
'내가 저들보다는 조금 낫지 않느냐'라는 문장을
'내가 저들보다 좀 "못한" 것 같다. 잘못했다.'고 인정해보면 어떻겠는가?
낮은 데로 임하고, 겸손을 떨어서 자신을 높이라는 고도의 전술적 문장이 아니다.
정말로 스스로 더 잘못한 것들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정치인들은 정말로 없다는 거냐.
대한민국의 도덕성은 언제나 '물타기'로 넘어가는, 담넘는 구렁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ps.
정치인들에게 '도덕' 과목 하나로 일제고사를 시행해보고 싶다.
막혀있던 혈들을 초큼 뚫어내기 위해서라도 억지춘향 글쓰기를 해야할 때가 아닐까.
맨날 쳐다보고 있는 뉴스들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리겠다. 가공할 손가락으로 내 혈을 뚫어줄 그 사람은 어딘가?
뭐 잠시 쓸데없는 소리좀 하고,
오늘은 언제나 반복하는 정치적 문제로 시작.
꾀꼬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죽는 것도 기술인가 싶다.
으악새는 슬피우니깐.
구 열린우리당 전 의원 우상호께서 파워블로거로 나섰다는 데, (지금은 그의 블로그는 보지 않고, 일단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글을 쓰는 중) 박연차 리스트 관련 문제다.
언제나 터지는 도덕성 논쟁이다.
물타기 전술의 고전은 '비교 우위'다.
간단히 말해 상대평가 전술이라는 뜻이지.
'내가 아무개보다는 낫지 않느냐' 라는 식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뭐랄까 주어가 잘못 되었거나, 문장 자체가 절대 성립불가능한 '거짓 명제'라는 게 핵심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갖고 나서 부터 가장 끔찍한 현실은 누구도 더이상 도덕성의 잣대를 제대로 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버니어 캘리퍼스 라는 측정기가 있다. 19mm의 길이를 20눈금으로 나누어서, 1/20mm 오차를 통해 그 오차범위를 5%로 낮추는 측정기다. 이러한 공학적인 도구로 우리가 도덕성을 측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5%라는 신뢰도로 혹은 누구보다는 좀 더 정확하거나, 낫다는 식으로 들이댈 문제라면, 언제나 우리 국호 대한민국의 점점 더 맑아졌으리라.
386세대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저런식의 상대적 도덕성으로 빠져나가려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세력들에게 내적으로 체화되어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는 이명박의 당선 직전부터 도덕성을 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민적인 의식으로 그를 당선시켰고,
그 안에는 역시 상대적인 비교에서 마음이 작동하는 어설픈 한 표들을 양산해 버린 셈이다.
노무현보다는 뭔가 낫겠지라는 기대감들이 그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1년여시간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터뜨렸고, 그 문제들은 더욱 해운대의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다.
그 가운데 아고라에는 노무현을 그리워 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은 다른 문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대선관련 정치후원금 문제에서 한나라당과 비해 1/10이 넘으면 '하야'를 하겠다고 했던 모습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일단 '하야'라는 단어를 썼다. 틀릴수도 있음.)
어찌되었거나, 그 역시 상대적인 비교론을 통해서 '나는 쟤네보단 좀 낫다. (그러니깐 봐달라)'라는 식의 생각방식이다.
결과적으로 1/10이 넘기도 했었지만, 그 결과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상호의 말들은 언뜻 틀린 바가 없어 보인다.
'정치적 의도'라는 둥의 말은 입장만 바뀔 뿐 언제나 같은 전략으로 임하는 그들의 고전 전술이다.
그러니 더이상 설득력은 없을 수 밖에 없다.
제 살을 진짜로 도려낼 줄 알아야 도덕성은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 상대주의 전술식의 문장은 사실 한 구절만 바꾸면, 점점 신뢰도가 높아진다.
'내가 저들보다는 조금 낫지 않느냐'라는 문장을
'내가 저들보다 좀 "못한" 것 같다. 잘못했다.'고 인정해보면 어떻겠는가?
낮은 데로 임하고, 겸손을 떨어서 자신을 높이라는 고도의 전술적 문장이 아니다.
정말로 스스로 더 잘못한 것들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정치인들은 정말로 없다는 거냐.
대한민국의 도덕성은 언제나 '물타기'로 넘어가는, 담넘는 구렁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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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말투가 드럽지만.
그래도..
정말.
***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이 되고 싶고,
@@를 부끄러울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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