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시작한 술기운에,
오랜만에 통화까지 한 학교 동기 녀석에,
영 땡기지는 않지만, 그냥 시작해버린 장예모의 근작 영화에..
그저 기운들과 기분들로 화면을 바라보다 어느 새 일찍 잠이 들었다가 슬그머니 깨버렸다.
잠기운에 나도 몰래, 양말을 벗어 침대밖으로 던져내놨고,
슬그머니 깨고 나니, 여전히 당신은 곁에 없다.
2주일만 참으면 돌아오는 건가?
지난 시간이 2주일인데...
일부러 바쁘게 지냈고, 케말의 트렙토폴리스는 다시 더욱 바빠지는 가운데,
쏟아지는 육체노동의 강도는 거세진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사실 주말 이틀을 밖에 안나가고 부러 쉬었는데...
이렇게 주말을 쉬면서만 보내면, 왠지 월요일이 더욱 두려워진다.
말을 하지 못해서일까.
작업은 더욱 깊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가끔은 후회도 든다.
왜 시작했을까?
사실 뻔히 보이는 한계를 극복할 방법도 없는데, 왜 시작했을까?
그래봤자, 다 투정이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투정이고,
자고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돌아오지 않아서 투정이다.
국민학교 1학년때였나, 2학년때였나...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집은 잠겨있고, 엄마는 간 데 없었다.
온 세상이 무서웠고, 다행히 주공아파트 1층이었던 우리 집의 베란다를 뛰어올라
돌멩이를 던져 창을 깨고 집에 홀로 들어가서
엉엉 울다가 잠들었다.
드디어 PINA 3D를 보았다. 난 피나 바우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이름만 아는 수준, 그리고 무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배경지식이 없다. 그러나 빔 벤더스가 연출했다는 이 영화는, '3D'라는 수식어가 영화 앞에 붙기 시작한 이래 내게 가장 관심이 가는 영화였다.
기본적으로 그동안에 몇 편의 3D 영화를 보면서 (고전적인 기술 말고, 이른바 '아바타' 이후), 난 절대로 3D라는 기술이 왜 영화에 들어와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굉장한 피로감. 보고 있으면 어느 새 눈이 아파온다. 두번째, 인지에 관한 문제, 우리가 정말로 '입체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물론 사물의 크기에 따라서 거리감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말로 '입체'인가 라는 문제다. 르네상스 이후, 회화(2D)에는 '원근법'이 보편화되었고, 이는 사람이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법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서는 이 원근법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회화이후, 카메라가 발명되었고, 이 카메라의 렌즈는 결국 다시 원근법의 원리에 의해서 렌즈가 '하나'로 채택된다. 인류는 태초부터 눈을 2개 달고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은 아마도 '인지'(perception)의 문제다. 원근법을 이용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보는가를 정의한다. 실제로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재현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인지'하느냐 하는 감각을 재현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기에 렌즈를 하나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보편화되어있다. 즉, 사진 기술의 모든 공학에 '시간'의 차원을 입힌 '영화' 역시 하나의 렌즈로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그 자신의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해 '서사'를 도입하고, 영화는 '이야기' 중심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물론 영화의 역사 이래 여전히 치고 나오는 질문은 바로 '형식'에 관한 것이며, 무엇이 영화를 스스로 영화답게 하는가? 어떤 것이 영화적인가? 라는 질문 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두 개의 글을 읽는 것은 나름 3D라는 기술에 대한 어떤 질문 제시로서 괜찮다. 그러나 각자의 답 혹은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리라. 나는 PINA를 보면서 비로서 질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에 몇 편 보지 않은 3D영화에서 왜 나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피곤해만 했었는지.... 일단 PINA의 특징을 몇 가지 거칠게 열거하자면,
- PINA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일종의 공연 기록영상으로써, 내용적인 측면에서 고전적인 서사가 있지 않다. 공연 자체가 중요한 내용이다. - 이 내용은 그 자체로 형식이 된다. 공연을 찍는다는 것! -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거의 없다. 일단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뛰고, 그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 대부분의 FS이거나 와이드샷이 많다. - 3D를 구현하면서, 일반 2D 영화같은 심도(혹은 입체감)를 발견할 수는 없다. 전, 중, 후경에 있는 무용수들은 대부분 초점이 맞으며, 화면에서 튀어나와(!) 보인다. 그래서 눈이 바쁘다. 이것은 보통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한 점일 수 있다.
결국 2D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포커싱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포커스의 이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장면을 비스듬하게 찍어도 모든 사람을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이건 그럼 딥포커스인가? 일단 임시적으로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딥포커스라고 부를수도 있겠다. 그래서 무슨 상관이냐고? 이렇게 찍히고, 영사되는 화면에서 물음은 자연스레 나온다. 3D영화들은 애시당초 3D를 감안하고 찍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면 그 영화들은 아직 3D 시설이 없는 곳에서 본다고 했을 때 그 차이란 무엇인가? 뭔가 좀 도드라져 보인다는 단순한 대답은 여기서 그만. 그런 말을 할 사람들과는 더이상 얘기할 시간이 없다. 3D(로 찍혀진) 영화를 2D로 본다면, 그것은 과연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인가? 그 수식어에 진짜 질문이 없는 수많은 헐리우드 3D영화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들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냥 (3D) 영! 화! 이지. 3D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을 피곤하게만 할 뿐이고. 그 피로감에 대한 보상으로 약간은 도드라진 '신기함'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인식하는 '인지'에 대한 눈속임 뿐.
다시 PINA얘기로 돌아오자. 내가 받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해본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 중심으로 돌아온 세계는 이미지에 원근법을 적용시키면서 인간이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PINA에서는 새로운 지점을 제안한다. 중, 후경 들에 존재하는 풍경과 다른 인물들, 움직임들의 포커스가 맞고, 고스란히 '존재'한다. 이는 마치 르네상스의 캔버스 위에 고대, 중세의 신화적 존재가 입혀진 듯하다. 르네상스 이전의 회화들은 오히려 2D위에 2D처럼 기록했다. 한국의 민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작가의 자의성(혹은 또다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그려진 피사체들이 주를 이뤘고, 거의 대부분의 피사체가 초점이 맞아 있었다. 피사체들은 말 그대로 '존재'했다. PINA는 그렇게 3D를 구현해낸다. 빔 벤더스는 새로운 질문을 야기할 토양을 마련한 셈이다.
이제 영화에서 3D란 얄팍한 신기함을 넘어, 그 자체로 형식이며, 새로운 붓이 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제 포커싱에 의한 감정적 거리 혹은 인지적 거리를 만들어내는 고전적 서사의 영화가 아닌, 그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존적 피사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이제 '3D'영화 시대의 한 발판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영화가 스스로 영화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시선, 르네상스의 원근법에 종속당해서 그대로 재현되는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문학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2시간동안 우리를 붙들어두었던 영화는 이제서야 스스로 종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인간의 인지와는 관계없이 이제 영화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결국 EEF는 그냥 넘어가버렸다. 9월1일이 마감이었던 EEF는 East European Forum이라는 영화제 혹은 마켓의 약자.
우연히 8월 중순에 베를린 탈렌트 캠퍼스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광고였는데, 다큐멘터리 쪽으로 특화된 마켓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로듀서 혹은 감독 중의 한 명이 중동부 유럽 국적을 가진 자'라는 조건이 달려 있었고, 베로니카가 현재 독일 국적을 갖고 있으므로, 자격은 되리라고 생각했고, 물론 제안했다. 며칠을 좀 생각해본다고 한 게 이른바 우리의 공식적인 마지막 회의. 그것조차 이미 2주일이 넘었다.
그 마지막 회의 이후 템펠호프 사건 및 다양한 갈등 들이 폭발해버렸고, 그 사이에 이 마켓 지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액션이 취해지지 않았다.
더불어서 자신이 아프다는 핑계 아닌 핑계가 있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둔 방어수는
i wanted to see you the last days despite my sickness, because today is the 1. sept. Now it´s too late anyway. have a good time. c u soon v*
September 1 at 12:59pm
이다. 뭔가 좀 우스운 댓글. 이상한 식의 바둑게임 같다. 어쨌거나 계속되는 핑계의 연속.
7월말일이었나? 노이쾰른의 구청앞에서 시작되었던 데모. 그리고 그 데모를 주욱 따라가면서 촬영을 진행했고, 그 때 들은 대규모의 데모는 바로 오늘이다. 베로니카에게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사실 고민고민을 했다. 어제 밤까지도 고민을 했다. 뭐.. 그건 다름이 아니라, 여전히 그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
만약 그녀 안에 어떤 적극성이 남아있다면, 그녀 스스로가 뭔가 액션을 취해오지 않을까 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연락은 없었고, 마지막으로 나 역시 예의를 갖추는 멘트를 남겼다.
Veronika, Today is the demonstration. We'll be there from 14hour at Hermannplatz. If you're alright, join there. · · · September 3 at 8:31am 베로니카 hi there. sorry for not coming to the demonstration. i feel much better (finally:) but i had to help felix in the restaurant. i have some appointments tomorrow but i hope to see you very soon. what about monday evening? September 3 at 8:29pm Ru Kyung-rok Chung Yes, see u tomorrow evening. What about 8 pm at Pappelreich. September 4 at 7:08pm · 베로니카 Ru Kyung-rok ChungMihye Lee. just got home from my last meeting. i´ll have time tomorrow around lunchtime... September 5 at 8:44pm · Ru Kyung-rok ChungI'll also go to Kemal's tomorrow. September 5 at 10:22pm
(단 나의 기록을 위해 남기는 것이니, 베로니카의 신상을 보호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링크는 모두 삭제해 놓는다.)
날짜와 시간을 보면, 며칠간의 쪽지가 이토록 무의미해졌다.
나의 글 역시 결국 '예의상' (아니 어쩌면 똑같이 방어를 위한 방어수로) 오늘 아침에 남겨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아무런 연락도 제스처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데모의 규모는 상당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이 데모는, 일단 헤르만플라츠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나름 베를린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재미난 것은 자신의 동네 Kiez의 이나, 거리(Strasse) 이름을 쓴 피켓들이 보였다는 점이다. Mietenstopp 영어로 직역한다면, Rent stop. 즉, 렌트비 멈춰!!! 쯤 된다. 일단, 이건 내용상으로도 좀 신선한 충격이다. 한국과 비교를 해본다면,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이 상황을 멈추라고 모여들어서 데모를 하는 거다. 우리로서는 사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경우인 셈. 줄잡아 1만 단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안에는 가족단위로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도 동네 이웃들과 같이 동네 피켓 아래에서 반상회 하듯이 모여있기도 할 것이다. 저번의 시위 촬영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라면, 적어도 우리가 그저 관찰자로만 있지 말자는 것이었다.
지난 번 시위 촬영에서는 2가지의 큰 질문이 던져졌다.
첫째는, 우리가 그저 촬영만을 위해 따라다닐 경우, 이들은 우리에게 거부감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 특히 아시안이 많지 않은 독일, 그리고 이 동네 노이쾰른의 경우에는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우리들이 그들과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일단 프로젝트의 진행상 어려운 지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둘째는, 첫째와 연관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바로 이 데모의 핵심에 있다는 거다. 결국 수많은 외지인들, 아티스트들, 학생들의 유입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가속화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장 빠르고 밀접한 돈 문제인 렌트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러나 다시 말해 이는 구조적 모순에서 하등 자유롭지 못한 우리로선, 다시금 우리가 비싼 렌트비를 직면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 시위 안에서 참여자가 되어야 하는 거고, 당연히 당사자라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큰 문제, 베로니카가 없는 우리로서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Shillerkiez의 팻말을 찾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주변에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혹시라도 익숙한 얼굴이 보이진 않을까 하여 얼쩡거려봤지만,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통역해 줄 사람은 없고.... 게다가 우리 역시 베로니카 처럼 아무데나 들이대는 성격은 사실 되지 못한다. 베로니카가 필요했고, 냉정하게 말해 베로니카는 그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처음에 안면을 트는 데까지 그녀는 정말 아주 대단한 능력을 보일 정도다. 물론 그럼에도 상대에게서 뭔가 얻을 게 없다면, 나서지 않는 베로니카 이지만... 솔직하게 오늘은 그녀가 좀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컸다. 우리는 시위대를 따라서, 노이쾰른과 크로이츠버그를 행진했다. 골목을 누비면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구조물이 합류했고, 심지어 9. 18 선거를 향한 한 후보자의 사무실을 지나면서, 즉석에서 응원인지 토론인지 모를 상황도 맞이한다. 아나키스트들의 멋드러진 건물 퍼포먼스를 만났고, 일단, 이 시위의 다양성에 또한 놀라고 만다. 미리 나눠받은 오늘 외칠 구호 쪽지. 그러나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고 뜻도 모르는 우리는, 자연스레 목소리가 잦아든다. 유일하게 외칠 수 있었던 구호는 'Stop, stop, stop! Mietenstopp!'. 각 나라별로 시위대들의 구호는 리듬이 다르다. 뭐랄까. 각국에서 일어나는 시위의 구호들을 녹음해서 비교해보고, 그걸 가지고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5년 서울 아트시네마의 '혁명과 영화'에서 한참 영화를 찾아볼 당시 접했던 68혁명 관련한 영화들에서 들었던 구호들이 떠올랐다. '호치민과 마오쩌둥'을 외치면서 연대를 표방하던 유럽의 젊은이들. 그 구호의 리듬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누구에게 말을 걸어볼까, 해보자해보자 말만 하는 미혜와 나. 결국엔 누구에게도 말을 제대로 걸어보지 못하고, 우리는 시위를 마쳤다. 수많은 카메라들과 피켓들과 인종들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우리는 그저 시위의 스케치만을 찍게 되고 말았다. 솔직하게 베로니카가 많이 아쉬운 부분. 물론 내 안에서는 그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평소 그녀의 태도로 볼 때, 사람들을 골라서 얘기하고,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이상한 속단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그저그랬을 거라고 자조해보지만... 뭐 그건 내가 말하는 신포도일 뿐이겠지. 결국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막는 건데... 내가 잇몸조차 되지 못했으니 누구를 탓하랴 싶다. 하나의 큰 맥락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좀 괴로울 뿐이다.
우리의 프로젝트 상으로는 뭔가 대단한 날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색다른 독일 혹은 베를린의 시위문화를 알게 된 것이 뭐랄까 재미난 날이었던 셈이다. 일단 시위의 주제. 그리고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리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주변의 플랏에서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같이 참여하라고 독려하거나 비겁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모습들은 신선했다. 어찌되었거나 그 에너지는 그들을 비난한다기 보다는 같이 하자는 '제안'에 가까운 제스처 였고, 어쩌면 베를린에는 그런 '같이 하자, 살자'라는 어떤 합의들이 깔려 있는 듯이 보였다. 집값이 오르는 것에 대해서 그 가격을 다 주고 들어가지 말라는 포스터(어차피 외지인들은 선택권이 없지만서도)를 붙이는 동네 카페들. 그리고 버젓하게 아나키스트의 깃발을 내건 술집들, 그들이 행하는 가든 프로젝트.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서로간에 어떤 배타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흐름을 위해서는 연대할 줄 아는 성숙함이 있어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내 주관적인 느낌과 예상들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베로니카에게 마지막 기대를 가진 것은 사실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상한 미련. 머리로는 사실 기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으로는 그래도 뭔가를 바랐던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의 위치일까?
아니.. 어쩌면 나 역시 그저 뭔가를 얻고자 하는 치졸한 마음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것에 가까운 듯 해보인다.
케말의 캠코더는 사라졌고... 여전히 많은 지뢰들이 산적해 있다.
결국 남은 것은 그저 아이폰과 아이팟 뿐.
그리고 나와 미혜 뿐이다.
베를린이라는 커다란 플랫폼에서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왠지 다시 원점인 듯한 기분.
매번 이렇게 도돌이표를 찍어야 하는 걸까?
케말의 아틀리에, 트렙토폴리스에서 일을 한지 정확히 2주가 되는 오늘.
아침에 케밀이 다가와서 물었다. 미혜가 캠코더를 어디다가 두었는지 아느냐고.
순간 당황했고, 미혜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미혜가 두었다고 한 곳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무려 4일전.
이 상황은 다시 월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굉장히 정신없는 하루였다. 우리로서는 케말이 고맙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의 정서상 같이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케말, 스티브, 행크에게 월요일에 미혜가 한식으로 점심을 준비해줄 것이라는 예고를 날렸다.
지난 주말은 사실 나름 괴로움의 연속.
일단 베로니카와의 한 판 여파가 컸다. 나로서는 이제 그녀에게 더이상 기대할 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고, 미혜는 이제 나더러 베로니카와 정리해서 일관계를 청산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금요일을 그렇게 돌아와서, 토욜에 티나의 퍼포먼스에 가기전에 3시나 4시쯤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지만, 베로니카는 그냥 간단하게 씹어버리고 5시에 나타나서 티나의 퍼포먼스에 같이 갔다. 이럴 때만큼 무의미하고 짜증나는 순간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는 몸이 여전히 안좋다면서 집으로 일찍 돌아가버린 베로니카였다. 그리고 난 다시 월요일에 트렙토폴리스로 출근. 게다가 한국에서 여행 온 은영누나와 동현국장님을 저녁에 집으로 초대한 상황. 아침부터 굉장히 바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혜는 트렙토로 오기 전, 우리 플랏 1층의 영화촬영 현장에 잠시 묶였다고 했다. 그 영화의 미술감독인 페가 Pegah가 베트남 가족사진이 필요한 데, 어떻게 방법이 없냐면서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미혜를 붙들고 하소연 한 것. 그래서 트렙토우엔 온 미혜는 또 페가의 베트남 가족사진을 구해주기 위해 여기저기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면서, 점심을 준비하는 상황이 된 것. 글쎄, 이 날까지는 베로니카가 뭐라도 하고 싶었던지, 케말에게 몸소 전화를 해서, 케말의 캠코더를 빌려서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 순전히 베로니카 때문이긴 하지만, 별로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일단, 처음으로 베로니카의 그런 배려는 정말 우스운 거다. 그녀가 정말로 프로젝트에 대해서 배려가 있다면, 어차피 자신이 가진 2대의 캠코더 중에 1대를 우리에게 맡겨두면 좋을 일. 그 쯤은 되어야 배려가 아닌가(라고 혼자서 이기적으로 생각해본다). 뭐 어쨌든 몸이 아팠다는 핑계를 받아주자. 아무튼 지난 주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한 앙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난 그런 기분이 나빠서라도, 미혜에게 케말의 캠코더를 쓰지 말라고 했지만, 미혜는 미혜대로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케말의 캠코더로 찍다가 아이폰으로 찍다가, 밥을 보다가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트렙토폴리스의 대문을 위한 기둥이 처음으로 올라가는 날. 나름 기념비적인 날이었으니.... 그렇게 바쁜 와중에 모두가 고되게 일을 하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같이 먹는 점심은 더욱 맛있었고, 우리로서는 뜻깊은 날. 심지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불고기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스티브의 모습을 본 것은 말그대로 '푸하하'라는 즐거운 감탄사.
미혜는 다시 저녁에 볼 은영누나와 동현국장님을 위해서 얼른 집에 돌아가서 다시 저녁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점심먹은 걸 설거지를 마치고, 그러는 사이에 페가를 위해 친구의 친구네 베트남 가족 사진까지 구했다. 그렇게 돌아갔고, 일을 저녁즈음 마친 후, 케말은 화요일에는 내가 굳이 안와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일을 하고 싶다면 오후에 오라는 말. 그래서 차라리 잘되었다 싶어서, 은영, 동현 누나들의 베를린 투어를 위해서 화요일 하루를 쉬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촬영한 걸 백업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케말의 캠코더를 찾았으나 어디에든 간 데 없었다. 그 때만 해도, 케말이 어딘가에 잘 치워뒀나 보다 싶었다. 이건 어쩌면 나의 큰 실수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 때 '백업을 받고자 하는데, 캠코더가 어디있나요?'라고만 케말에게 물었어도 별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 캠코더는 그냥 사라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거다.
엊그제 수요일부터 캠코더를 찾아헤맸다는 케말. 난 아침부터 맞은 날벼락에 다시 미혜에게 전화를 하고, 틈나는 대로 캠코더의 행방을 찾아보지만, 월요일 이후 벌써 4일이 지났고, 캠코더는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상황이 이상하다 싶어서, 미혜를 다시 오라고 불렀다. 나는 어찌되었든 일을 해야하는 눈치가 있으니 마냥 캠코더를 찾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일했다. 미혜 역시 와서 종일 아틀리에를 뒤져봤지만, 캠코더는 어디에도 간 데 없었다. 게다가 더욱 슬픈 일은 케말의 캠코더에는 몇 주전 케말의 아들 결혼식에서 찍은 비디오가 담겨 있었고, 그 비디오들은 백업되지 않은 채, 그대로 캠코더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날벼락. 오전내내 1시간이 넘도록 케말은 행크와 스티브와 앉아서 캠코더의 행방을 한참 얘기했다. 난 그 와중에도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혼자서 아틀리에의 구석구석을 뒤지기만 했을 뿐.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캠코더.
한국사람이라서일까? 우리는 어쨌거나 굉장한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그저 가방에 곱게 놓여있었을 캠코더인데,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후에 사라졌으니 우리는 아무래도 우리탓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일이 끝나고, 1주일간 일한 것에 대한 돈을 받는데 마음이 정말로 장난이 아니게 무겁다. 그리고 다시 케말에게 얘기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했어요. 그나저나 무엇보다도 비디오내용이 걱정인데.. 어떡하죠?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케말의 답은.
그게 어떻게 너희 탓이냐? 그날 있었던 사람들이 몇 명인데... 책임이라면, 모두의 책임이지.
이것 또한 조금 당황스러운 소리다. 그나저나 행크와 스티브의 표정도 좋지 않고,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캐릭터인 만큼, 그에 말이 그렇게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일종의 버릇일까? 자책이든 자학이든... 캠코더는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일을 한 지 불과 2주만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이건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케말의 트렙토폴리스에서 일한지 딱 1주일이 지났다.
비록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에도 얘기했듯, 이 하드한 육체노동에서 이바구가 빠지고 나면 시간은 아주 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래조차 잘 안나오는 육체노동. 그나마 스티브가 있어서 다행이다. 마치 군대 동기 같은 느낌.
더불어 나는 나대로 혼자서 일하는 시간 동안 여러가지 생각에 잠긴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 지, 그리고 앞으로 케말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그제였나. 케말은 나에게 처음으로 사적인 질문을 했다.
보링(Boring) 머신앞에서였다. 철판의 구멍을 뚫고 있었고, 케말이 기계를 다루는 동안 나는 철판을 붙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몸이 가까워지는 순간. 요령을 가르쳐 주고 나면, 자연스레 뭔가 다른 걸 물어보게 되는 법.
몇 살이니?
뭔가 너무 틀에 박힌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반가웠다. 그리고 이어진 잠시간의 대화. 한국이 그립지는 않은지, 돌아가고 싶지 않은지..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있는지... 이런 질문들은 숱하게 들어왔지만, 케말과의 관계에서는 처음이고, 우리는 지금 같이 몸을 쓰고, 그는 나를 지원해주고 있는 특별한 관계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하고, 난 독일어를 못한다. 잠시 밖에 이어지지 않은 대화. 그래도 뭔가 다른 지점이 생긴 듯 하다.
한편, 하루종일 일하면서, 달라진 관계들은 여러가지 면을 가지게 된다. '돈'에 관한 문제, 시간에 관한 문제... 나는 더이상 그냥 다큐멘터리의 일환으로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 그저 케말의 한 보조 혹은 도제라는 또 다른 역할 혹은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 가운데에 언어는 통하지 않고, 난 나대로 긴장한다. 독일어 단어들이라도 좀 더 배워야 한다는 조급증도 든다. 어쨌거나 케말은 많이 답답할 것이다. 커다란 아틀리에 안에는 공구도 엄청나게 많고, 난 그것들의 이름도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는 줄도 모른다. 틈나는 대로, 청소도 알아서 하고 뭔가 정리도 하려고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케말과 나 사이의 공기는 뭔가 좀 다르다. 나는 어쨌거나, 이것도 우리 사이의 진실이기에 미혜에게 얘기했고, 미혜는 얼추 이런 것들을 어제 베로니카에게 전했다고 한다.
어제 미혜는 다시 베로니카를 만났다. 둘이서 Pappelreich에서 한참을 얘기했다. 원래는 East European Forum이라는 다큐멘터리 마켓에 지원해볼 요량으로 만났다고 했다. 문제는 여기에 지원하기 위해서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베로니카는 지금 우리가 무얼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했다. 제길. 그동안에 얘기한 것은 무어란 말이던가. 결국 너도 페이퍼가 없으면 안된다는 거냐. 그래서 미혜가 택한 방법은 일단 영진위에 냈던 서류를 그대로 읽어주는 거였다. 7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 모든 문서를.... 한자어도 많고, 특히 참고자료로 붙여져 있는 것들은 굉장히 어려운 표현도 많은데,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미혜는 기획의도, 구성안을 포함 모든 것을 카페에 앉아서 최대한 영어로 번역해서 베로니카에게 읽어주었다.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써왔었는데, 베로니카는 그동안에 이 표현을 전혀 몰랐던 거다. 미혜가 구성안을 읽어주고, 기획의도를 읽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했다는 후문. 맙소사. 그동안에 얘가 우리의 프로듀서랍시고 사람들 앞에서 되게 있는 척을 하고 다녔던 거다. 베로니카는 다 듣고나서 미혜에게 2가지 질문이 있다고 했다.
1. 그래서 여태 찍은 아이폰 촬영분의 사운드는 어떻게 할 건데? 그 후진 사운드를 만질려면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스튜디오가 필요한 데,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든다. 너희 돈 있냐?
2.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뭐니? 나를 기자라고 혹은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연습 겸해서 1문장으로 줄여서 말해봐.
전해 들은 나로서는 뜨악할 수 밖에 없었지만, 미혜 역시 좀 당황한 듯 싶었다. 게다가 베로니카는 듣는 내내, 이 기획안을 나름 독일어로 자기 노트북에 받아적었다. 중요한 것은 이 지점의 핀트. 같은 팀이랍시고 계속 해왔고, 내내 우리가 뭘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뻐대온 베로니카. 그래서 미혜가 심지어 한국어 기획안을 다 번역해서 읽어주었는데, 다 듣고 나서 가진 질문이 저런 건가? 결국에 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단 뜻일까? 모르겠다. 나는 랑그너에서 티나를 만나던 날, 베로니카가 우리 앞에서 보였던 그 이상한 태도를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듯한 태도. 뭔가 살짝 떠 있고, 분리되어서 말하는 태도. 사실 좀 더 우스운 것은 그렇게 '사운드'의 질을 강조하는 그녀가 진정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는 깊지 않다는 점이다. 테크니컬한 영역에서 마이크를 어떤 식으로 쥐고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단 한 번도 자기가 잡은 사운드를 들어보지도 않는다. 내가 그 마이크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설명도 해주었고, 시범도 보여주었지만, 막상 카메라와 녹음기가 돌아가면, 그저 그 상황에서 '나 좀 봐주세요'라는 식의 이상한 배우의 태도를 가질 뿐, 메이커로서의 프로페셔널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폰의 사운드를 확인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아이폰 사운드는 못쓴다는 식이다. 뭐 이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일단 각설.
이 2개의 질문은 참으로 우스웠다. 미혜는 여기서 한 방 맞은 듯 했다. 뭔가 영화를 '같이' 만드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기획안을 다 듣고서 저런 식의 질문은 하지 않을 텐데.... 같은 팀의 구성원으로서 베로니카는 이 이야기, 영화에 대해서 자신만의 질문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놓고서는 EEF는 왜 지원을 하려고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저 우리에게 취하는 제스쳐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미혜는 어제 여기서 한 방 먹었던 듯 하다. 한편으로 나와 케말 사이의 분위기. 그리고 나로서는 미혜도 베로니카도 케말네로 와서,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그냥 하루쯤은 나와 케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분위기를 조용히 봤으면 싶었다. 하루쯤 그저 아주아주 지루하게 조용히 지켜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했을 때, 또 다르게 보일 공간과 아틀리에를 꾸미는 꿈을 갖고서 마치 그냥 노가다 같은 작업을 계속 하고, 진짜 노가다를 하는 가운데 긴장하는 내 모습들, 내가 답답하게 보일 케말의 기분 등, 새로운 관계와 꺼리는 너무 많다.
그리고 오늘 베로니카와 미혜는 트렙토폴리스에 왔다. 이는 순전히 미혜의 제안으로서 이루어진 일.
케말은 이번 주말에 헬무트네 농장에 갈 계획이었고, 우리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일요일에 은영누나와 동현국장님이 베를린에 오기로 되어있었고, 나는 나대로 너무 오랜만에 해보는 노동이라 몸이 굉장히 힘들어서 좀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쨌거나 미혜가 베로니카에게 케말네로 가자고 제안한 것은 그냥 '닥치고 구경'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베로니카가 오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바뀐다.
글쎄, 이건 분명 편견이겠지만 터키 및 아랍 출신의 남성들은 굉장히 여자를 좋아하고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게 '체코 여자'와의 조합이라서 일까? 순전히 조심해야할 순간들이다. 내 단순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으니, 어찌 되었건 이런 얘기는 나의 '성급한 일반화'임을 미리 밝혀둔다.
배트맨 때도 그랬고, 케말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마커스와도 마찬가지인데, 베로니카는 이상하게도 남자들 앞에서는 그렇게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서 내가 너무 보수적인걸까? 남자들이 그녀와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스킨쉽이 시작된다. 뻑하면, 손을 잡고, 허리를 감고 어깨를 두르는 식. 그러다 보면 촬영 혹은 이야기의 핵심은 어느샌가 엄한 곳으로 흘러가고 만다. 오늘도 베로니카는 미혜의 의도와 나의 바람을 가볍게 배신해버렸다. 심지어 일을 방해한 셈이기도 하다. 케말은 베로니카가 와서 뭔가 총기를 흐린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낮부터 마당에 앉아서 베로니카와 희희낙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베로니카는 그녀대로 그런 대화에 정신이 팔려서, 실제로 내가 바랐던 트렙토폴리스의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는 데 관심이 없었다. 뭐랄까. 그녀 역시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한 분위기다. 엊그제 나에게 Fuck you라고 소리치면서, 자신이 그토록 공치사를 했던 좋은 관계들이란 다 이런 식이다. 실은 자기한테 좋은 관계인지는 몰라도, 프로젝트에 좋은 관계라고 하긴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 7월 한달 내내를 머리를 굴리면서, 백방으로 뛰었던 와인샵이 날아갔고, 정확하진 않지만 왠지 케말과 다른 꿍꿍이를 짜고 싶어하는 듯하다. 비약이자 극단화이지만, 그녀의 행동거지는 왠지 돈많은 남자들을 잡겠다는 심보와 다를 바는 없다. 일단 비약이니 여기서 이건 끝내고... 중요한 것은 내가 케말네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걸 알고, 1주일이 지났음을 들었고, 심지어 맨 위에 쓴 케말이 나에게 한 첫번째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하기 까지 무려 4일이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로니카는 내가 이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 지, 케말과의 관계가 어떤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 궁금해할 줄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냥 심플한 관계의 초보자. 굉장히 5살스럽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고, 자기만이 착하고, 자신만이 유일한 잘난 사람. 좀 우스꽝스러운 것은 케말은 베로니카에게 헬무트네에 같이 가자고 얘기했는데, 그녀는 우리 핑계를 대면서 가지 못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뭔가 이상한 변명. 자기가 싫으면 안가면 그만이고, 자기만의 이유가 있으면 그걸 얘기하면 될 것을... 그녀는 보면 항상 이상한 변명거리를 대는 버릇이 있다. 5개의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결국, 오늘도 얘는 뭔가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을 거다. 정말 중요한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센스는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운 거겠지. 나는 사실 이미 그렇게 예상했고, 더이상 기대가 없었지만, 오늘은 드디어 미혜마저 학을 떼는 상황이 되었다. 불과 며칠만에 미혜마저 베로니카와 같이 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일단 부적격이라는 결론이 이미 났지만, 사실 인간적으로 혹은 친구로서 베로니카에 대한 어떤 안타까움은 여전히 있다. 우리가 베를린에 도착한 지 이제 5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베로니카는 그동안 자신의 오래된 관게들 혹은 신뢰의 관계들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슈테피네 커플, 데이빗네 커플, 그리고 알렉스 외에는 진짜 친구가 없다. 그녀는 스스로도 우리에게 고백했다. 자기는 늘상 외톨이였고, 사람들이 다 떠나가더라고... 영화경력이 길지 않으니깐 영화계에서의 동료가 없다는 점. 게다가 나더와의 작업에서 그리고 관계에서 나더가 뭔가를 다 차단해서 아는 사람들 혹은 동료들이 없다는 것은 감안한다 치더라도.. 이상하게 그녀 주변에는 뭔가 일적으로 깊이 논의가 되는 동료들이 없다. 게다가 은근 어린 여자애들을 질투하거나 싫어하는 성향마저 보인다. 어쩌면 일관적인 건지도... 나 역시 인정욕구에 불타는 사람으로서 좀 느낄 수 있는 동질감(?)같은 건데... 그냥 '나만 봐줘', '나 여자야'라는 식의 행동들. 그래서 자기보다 어린 여자애들을 보면 싫어하고, 그녀에겐 여자 친구가 없다. 더욱 재미난 것은 우리가 베를린에 도착할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페이스북을 쓰지 않았고, 그저 그딴 것을 왜 하냐는 식의 이상한 거만함을 보였는데, 어느샌가 시작하고 지금은 더욱 열성을 올리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페이스북아이디를 물어보고 친구만들기에 열성이라는 거다. 그것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이상한 태도들. 5월에 처음으로 International Filmmakers Network Berlin이라는 모임에 나간 이후, 다른 필름메이커들을 만나서 얘기를 할 때 마다 그녀가 던지는 말. "난 장편만 만들어"라는 이상한 대사. 혼자서 잘난 척 하는 이상한 콧대. 덕분에 배웠다. Hohe Nase. High Nose. 게다가 '훔볼트 나온 여자'. 왜 그렇게 남들을 무시하고, 자기 잘난 척을 하는 건지... 글쎄, 아무래도 자신에게 무언가 없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정말로 자신있는 사람들, 정말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 저런 태도를 보일 리는 없지. 그런 차원에서 인간적으로 보면 참 안타깝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 스스로가 갖고 있는 문제점, 한계들을 모르고 있고, 반대로 더욱 잘난 척 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 뭐랄까. 좀 불쌍하다는 느낌도 든다. 스스로를 조금만 더 잘 안다면, 그래도 뭔가 더 재미난 것을 같이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가정법 문장이 된다. 이젠 더이상 실망할 것도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베로니카와 같이 해오면서 어떤 관계들이 깊어진 게 없다. 그녀 입에서는 자기가 모든 좋은 관계를 갖고 왔다고 하지만, 이 지점이 참 미묘한 것이, 그녀는 분명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약간의 안면을 트는 데까지만 그 능력이 작용한다는 거다. 이건 분명히 그녀의 뛰어난 능력이자, 장점이다. 사실 그 이상이 필요하지 않은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진심을 듣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들의 삶을 그들 입에서 말하게끔 기다리고, 시간을 버리면서 그들을 계속 찾아봐야 한다. 그건 그냥 순전히 방법이 없는 거다. 그녀의 어떤 겉으로의 친근함, 5살의 감성은 언제나 시끄럽게 그리고 (겉으로는)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결국 자신이 말하는 데에 정신을 쏟고 있을 뿐, 상대의 말을 듣는 데에는 굉장히 미숙하다고나 할까? 결국 나와 미혜는 그녀와 처음 가져온 관계들이 여전히 그 상태도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Cell63의 루이자를 더이상 찾아가지도 않았고, 배트맨네에는 자신의 드레스(PCB드레스)를 맞추는데나 정신이 팔렸고, 케말의 타흘레스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다. 딱 거기까지. 결국 나더 곁에서 다큐픽션을 찍는 흉내를 배웠겠지만, 나더가 진정으로 가진 능력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아마 배우지도 못한 듯하다. 이것은 그냥 필름메이커로서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정성일쌤의 표현을 빌리자면, '훔칠' 것이 그렇게 많았는데, 전혀 훔치지 못한 셈이랄까? 어찌되었건 자신만의 질문이 없는 사람은 창작자가 될 수 없다.
게다가 너무 우스운 것은 나와 엊그제 그렇게 대판 하고 나서, 베로니카는 왠지 미혜에게 좀 더 붙으려고 하는 이상한 느낌마저 준다. 정말 5살 베로니카인 듯. 그러나 미혜는 오늘 역시 베로니카의 달라질 수 없는 부분을 보고서 또 충격을 받았고, 같은 여자로서는 너무 이해가 안가는 행동들에 질린 듯 하다. 이젠 미혜도 얘한테서 마음이 떠났다. 이쯤 되면 정말 관계가 막장된 셈이다.
아무튼 수요일 랑그너 '지랄'은 미적지근하게 끝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로니카는 뭔가 이 프로젝트를 버리고 싶지 않은 듯하다. 일을 마치고 같이 돌아와서는 자기네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어찌되었건 갔고, 정성없는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는 뭔가 프로젝트 얘기를 할 것처럼 불러놓고서는 슬슬 눈치를 보는 게 서로가 불편했다. 나는 사실 얘기가 끝난 셈이었고, 나로서는 더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는 게 나의 이유이고, 베로니카는 무슨 꿍꿍이인지 말을 하지 않았다. 뭐 뻔해 보였지만.... 사실 우리가 참 우스울 지도 모르겠다. 독일어도 못하는 것들이 베를린에서 다큐멘터리를 하겠다니? 자기 없이 뭐가 되겠냐는 식일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스스로가 뭘 어떻게 찍어야할 지 모르고, 질문이 없기 때문에 주구장창 나더에게서 따라 배운 '다큐픽션' 얘기만 하는 걸테지. 안타깝게도 나더의 진짜 연출력은 배우지도 못하고, 그저 피상적인 형식만을 흉내내려는 건데. 그게 우리에게 통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기도 하다. 결국엔 이상한 분위기는 그냥 얼었고, 그저 템펠호프 가든에 해넘이나 보러 가자는 걸로 분위기를 무마했다. 그러나 가서도 뭔가 얘기는 하지 않았다. 결국 답답한 나머지, 내일 티나의 퍼포먼스 행사 가기전에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부서지고... 곁에서 미혜는 미혜대로, 자기는 베로니카와 모두 정리가 끝났다면서, 나보고만 정리해서 가자고 한다.
난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미혜 역시 스스로 싫은 걸 얘기할 뿐이고, 베로니카와의 얘기해서 어떤 첨예한 지점들은 내가 얘기를 하게 되면서 가지는 갈등들은 결국 내 몫인 셈인데, 둘 사이에는 뭐가 어떻게 정리가 끝난 것일까. 그게 여자들만의 화법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실상 할 말은 다 했던 셈이다. 그저 한 눈에 보이게도 베로니카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뿐.
결국 미혜와 난 결심을 내린 셈이다.
그저 자기 세계에만 빠진 콧대높은 2편의 다큐픽션(안타깝게도 자기가 참여한 영화 DVD도 못 챙긴) 프로듀서 베로니카와 결별하기로....
그나저나 프로듀서가 맞긴 맞는지도 모르겠다.
밑바닥 확인하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서로가 서로를 많이 다치게 하고...
그냥 솔직하게 자기 한계들을 인정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을 텐데, 그게 그렇게들 어려운 걸까?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잖아. 물론 나도 한 때는 잘난 척 열심히 했던 사람이었지만, 어느 새 그것이 부질없음을 알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ㅅ솔직한 게 답이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라는 점이다.
물론 쉽지 않다. 오래 걸리는 일이고.... 특히 남과 자신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 캐릭터들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더욱 오래걸렸고, 지금도 그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최소한 그 문장의 뜻을 아는 즈음이 내 단계려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