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에 인용된 시.



시 자체는 '번 러살라'라는 시인의 작품.




못생긴 이 때문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여자 
손목을 긋거나 독약을 삼키거나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릴 만큼 대단한 자기혐오까지는 아니지만 
말할 수 없이 비극적인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아버지의 얄팍한 월급봉투로 
만들어진 입고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창피해하는 것 
그런 자신을 보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뚱뚱한 것, 머리가 벗겨진 것, 감출 수 없는 불그죽죽한 여드름 자국 
점심을 먹을 돈이 없는데 배고프지 않은 척하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앞두고도 병을 감추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부끄러운 것 
싸구려 와인을 마셔대는 주정뱅이의 자기 연민 
쓰레기를 치우지 못한 무기력함 
다른 길이 있다 해도 나는 너무 어리석어서 찾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진정한 수치심이란 이런 것 
저주하고 울부짖고 부끄러운 것 
아직도 돈을 갖다 바치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그 '영광' 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고 느끼는 것 
글을 읽을 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 
참을성 없는 계산대 종업원 앞에서 잔돈푼 사이로 꺼내든 배식표 
집을 떠나기가 두렵게 만드는 것 
수치심은 그런 것이다. 

더러운 속옷 
남자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는 듯 
아버지는 사무직이라고 거짓말하는 것 
친구에게 근처 멋진 집 앞에 내려달라고 하고 
그들이 떠나길 숨어서 기다리다 허름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수치심이다. 

잘난 수집광의 말로末路 
겨울에 난방 없는 방 
고양이 밥을 먹으면서도 불경하게도 새 집과 차를 꿈꾸는 것 
그리고 그 꿈조차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는 것 
그것이 수치심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 줄을 덧붙였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렇다.'




이 책은 실은 아래의 두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후, 강연자인 브레네 브라운에게 꽂혀서 사게 되었다.










sympathy 와 empathy 사이

my usual epic 2015. 3. 17. 04:40 Posted by Ru
최근 정혜신 박사의 강연에 꽂히고,

내 스스로의 공감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편집도 하고, 


각종 책을 찾아 읽어보다가 찾게 된 브레네 브라운의 TED강의 및 책.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겠지만..


일단, 영화 제목과도 (지금 현재) 관련이 있으니까.. 브레네 브라운이 설명하는 sympathy와 empathy 사이.








9.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은 단지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의지만 있는 가족은 오히려 가족 구성원을 더욱 부담스럽고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도 배워야 한다.

10.
상대방에게서만 문제를 찾으려고 하면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가족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나의 지난 날 상처와 아픔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데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온통 에너지를 쏟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내가 갖고 있는 나머지 1을 살피고 변화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 가족문제의 1+1을 가족 모두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24. 
어린 시절의 상처는 훗날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곤 하는데, 이런 현상을 전이감정이라고 한다. 프로이트가 명명한 전이감정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상대를 착각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27.
민영씨는 남편에게 전이감정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아버지가 못다 주고 간 사랑을 남편이 채워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실제 부부 생활에서는 남편역할이라도 잘하면 대박이다. 남편은 남편일 뿐, 아버지가 아니다.

28.
부부가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을 계속 해서 하거나, 도저히 부부관계가 힘들어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더욱 개연성이 높다. 전이감정을 일으키키 쉬운 사람들 즉 '높은 전이감정 경향성(high transference liabilities)'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크다.

29. 
그 학생도 자신의 호의를 거절당했을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문제는 쉽게 풀렸을 것이다. 마음이 상해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이 감정이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상처에 기인한 것임을 분리해서 인식한다면 갈등의 해결점을 찾는 일은 매우 쉬워진다.

34. 
가족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외로웠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외롭게 느끼고 일상 속에서 외로운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외로움을 느낄 때 이 외로움이 자기 내면에서 온다는 사실을 모른다.
... 동창모임이 지루한 것은 .. 동창모임에 있는 내가 외로운 것이다. 나 자신이 동창들과 비교하면서 때로는 열등감을 느끼고 마음 불편해 하는 것이다.

37.
프롬은 상담이란 '자기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을 따져보면 상담을 받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 치유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앎으로써 불행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래 내가 어린 시절 외로웠고 상처받았지.'라고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정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안다'라는 말을 뜻하는 단어가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어에서는 '안다'를 뜻하는 단어가 5가지가 넘는다. 에리히 프롬이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은 곧 자기의 상처를 마음과 감정으로 직면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38. 
외로움의 실체를 안 다음에는 이제 매일 일상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오면 그 감정에 함몰되어 고통받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을 객관화시키고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된다.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올 때면 "그래 이것은 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의 관계 패턴과 감정 채널을 반복해서 재경험하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 설득하면서 순간 치밀어 올라온 외로움과 불안을 잠재우고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치유라는 말은 상처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지난날의 상처는 깨끗하게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날의 상처로 더 이상 현재의 내 감정을 다치게 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39.
우리는 어떤 일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정비소로 보낸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유독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가 수천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기계라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인 인체에 비견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또한 우리 몸이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사람의 마음만큼 심오하고 섬세할 수는 없다. 열 길 물 속으로 아는 것보다 몸 속 한뼘 안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트라우마를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울 때는 서둘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69. 
"혹시 나도 결혼해서 부모와 같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

96.
(안데르센의 경우) 비록 불행한 가정사를 가졌으나 글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99.
바로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직면'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없었던 일로 애써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마주보는 것을 말합니다. .... 이쯤 되면 왜 똥떡이 특별한 재료나 형식 없이 급하게 만들어졌는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상들은 사건이 발생한 즉시 똥떡을 만들어 아이의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회복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준 똥떡을 통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날 다시 변소에 갈 수 있었습니다.

100. 
모든 트라우마의 치료에는 이러한 '똥떡'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를 입으면 우리 마음은 자동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그런데 방어기제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고 회피시키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더러 대개 일을 더 키우곤 합니다. 따라서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전에 트라우마에 대한 조기 치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트라우마 피해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곰강, 지지는 직면이라는 힘든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108.
그런데 심리학적으로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상대방 자체에 대한 호감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랑의 본질은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고 말한다.

109.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111.
우리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편안해하고 이끌린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만큼 익숙한 것도 없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을 통해 어린 시절 경험한 가정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귀향 증후군(the going hom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112.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음에도 왜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가 힘든 인생살이를 반복하는가? 어린 시절 풀지 못한 가족 간 갈등의 고리를 다시 한 번 풀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116. 
그럼 어린 시절 불행한 가족관계를 재현하려는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어린 시절의 가족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경험한 감정에 용기있게 직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117.
이제 아내는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난 것이다. 물론 덕분에 나는 든든한 흑기사를 잃은 셈이다. 대신 서로의 장단점을 제대로 바라보고 부족함을 보완해 주면서 인생길을 함께 걸어 갈 진정한 반려자를 비로소 만난 것이기도 하다.

127.
어린 시절 상처받은 영혼이 불행을 반복하는 삶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불행의 반복성은 오랜 동안 무의식적으로 유지되는 행동 패턴이다. 이런한 반복성은 우리 내면에 깊이 배어 있어서 마치 중독 상태처럼 바꾸기 어렵다. 불행의 패턴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그 출발점이다. 직면의 대상은 어린 시절의 상처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고찰하며 자기 공감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128.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과거의 상처를 건드려 상처의 고통을 재현하게 만든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기폭제를 피하려고 한다. ...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자극을 피할 수는 없다. 결국 자라가 아니고 솥뚜껑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솥뚜껑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상처와 불행의 치료는 오직 직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129.
내면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효율적인 방법은 글쓰기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내면아이와 현재의 나 사이의 분화가 잘 안될 수가 있는데, 글로 정리해보면 두 주체의 차이점을 더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다. 성인이 된 내가 묻고 과거의 상처받은 아이가 대답을 한다. 또는 내면아이가 내면에 결핍된 것을 요구하면 성인의 자아가 그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인은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해결되지 못한 욕구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게 된다. 

135.
가족상담사 보웬 교소눈 준기씨와 어머니처럼 주체의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서로 심하게 의존하는 관계를 '공생관계'라고 불렀다. 

140.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파파걸은 남자를 사귀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과정 자체를 힘들어한다. 남자에게서 자꾸만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늘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남편을 비교한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언제나 승패는 뻔하다. 아버지는 딸에게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었지만, 어느 남편도 이런 사랑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런 경우에 아버지를 떠난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그에 비례하여 남편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실망한다.

142. 
보웬은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탄생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결혼한 두 남녀가 부무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분리되는 것이다. 부무와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분리와 독립을 이룩한 두 남녀만이 행복한 결혼이 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자녀가 부모로부터 분리와 독립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분리와 독립은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낼 때 가능하다. 부모로부터 분리와 독립할 때 그 열쇠는 부모가 쥐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결혼생활의 외로움과 허전함, 실망감을 자녀를 통해서 풀려고 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 존재하지 못한다. 이 때 자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배우자나 대리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부모는 심리적으로 자녀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녀로 하여금 건강한 분리와 독립을 가능하게 해줄 부모는 건강한 부부관계를 갖고 있는 경우이다. 

142.
"이제 저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아내이고 남편입니다. 저는 당신을 저의 배우자로 선택했습니다. 이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148. 
시스템적 관점에서는 가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 가족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

160.
분명히 무언가 있고 그 때문에 불안과 긴장이 항상 느껴지지만 함부로 표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어떤 일이 가족 내에 존재할 때,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가족 비밀(family secret)'이라고 말한다.

162. 
가족 비밀이 존재하는 가정은 건강할 수가 없다. 자녀들은 가족의 비밀에 대해 어렴풋이 감지하는 바가 있지만 집안 분위기는 이를 부인하거나 모르는 체 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166. 
자신의 고통을 딛고 대범하게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헤아릴 줄 아는 한나는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큰 상처와 가족의 비밀에도 불구하고 가장 꿋꿋하게 자란 여성이다.

167.
왜 이런 가족의 비밀이 존재하는가? 가족 비밀은 현재의 가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즉자적 대응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언제 닥칠지 모를 가정의 변화를 두려워하여 가족으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문제를 부인하게 만든다. 가족은 변화에 저항한다. 가족 시스템에는 일종의 관성이 있어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가족 시스템의 경향을 '항상성(homeostasis)'라고 부른다. 가족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항상성 때문에 가족 비밀이 만들어지지만 그로 인해 가족 사이의 갈등은 증폭된다.

170.
성추행의 트라우마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가짜 기억이었던 것이다. 진실을 대면하는 시간은 언제나 소름이 돋고 고통스럽다.

171.
이 영화는 셀리나가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가족 비밀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넘어 어머니의 진심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가 잘 묘사했듯이, 가족 비밀은 결코 우회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족의 비밀을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그 진실을 마주할 때에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172.
이렇게 사서 고생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구태여 그런 자리를 맡으려 애쓰는 것일까? 그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안정감을 갖는 특이한 존재다.

173.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존 에너지다. 따라서 권력욕을 뒤집어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5.
(앞서 사례를 읽어야 함). 때문에 할머니보다는 남편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 남편이 태도를 바꿈으로써 질서가 자리 잡히면서 혼돈의 가정에 안정이 찾아올 것이다.


194.
스티얼린은 부모의 못 이룬 한을 해결하기 위해 한번 위임된 자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탈출죄'라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경우 평생을 통해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 부모의 욕구를 성취한다고 해서 자녀가 이 결핍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성취는 부모를 위한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
그러나 염려스러운 마음에 아무리 대리 역할을 하려 해도 자녀는 자녀일 뿐 부모가 될 수 없다. 가족관계에서 스스로 맡아야 할 그 이상의 역할은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오히려 가족의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201.
가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상처가 대개는 선한의도와 동기에서 출발한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려는 목적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동기 자체가 나쁘지 않을지 모르나 방법 면에서 문제가 너무나 많다.

207. 
우리에게 상처를 준 부모는 괴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그들 역시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고 부당한 가족관계에서 피해를 입었던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하다. 우리 역시 이러한 반복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늘 되풀이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31.
삼각관계 속에서 자녀는 부모의 대리자 역할을 맡게 되기도 한다. 부부간에 갈등이 발생하고 분노, 원망, 우울 등을 느끼면서 부부는 자녀를 배우자의 자리에 세우고 배우자를 대신해서 위로를 받으려 한다. 자녀를 통해서 일시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대신 자녀는 다시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삼각관계에 편입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서 존재하보다 부부 갈등을 담당하는 한 축이 되고 정서적 불안 상태에 놓인다.

239.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맺기에서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이다. 이것이 인생의 딜레마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트라우마 없이 성장한 사람이 아버지가 되면 그만큼 자신의  아들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거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경험을 아들에게 대물림할 우려가 있다.

245.
언제가 때가 되면 아들의 아버지를 넘어서는 법을 터득하므로 당장 가르치려 하기보다 공감하고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247.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결핍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상처나 결핍이 심할 경우 그의 인지적 정서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부정적 감정이 몸과 마음을 뒤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쳐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방어기제에는 원시 방어기제와 중독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249.
프로이트는 인간이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고나 행동을 방어기제라고 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상처의 고통을 잊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방어기제는 우리의 상처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지 못한다. 단지 상처의 충격으로부터 잠시 보호해 줄 뿐이며 오히려 상처를 더 오래 지속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251.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우리 속담 역시 투사를 나타내는 말이다. 배우자에게 투사의 대상이 된 사람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당한 심정으로 답답하고 억울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여도 투사를 보내고 있는 당사자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255.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해결하는 시도는 가족 안에서 무수히 발생한다. 법대나 의대 학생들을 보면 자기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인생을 사는 듯 삶에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돈이 없거나 권력이 없어서 서글펐던 과거를 자식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가 그들에게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과적의 상처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가족 안에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낸다.

256.
심리적 방어기제 가운데 가장 복잡한 형태는 투사와 동일시가 하나로 홉합된 듯한 투사적 동일시이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험한 속성을 다른 사람에게서 끌어낸 다음 그를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충동을 조종하려 한다. 이 때 상대방은 자신의 정서적 분신이 된다. 

260.
방어기제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사용한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고통스런 감정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닌 무뎌지게 하는 임시 수단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관계에서 이뤄지는 일정한 행동 패턴을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족은 언제나 일정한 틀 속에서 관계를 맺고 소통한다. 가족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패턴을 찾아내 그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방어기제에 이름을 붙이면 그 부작용을 해소할 길도 열린다. 사물이나 현상을 구분 짓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구별하는 것은 가족심리학에서 매우 주효한 해결책 중 하나이다.

262.
현재의 감정이나 행동은 과거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결핍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상처나 결핍이 심할 경우 그의 인지적 정서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부정적 감정이 몸과 마음을 뒤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쳐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으로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263.
반동형성 -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반대의 행동이나 태도를 취합니다. 속으로는 좋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시비를 거는 것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츤데레)

264.
퇴행 -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어린 시절 행동했던 방식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265.
전치 - 다른 사람에게 향해야 할 감정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퍼붓습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65.
승화 -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인 혹은 폭력적 충동을 다른 대상과 표현 방법으로 전화시키는 것입니다.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공격적 에너지를 학문에 쏟아부어 성과를 이루어 내기도 합니다. (똥파리의 경우)


271. 방어기제에서 벗어나는 길
세계적인 아동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방어기제를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먼저 어린 시절에 입은 트라우마 앞에 마주서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세워 놓은 수많은 방어기제를 밝혀 내야 합니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고통스런 감정과 기억을 억누를 뿐 해결책이 아닙니다. 방어기제를 통해 억압당한 슬픔, 절망, 분노, 공포, 무기력,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등과 같은 내면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볻는 것이 필요합니다. ..... 우리는 사막에서 물을 찾고자 헤맬 것이 아니라 사막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심치치료는 사막을 나가게 해주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곁에 선 사람은 사막에서 물이 되어주어야겠지?)


276.
아이들이 갖는 환상과 꿈의 세계는 그러한 환상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부모의 도움을 통해서 유지된다. 

277.
열악한 현실은 아이들에게서 환상과 꿈을 일찍 앗아간다. 환상과 동화의 세계는 연약한 아이들의 자아를 보호해 주는 방어 메커니즘이 된다. 성인과는 달리 아이들은 세상의 현실에 노출되면 감당해 내기 어렵다. 아이들은 동화화 환상을 통해 그들의 연약한 자아를 보호받는다.

277.
모든 인간에게는 건강한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가 필요하다. 자기애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갖는 상태를 뜻한다.

278. 
아기는 엄마의 표정을 통해 자기 자신과 세계를 보는 것이다. 엄마가 웃으면 아기는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여긴다. 엄마가 안아 주고 달래 주면 아기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엄마가 아기의 욕구에 반응을 보여주면 아기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엄마가 웃지도, 안아주지도 않고 달래주지도 않고 사랑해주지도 않는다면 아기는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느낀다.

279.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건물 잔해 사이에서 17일만에 구조된 박승현씨의 사례는 자기애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280.
한 기자가 승현씨에게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는지 물었다. 승현씨는 굶주림과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잠들다 깨기를 반복했지만 한 순간도 구조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어간 힘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들이었다고 대답했다. 가족들과 떠난 여행,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고 말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따뜻한 사랑과 함께한 즐거웠던 순간은 살아가면서 겪을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게 하는 소중한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애를 형성하는 근원이기도 하다.
(칠레 광부 이야기를 참고하자. 영화 128시간. 나는 과연? 자기애를 충만하게 발휘할 수 있을까.)

283.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더 형편없다고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나의 모습. 나름 베를린에서 극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2015. 2.18)

287.
최선을 다하는 괜찮은 엄마 아빠는 완벽하기보다는 때로 실수하지만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부모이다.

288.
다른 이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자상한 선행은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는 슬프고 불안하고 외로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상처받은 자기애를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기부, 선행이 가장 빛날 때!)


289. 홀로서기를 잘할 수록 가족이 행복해진다.

289.
독일 가정에서 아내들이 화장을 하는 시간은 주로 남편이 퇴근하기 직전이다. 즉 그녀들은 남편을 위해 화장을 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 간의 사랑이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사라지면 결혼생활은 끝난다. 
(이 부분에서 난 반대다. 사랑하는 사람의 맨 얼굴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더럽고, 편한 모습을 볼 때 가장 좋다.)

292.
이처럼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잠을 자면서 자란 독일 아이들은 부모가 있는 공간과 자신의 공간을 분리하여 생각한다. 부모가 있는 안방에 들어갈 때면 반드시 노크를 하고 허락을 구한 후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있는 안방은 부모만의 공간이 아니다. 안방은 아이들에게도 속하는 공간이라 따로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적 차이와 양육태도의 차이로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는 데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


293.
독일과 한국을 비교한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방식에서 문화적 차이가 크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과제가 있다. 바로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율성 실현이다. 

294.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부모마저도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기 시작한다. 부모처럼 가까운 관계라도 자신의 인생을 누가 대신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한 사람이 책임과 자율성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게 된다. 당연히 이런 사람이 원만한 결혼생활과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296.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기 전까지 미혼의 시기를 독립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율을 허용받고 미래의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297.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에게서 성인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부모가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무시하고 여전히 아이처럼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면 부모 자녀 사이에 지루한 전쟁이 시작된다.

298.
자녀 독립기에 독립과 자율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초래될 불행을 생각해 보면 왜 부모가 자녀의 독립을 방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방해할 리는 없다. 다만 부모가 설정한 틀 속에 자녀를 강하게 끼어 맞추려 하다 보니 오히려 자녀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자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심리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엄마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너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 매우 듣기 싫은 말이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을 '내사(introjection)'라고 부른다. 

300. 
부모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성장해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어떻게 독립과 자율을 얻었는지 탐색하면 도움이 된다. 많은 경우 답은 거기에 있다. 부모 자신들이 독립과 자율을 어렵게 이룬 경우 자녀에게도 반복시키려는 무의식이 작동한다. 

306.
소통의 변화는 가족 안에 놀라운 기적을 불러 일으킨다. 진실한 대화는 상한 마음을 회복시키고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까지 풀어 준다.

309.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깨어진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다. 내 생각을 잘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통의 출발이다. 우리는 평소 얼마나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자. 과연 자녀가 이야기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쓸데 없는 말을 한다고 묵살하지는 않았는가. 언제나 내 말을 하려고, 내 생각을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훈계하고 소리치고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들에게는 훈계하는 부모보다 경청하고 성찰하는 부모가 필요하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진실한 소통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왜곡하지 말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외롭다는 것을, 힘들다는 것을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313.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315.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보통 한 개여야 하는데 두 개이상, 그것도 상반된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방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더 나아가 정신분열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

319.
어머니는 처음에 식사를 하려던 식당이 마음에 들었지만 아들의 뻔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한 번 사양해 본 것뿐인데 아들은 몇 번 더 권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와 서운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문화와 어우려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소소하지만 이 역시 일종의 이중구속이다.
왜 이런 답답한 일이 일어날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솔한 표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때문에 친밀한 관계일수록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러하기에 그 관계는 더욱 친밀감이 쌓인다. 

325.
부부관계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서운하게 행동하면 그 순간은 참는다. 그러나 다음 기회에 쌓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전에 받은 상처와 서운한 감정을 덧씌워 갚는다. 의식적으로 "그래, 당신 나에게 그렇게 했지, 두고 봐!"라고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손상당한 감정은 가슴 속에 잠복해 있다가 언젠가 반드시 상대에게 되돌려주려는 성향을 갖는다.

327. 부부 사이의 관계 통장
먼저 선순환 사례를 보자. 남편이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일해서 월급을 받아 왔다. 이때 남편은 아내에게 주고(give) 아내는 받은(take) 것이 된다. 힘들게 돈을 벌어온 남편이 고마워서 아내는 다음 날 아침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였다. 이제 아내는 다시 남편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었고 남편은 받았다.

327.
반면 악순환의 경우를 보면 선순환과 차이는 간단하다. 남편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아내는 모처럼 일찍 일어나 솜씨를 발휘한 음식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 남편이 답답해서 한마디 물어본다. "여보, 음식이 입에 맞아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심드렁하다. "맞기는 뭘, 그냥 먹는 거지!" 아침 시간이 썰렁해진다. 주고받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번엔 남편이 아내에게 받은 것을 돌려 줄 차례였지만 이 순환이 깨지면서 서로에 대한 미운 마음들이 연달아 똬리를 튼다.

329.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주기만 하고 받는 것이 없다고 느끼면 이용당한다는 기분이 들고, 상대방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 텅 비고 고갈된 느낌이 쌓여 불만이 생긴다. 반대로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죄책감과 빚진 기분에 시달린다. 둘 사이에 주고받음의 공평함이 깨지면 한쪽으로 억울하다고 느끼고, 다른 한 쪽은 빚진 기분이 된다.


334.
힘든 결혼생활과 잘못된 싸움 방식을 가진 부부들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아분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적 개념인 자아분화는 자녀가 얼마나 엄마로부터 분리와 독립을 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한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자아분화의 시작이다. 자기를 본다는 것은 아이가 이제 엄마로부터 자기를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335.
자아분화는 감정, 특히 그 중에서 불안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가족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지적 능력, 즉 이성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이성의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자아분화 능력이다. 가족에게 불안이 엄습했을 때 자아분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은 불안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과잉 행동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반면 자아분화가 잘 이뤄진 가족은 불안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대응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지닌다. 

336.
결국 자아분화라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닌 자기 내면 상태이다.

338.
(앞서의 경우를 살필 것) 세 가지 경우 모두 상황은 동일했다.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은 자기는 상대방 때문에 어쩔수 없이 화를 냈노라고 남을 탓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분화가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이 균형을 이룬다. 즉각적으로 흥분하고 화를 내기 보다는 감정적 충동을 이길 수 있는 자제력과 객관성을 갖고 행동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은 위기와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안정된 정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건강한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342. 긴장과 갈등을 푸는 열쇠는 나 자신에게 있다.
불행한 부부관계와 힘든 자녀관계를 푸는 열쇠는 상대방에게 있지 않ㄷ나.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변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부부사이나 부모 자녀 간에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푸는 열쇠는 다른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자아분화가 높아지면 가족관계 안에서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할 수 있으며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풀 수 있다.
.....
스트레스에 대해 즉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불안감을 안 겨 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대응한다. 일상 속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위기와 스트레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한 번 더 생각하려고 애를 쓴다. 어릴 적 가정에서 형성된 낮은 자아분화 탓에 이렇게 노력을 해도 변화가 쉽게 생기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불안과 분노가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기인한 것임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조금은 덜 감정적으로 대응해야 변화가 생긴다. 이것이 낮은 자아분화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익숙해질 수록 후회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350.
발달심리학자들과 사회심리학자들은 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욕구 충족의 유예'를 매우 중요한 과제로 평가한다. 눈 앞의 욕구를 당장 충족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다음에 얻을 보상과 결과를 위해 미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353.
인생은 고해라고들 말한다.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내내 고통의 바다를 지나다가 어쩌다 한 번씩 허리를 펴고 숨을 쉴 수 있는 섬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크고 긴 괴로움은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지만 약간의 긴장과 괴로움은 우리에게 각성을 주로 도전해 볼 마음, 그리고 고생 뒤에 진정한 만족의 가치를 일깨운다. 자아가 형성되는 유소년 및 청소년 기의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더욱 절실하다. 가족의 화목과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좌절과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쉽게 저절로 얻어지는 평화나 기쁨, 행복은 없다.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을 때는 마냥 편한 것을 원할지도 모르나 건강한 가족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욕구의 유예, 고통과 불편함의 인내 모두가 필요하다. 가정은 다시 서로를 보듬어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따뜻한 둥지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언제가 둥지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날갯짓 할 힘을 길러 주는 곳 역시 우리의 가정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가족이다.







드디어 PINA 3D를 보았다.
난 피나 바우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이름만 아는 수준, 그리고 무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배경지식이 없다.
그러나 빔 벤더스가 연출했다는 이 영화는, '3D'라는 수식어가 영화 앞에 붙기 시작한 이래 내게 가장 관심이 가는 영화였다.

기본적으로 그동안에 몇 편의 3D 영화를 보면서 (고전적인 기술 말고, 이른바 '아바타' 이후), 난 절대로 3D라는 기술이 왜 영화에 들어와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굉장한 피로감. 보고 있으면 어느 새 눈이 아파온다.
두번째, 인지에 관한 문제, 우리가 정말로 '입체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물론 사물의 크기에 따라서 거리감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말로 '입체'인가 라는 문제다.
르네상스 이후, 회화(2D)에는 '원근법'이 보편화되었고, 이는 사람이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법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서는 이 원근법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회화이후, 카메라가 발명되었고, 이 카메라의 렌즈는 결국 다시 원근법의 원리에 의해서 렌즈가 '하나'로 채택된다. 인류는 태초부터 눈을 2개 달고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은 아마도 '인지'(perception)의 문제다. 원근법을 이용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보는가를 정의한다. 실제로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재현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인지'하느냐 하는 감각을 재현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기에 렌즈를 하나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보편화되어있다. 즉, 사진 기술의 모든 공학에 '시간'의 차원을 입힌 '영화' 역시 하나의 렌즈로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그 자신의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해 '서사'를 도입하고, 영화는 '이야기' 중심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물론 영화의 역사 이래 여전히 치고 나오는 질문은 바로 '형식'에 관한 것이며, 무엇이 영화를 스스로 영화답게 하는가? 어떤 것이 영화적인가? 라는 질문 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아바타'를 보면서, 어떻게 이 영화를 보아야할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난 일단 이 영화가 재미가 없었다. 내용적으로!!! 뭐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입과 손이 동시에 아픈 일이고... 어찌되었건 '3D' 블록버스터. 제임스 카메론. 이라는 수식어들에서 중요하게 다뤄줘야 할 것은 결국 3D라는 기술이었다. 다시금 정성일의 글을 불러온다.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59556 또한 이 글 안에서 언급하는 다른 글. ‘최후의 승리까지 한뼘 더 필요해’ <씨네21> 736호

이 두 개의 글을 읽는 것은 나름 3D라는 기술에 대한 어떤 질문 제시로서 괜찮다. 그러나 각자의 답 혹은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리라. 나는 PINA를 보면서 비로서 질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에 몇 편 보지 않은 3D영화에서 왜 나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피곤해만 했었는지.... 일단 PINA의 특징을 몇 가지 거칠게 열거하자면,

- PINA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일종의 공연 기록영상으로써, 내용적인 측면에서 고전적인 서사가 있지 않다. 공연 자체가 중요한 내용이다.
- 이 내용은 그 자체로 형식이 된다. 공연을 찍는다는 것!
-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거의 없다. 일단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뛰고, 그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 대부분의 FS이거나 와이드샷이 많다.
- 3D를 구현하면서, 일반 2D 영화같은 심도(혹은 입체감)를 발견할 수는 없다. 전, 중, 후경에 있는 무용수들은 대부분 초점이 맞으며, 화면에서 튀어나와(!) 보인다. 그래서 눈이 바쁘다. 이것은 보통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한 점일 수 있다.

결국 2D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포커싱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포커스의 이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장면을 비스듬하게 찍어도 모든 사람을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이건 그럼 딥포커스인가? 일단 임시적으로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딥포커스라고 부를수도 있겠다. 그래서 무슨 상관이냐고? 이렇게 찍히고, 영사되는 화면에서 물음은 자연스레 나온다. 3D영화들은 애시당초 3D를 감안하고 찍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면 그 영화들은 아직 3D 시설이 없는 곳에서 본다고 했을 때 그 차이란 무엇인가? 뭔가 좀 도드라져 보인다는 단순한 대답은 여기서 그만. 그런 말을 할 사람들과는 더이상 얘기할 시간이 없다. 3D(로 찍혀진) 영화를 2D로 본다면, 그것은 과연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인가? 그 수식어에 진짜 질문이 없는 수많은 헐리우드 3D영화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들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냥 (3D) 영! 화! 이지. 3D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을 피곤하게만 할 뿐이고. 그 피로감에 대한 보상으로 약간은 도드라진 '신기함'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인식하는 '인지'에 대한 눈속임 뿐.

다시 PINA얘기로 돌아오자. 내가 받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해본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 중심으로 돌아온 세계는 이미지에 원근법을 적용시키면서 인간이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PINA에서는 새로운 지점을 제안한다. 중, 후경 들에 존재하는 풍경과 다른 인물들, 움직임들의 포커스가 맞고, 고스란히 '존재'한다. 이는 마치 르네상스의 캔버스 위에 고대, 중세의 신화적 존재가 입혀진 듯하다. 르네상스 이전의 회화들은 오히려 2D위에 2D처럼 기록했다. 한국의 민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작가의 자의성(혹은 또다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그려진 피사체들이 주를 이뤘고, 거의 대부분의 피사체가 초점이 맞아 있었다. 피사체들은 말 그대로 '존재'했다. PINA는 그렇게 3D를 구현해낸다. 빔 벤더스는 새로운 질문을 야기할 토양을 마련한 셈이다. 

이제 영화에서 3D란 얄팍한 신기함을 넘어, 그 자체로 형식이며, 새로운 붓이 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제 포커싱에 의한 감정적 거리 혹은 인지적 거리를 만들어내는 고전적 서사의 영화가 아닌, 그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존적 피사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이제 '3D'영화 시대의 한 발판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영화가 스스로 영화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시선, 르네상스의 원근법에 종속당해서 그대로 재현되는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문학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2시간동안 우리를 붙들어두었던 영화는 이제서야 스스로 종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인간의 인지와는 관계없이 이제 영화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트위터를 통해 아이폰의 동영상 화질을 소개하고 싶어서, 몇 번을 폰에서 직접 업로드해봤지만,
항상 폰에서는 압축을 한 후에 yfrog등 으로 업로드를 하는 바람에 결국 이렇게 직접 컴퓨터로 youtube에 올린 후, 포스팅을 시작해본다.

개인적으로 IT 및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깊고, 이것저것 주시하는 바도 많지만,
IT 기기 리뷰어도 아니고, 내지는 IT 자체에 대한 분석 보다는,
기기나 플랫폼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넷 상의 소통과 세상의 변화에 더욱 관심이 깊은지라, iPhone 4를 단순히 기계를 갖고 싶은 욕망과는
다른 이유로 구매했음을 미리 밝힌다.

그렇다곤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이 일인지라 무엇보다도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컸고, 그것의 성능이 영화 쪽에서 이용가능 할 듯 해서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단, iPhone 4의 스펙상 Apple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화질에 놀랐지만, 좀 더 실제적인 자료가 필요했고, 720P라는 화질의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Youtube에서 검색해보니 나온 동영상이 첫번째이다.

1분30초라는 짧은 단편 영화다.
미국에서 올린 영화인데, 폰 카메라의 특성을 잘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화질은 말할 것도 없다.
720P는 뻥이 아니었다.
이 단편을 보고 나서 iPhone4의 구입을 확실히 결정했다.
언뜻 보면, 영화 안에서 노출이 변하는 걸 감지하기 어렵지만, 아주 자세히 되풀이해서 보면, 약간의 노출 변화가 보인다.
아무래도 '자동노출'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법.
하지만 이 영화는 나름 빛을 잘 통제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퀄리티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아래는, 독일 여행을 갔다가 들른 함부르크의 '미니어처 원더랜드'의 동영상이다.
이 곳은 이름 그대로 미니어처 원더랜드이다. 그 자체로 입이 떡 벌어지는 미니어처 박물관이고, 여러 도시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재현해 놨는데,
때마침 미국관에는 'Monument Valley'를 재현해놨고, 이 곳 역시 기차가 있어서,
위의 단편을 떠올리면서, 직접 찍어본 동영상이다.

실내라서, 조명조건이 잘 통제되어있고, 이런 경우의 화질은 발군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대비하기 위해서 일상에서의 장면을 하나 더 올린다.
이는 며칠전 찍은 장면이다.
요즘 런던은 계속 비가 왔다 안왔다를 반복하는 변덕을 반복하는 중이고,
그 와중에 화면은 흐린 가운데, 2층버스의 맨 앞자리에서 찍은 것임을 미리 일러둔다.
자동 노출이 변하는 지점 들도 잘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디지털 카메라로서의 화질을 소개해보려 한다.
먼저 딱 잘라서 얘기를 하자면, 왠만한 똑딱이 디카만큼의 화질은 보여주고,
나름의 색재현력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역시나 하루중의 어떤 때냐? 그리고 어떤 색깔과 빛의 분위기냐에 따라서 굉장히 색감과 화질의 편차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20만원대의 똑딱이 디카 성능과 비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포커스의 속도도 꽤 빠르고, 화이트 밸런스도 잘 잡는 편이다.
게다가 500만 화소. 이쯤 되면, 똑딱이 대타로써 충분한 역할을 소화해낸다.

런던 얼스코트역 주변.

해질녘 함부르크 공항

비오는 날, 트라팔가 광장



New Cross 집

비 온 직후, 엔젤스테이션 주변



코벤트 가든 주변.


위의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 보면 알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모든 디카들 처럼, 조명조건이 굉장히 극악해서, 10 stop이상의 차이가 나게 되면, 화질을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이 경우는 태핑 포커스 및 노출이 좀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노출 보정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수동으로 노출 및 화이트 밸런스를 조정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오는 날, 혹은 비온 직후 개인 날의 사진을 보면, 왠만한 수준의 똑딱이 카메라 이상의 화질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의 코벤트 가든의 사진을 보면, 여러가지 원색이 잔뜩 섞인 가운데에서
색 재현을 좀 힘들어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종합해보면,
iPhone 4의 카메라 성능은 꽤 만족할 만한 수준이며, 이는 다시 사용자의 정성 혹은 활용도에 따라서,
그리고 기타의 다른 부수적인 장비들을 통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성능발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서 KT를 통한 아이폰4의 예약가입자가 20만이 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다들 목빠지게 기다리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 영상 분야에서 활용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들 계실 것이고, 카메라 쪽을 중심으로 화질을 궁금해해 할 듯 하다.
이를 한 번 보시고, 참고하기를 바란다.

뱀발.
Retina Display는 정녕 대단하다.
여러가지 기능도 쓰고, app들도 깔고 지우고 해보면서 다양한 활용도를 찾아보면서 익혀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컴퓨터 성능이 떨어져도, 인체공학적인 마우스 혹은 좋은 키보드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서,
아이폰의 경우도 단순하게 바라보는 편이다.
뭐 여타의 기능이 성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는 '눈'이 아주 시원하고, 가독성이 높은 디스플레이라서 아주 만족한다.

뱀발2.
혹시라도 영국에 계신 분들 중에서 iphone4구매를 고려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네트웍중에서 Orange는 선택하지 말라고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