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무작정 집을 나온 십대 청소년이 기껏해야 집앞 놀이터에서 서성거리는 사정이 이해가 갔다. 엄마가 아파트 베란다에 나왔다가 발견하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마음.
(누구나 말하지 못하면서, 누구나 가지는 이 마음)

24.
시간이 한 방향으로 쉬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은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다. 한번 지나간 것은 그것으로 넘겨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는 상황을 탓하고 자책한다. 그로 인해 곟속 또 다른 후회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한번 빚을 지기 시작하면 이자 갚느라 원금 상환은 꿈도 못 꾸게 되는 것 같은 일이 시간과 후회의 패러다임. 철주와 영수는 더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을 뿐이고, 노사이드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고 싶다.
(난 이 시간을 되돌릴 용기를 가진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55.
인간은 애매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질 때 긍정적인 상황보다 부정적인 상황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학습해왔다.
(나는 좀 아닌 것 같은데…. 확신할 순 없지만...)

60.
우리 같이 해결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본인이 의지가 있어야 되고요.
(참 요약된 말이다. 두 문장. 딱 두 문장)

70.
"안 될 일이라고 누가 얘기해요? 지금 나쁜 시나리오만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돼요? 애매함을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해요. 애매한 상태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말이야 쉽지, 라고 할 만한 일이죠."
불안을 일으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돌보면 인생을 방해하는 큰 요소를 하나 줄일 수 있다.
(이 책을 사게 된 결정적인 구절이다)

72. 
들은 것은 곧 잊어버린다. / 본 것은 기억된다. / 해본 것은 내 것이 된다.
진료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환자들은 진료실 밖으로 나가면 이내 잊어버렸다.
...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행동으로 해보는 것에 비하면 그 파괴력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질러야만 우린 배운다.)

74.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특히 두려움을 강화해요.

75.
사실은 물에 빠지고 배가 뒤집히게 된 직접적 원인은 나의 두려움이었는데요. 우리가 길러야하는 것은 이렇게 출렁이는 애매함을 돌파하는 것뿐 아니라, 일시적 퇴행과 불안정한 상태를 견디는 능력이에요. 실패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몰라요. 백전불패도 백전백패도 없어요. 아무리 준비하고 예방하려 해도 인생이 내 뜻대로만 되지 않으니까요.

77.
우리에게는 애매함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지기 전에 ‘생각을 멈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가끔은 머리의 기어를 N이나 P에 놓고 공회전을 하는 것이 낫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다행히 나는 많이 하는 편, 그러나 그녀는 못했나보다)

79.
성숙이란 의존적인 사람이 독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의존성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숙이다.

102.
일단 꺼내놓아야 한다. 그냥 가슴 안에 담고 이으면 파편만 난무한다. 뒤죽박죽 사계절 옷이 다 처박혀 있는 옷장 속 같으면 안된다. 옷장을 정리하려면 꺼내놓고 펼쳐놔야 한다. 

121.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안에 타인은 객관적 실체가 아닌, 내 안에서 만들어낸 대상으로 존재한다.
(여전히 물음. 내 안에서는??)

126.
철주는 선민과 같이 조금만 물꼬를 터주면 알아서 그다음 답을 찾아내는 사람을 만나면 기뻤다. 이를 ‘심리적 성찰력(psychological mindedness)이 있다’고 한다. 문제가 내면에 있음을 이해하고, 두렵지만 무조건 피하기보다 용기를 내어 내면의 프로세스를 찬찬히 지켜보는 능력을 익혀 가는 것이다.

172.
선택의 누적분이 그 사람을 구성한다….
우리의 삶의 발목을 잡는 것은 삶의 선택에서 익숙해져버린 나쁜 버릇이다. 그리고 버릇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는 것은 한두 번의 통찰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살아왔고, 주변의 인간관계는 이미 그 틀 안에서 짜여져 있기에, 변화의 모션을 한 번 준다고 해도 바로 다른 주변 관계의 축들의 반작용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와버리곤 한다. 더욱이 섣부른 변화의 시도는 좌절을 불러와 관성을 강화하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일 뿐이라는 믿음을 종교적 신념에 가깝게 발전시킨다. 결국 ‘나는 왜 안되는가’에 대한 정교한 변명 논리를 갖춰 웬만한 상황에 대해서는 미리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방어기제의 시간적인 적분)

174.
지금 난주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어요’ 같은 복잡하고 깊은 무의식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말로는 안 되고 몸으로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한 번 흔들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충격 요법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9.
남이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아야, 좋은 관계가 유지됩니다. 난주씨가 참 힘들었을 것 같아요.


230.
지금같이 정말 고마울 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처음 느꼈다.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자  제일 먼저 살아난 것은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259.
과거의 틀린 선택보다 선택을 하지 않은 사실이 더 오래간다는 것,


274. 
두 사람 모두 갖고 있는 환상이 있어요. 일심동체의 환상. 그 환상은 우리 뇌 정말 깊숙한 곳에 박혀있거든요. 그게 언제인지 아세요?
… 바로 엄마 뱃속에 들어있을 때입니다.
..

276. 
지금 만나는 사람과는 채울 수 없는 어떤 결핍을 경험할 때마다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오는 것은 바로 이 공생의 욕망이다.

277.
잠깐잠깐 직렬로 연결된 것 같은 짜릿함은 손을 잡을 때, 의견이 일치할 때, 섹스를 하면서 느끼지만 그건 너무 잠깐이죠. 그래서 그 이상을 원하게 되요. 거기서부터 여기 이 친구의 고민이 시작되는 거죠.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오픈하고 나면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281.
그래서 비밀이 밝혀지만 당사자는 양쪽 모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던지는 비밀 공개는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비밀의 물꼬를 트기 전, 쏟아질 비밀을 잘 가둬둘 제방의 벽을 탄탄히 하는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준비가 되었다고 착각했고, 실제로는 안되었던 거다… 비밀이라고 할 것 까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찌되었든 그 제방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거지)

283.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충분한 신뢰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석을 들을 환자의 정신세계가 그 내용을 받아들일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내가 아무리 정확한 해석을 해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고, 도리어 무서워서 도망을 가게 된 것이죠.
(신뢰란 결국 공감이다. 모든 것은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요즘 느끼게 된다. 영화든, 친구든, 치료든 무엇이든… )

284.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것도 한 꺼풀만 벗기면 다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 그게 인간이다.


288.
마음을 다 준다는 말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마세요. 서로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받을 수 있는 만큼 받고 딱 그만큼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 그러면서 그 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 그게 사랑 아닐까, 집착이 아닌?

316.
벗어나고 벗어나지 않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우리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부모의 영향은 그냥 기본 상수로 놓고 살 수 밖에 없죠. 그것이 크냐 작냐의 차이, 직렬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임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의 척도라고 봅니다.

348.
확신은 부족하고 불안이 크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누가 미래를 확신할 수 있겠어요? 다 알고 결혼할 수 없잖아요. 일종의 위험 감수인데, 살아오면서 그 정도로 큰 계약을 성사시켜 끝까지 완수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문제죠. 5층짜리 빌라만 짓던 작은 회사에 갑자기 20층짜리 빌딩 계약 제안이 온 셈이랄까. 더큰 문제는 저 사람을 내 인생에 포함시켜 말아 하는 문제에요. 어찌 되었건 배우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떠나거나 끝내도 될 상태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걸 서로 인정하는 것인데, 그게 망설여진다면, 아직은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서기 때문 아니겠어요?
(.... 앞으로 나에게 생길 문제가 되어버렸다)

353.
자신의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가 상대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팀플레이 같은 것이 결혼인 것이다.

355.
너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삶은 그렇다. 다만 결혼이라는 동반자 관계를 상정하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팀을 꾸리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사랑은 긴장으로 가득 찬 이기적 관계여야 한다. 조화롭고 이타적인 관계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366.
버텨봐. 잘 모르겠으면 확 도망가지 말고, 그냥 버텨봐. 어떻게 되겠지. 미리 짐작만 하고 훌쩍 떠버리면, 나중에 너무 후회스럽지 않을까.

370.
강박적인 면이 있기는 한데, 그게 좋을 때도 많아. 꼼꼼하고 분명하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거든. 기본적으로 튼튼해.
(최소한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나를 말하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당신이 이걸 떠올려주는지에 대한 조건은 있겠지만..)

377.
버텨보는 거지요. 잘 모르겠고 마음이 확 가는 곳이 아직 없는 것 같으면 섣불리 선택하지 마세요. 베스트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면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견뎌내는 거예요. 시간이 의외로 많은 문제를 풀어줘요. 자연스럽게.
(이건 참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것 같다.)

385.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필요하고 그런 공간이 필요한다. 노사이드는 사랑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는 여러분이 찾아와 방향을 찾아가는 곳이다. 이곳은 찾은 손님들과, 주인공 철주 역시 멈추어 있던 관계의 한 축을 움직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홀로 서는 것의 중요성뿐 아니라,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랑이라는 관게에서 적절한 의존성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386.
사랑은 가족이 아닌 남과 얼마나 가까이 지낼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일이고, 또 너무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을 참고 나의 의존성을 인정하며 타인의 삶의 영역도 인정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남’과 ‘님’은 한 끗 차이지만 핵심적인 한 획의 차이다. 둘을 제대로 구별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문제는 머리로는 배울 수 없고, 마음으로 몸으로 직접 겪어봐야만 한다는 것. 그걸 깨닫기 위한 여정은 괴로움보다 사실 즐거움이 많다.


에필로그에 인용된 시.



시 자체는 '번 러살라'라는 시인의 작품.




못생긴 이 때문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여자 
손목을 긋거나 독약을 삼키거나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릴 만큼 대단한 자기혐오까지는 아니지만 
말할 수 없이 비극적인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아버지의 얄팍한 월급봉투로 
만들어진 입고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창피해하는 것 
그런 자신을 보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뚱뚱한 것, 머리가 벗겨진 것, 감출 수 없는 불그죽죽한 여드름 자국 
점심을 먹을 돈이 없는데 배고프지 않은 척하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앞두고도 병을 감추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부끄러운 것 
싸구려 와인을 마셔대는 주정뱅이의 자기 연민 
쓰레기를 치우지 못한 무기력함 
다른 길이 있다 해도 나는 너무 어리석어서 찾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진정한 수치심이란 이런 것 
저주하고 울부짖고 부끄러운 것 
아직도 돈을 갖다 바치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그 '영광' 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고 느끼는 것 
글을 읽을 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 
참을성 없는 계산대 종업원 앞에서 잔돈푼 사이로 꺼내든 배식표 
집을 떠나기가 두렵게 만드는 것 
수치심은 그런 것이다. 

더러운 속옷 
남자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는 듯 
아버지는 사무직이라고 거짓말하는 것 
친구에게 근처 멋진 집 앞에 내려달라고 하고 
그들이 떠나길 숨어서 기다리다 허름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수치심이다. 

잘난 수집광의 말로末路 
겨울에 난방 없는 방 
고양이 밥을 먹으면서도 불경하게도 새 집과 차를 꿈꾸는 것 
그리고 그 꿈조차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는 것 
그것이 수치심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 줄을 덧붙였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렇다.'




이 책은 실은 아래의 두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후, 강연자인 브레네 브라운에게 꽂혀서 사게 되었다.










9.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은 단지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의지만 있는 가족은 오히려 가족 구성원을 더욱 부담스럽고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도 배워야 한다.

10.
상대방에게서만 문제를 찾으려고 하면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가족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나의 지난 날 상처와 아픔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데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온통 에너지를 쏟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내가 갖고 있는 나머지 1을 살피고 변화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 가족문제의 1+1을 가족 모두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24. 
어린 시절의 상처는 훗날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곤 하는데, 이런 현상을 전이감정이라고 한다. 프로이트가 명명한 전이감정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상대를 착각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27.
민영씨는 남편에게 전이감정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아버지가 못다 주고 간 사랑을 남편이 채워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실제 부부 생활에서는 남편역할이라도 잘하면 대박이다. 남편은 남편일 뿐, 아버지가 아니다.

28.
부부가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을 계속 해서 하거나, 도저히 부부관계가 힘들어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더욱 개연성이 높다. 전이감정을 일으키키 쉬운 사람들 즉 '높은 전이감정 경향성(high transference liabilities)'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크다.

29. 
그 학생도 자신의 호의를 거절당했을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문제는 쉽게 풀렸을 것이다. 마음이 상해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이 감정이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상처에 기인한 것임을 분리해서 인식한다면 갈등의 해결점을 찾는 일은 매우 쉬워진다.

34. 
가족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외로웠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외롭게 느끼고 일상 속에서 외로운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외로움을 느낄 때 이 외로움이 자기 내면에서 온다는 사실을 모른다.
... 동창모임이 지루한 것은 .. 동창모임에 있는 내가 외로운 것이다. 나 자신이 동창들과 비교하면서 때로는 열등감을 느끼고 마음 불편해 하는 것이다.

37.
프롬은 상담이란 '자기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을 따져보면 상담을 받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 치유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앎으로써 불행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래 내가 어린 시절 외로웠고 상처받았지.'라고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정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안다'라는 말을 뜻하는 단어가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어에서는 '안다'를 뜻하는 단어가 5가지가 넘는다. 에리히 프롬이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은 곧 자기의 상처를 마음과 감정으로 직면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38. 
외로움의 실체를 안 다음에는 이제 매일 일상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오면 그 감정에 함몰되어 고통받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을 객관화시키고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된다. 외로움과 불안이 밀려올 때면 "그래 이것은 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의 관계 패턴과 감정 채널을 반복해서 재경험하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 설득하면서 순간 치밀어 올라온 외로움과 불안을 잠재우고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치유라는 말은 상처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지난날의 상처는 깨끗하게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날의 상처로 더 이상 현재의 내 감정을 다치게 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39.
우리는 어떤 일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정비소로 보낸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유독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가 수천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기계라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인 인체에 비견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또한 우리 몸이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사람의 마음만큼 심오하고 섬세할 수는 없다. 열 길 물 속으로 아는 것보다 몸 속 한뼘 안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트라우마를 혼자서 극복하기 어려울 때는 서둘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69. 
"혹시 나도 결혼해서 부모와 같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

96.
(안데르센의 경우) 비록 불행한 가정사를 가졌으나 글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99.
바로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직면'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없었던 일로 애써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마주보는 것을 말합니다. .... 이쯤 되면 왜 똥떡이 특별한 재료나 형식 없이 급하게 만들어졌는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상들은 사건이 발생한 즉시 똥떡을 만들어 아이의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회복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준 똥떡을 통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날 다시 변소에 갈 수 있었습니다.

100. 
모든 트라우마의 치료에는 이러한 '똥떡'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를 입으면 우리 마음은 자동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그런데 방어기제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하고 회피시키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더러 대개 일을 더 키우곤 합니다. 따라서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전에 트라우마에 대한 조기 치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트라우마 피해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곰강, 지지는 직면이라는 힘든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108.
그런데 심리학적으로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상대방 자체에 대한 호감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랑의 본질은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고 말한다.

109.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111.
우리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편안해하고 이끌린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만큼 익숙한 것도 없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을 통해 어린 시절 경험한 가정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귀향 증후군(the going hom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112.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음에도 왜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가 힘든 인생살이를 반복하는가? 어린 시절 풀지 못한 가족 간 갈등의 고리를 다시 한 번 풀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116. 
그럼 어린 시절 불행한 가족관계를 재현하려는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어린 시절의 가족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경험한 감정에 용기있게 직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117.
이제 아내는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난 것이다. 물론 덕분에 나는 든든한 흑기사를 잃은 셈이다. 대신 서로의 장단점을 제대로 바라보고 부족함을 보완해 주면서 인생길을 함께 걸어 갈 진정한 반려자를 비로소 만난 것이기도 하다.

127.
어린 시절 상처받은 영혼이 불행을 반복하는 삶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불행의 반복성은 오랜 동안 무의식적으로 유지되는 행동 패턴이다. 이런한 반복성은 우리 내면에 깊이 배어 있어서 마치 중독 상태처럼 바꾸기 어렵다. 불행의 패턴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그 출발점이다. 직면의 대상은 어린 시절의 상처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고찰하며 자기 공감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128.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과거의 상처를 건드려 상처의 고통을 재현하게 만든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기폭제를 피하려고 한다. ...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자극을 피할 수는 없다. 결국 자라가 아니고 솥뚜껑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솥뚜껑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상처와 불행의 치료는 오직 직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129.
내면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효율적인 방법은 글쓰기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내면아이와 현재의 나 사이의 분화가 잘 안될 수가 있는데, 글로 정리해보면 두 주체의 차이점을 더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다. 성인이 된 내가 묻고 과거의 상처받은 아이가 대답을 한다. 또는 내면아이가 내면에 결핍된 것을 요구하면 성인의 자아가 그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인은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해결되지 못한 욕구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게 된다. 

135.
가족상담사 보웬 교소눈 준기씨와 어머니처럼 주체의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서로 심하게 의존하는 관계를 '공생관계'라고 불렀다. 

140.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파파걸은 남자를 사귀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과정 자체를 힘들어한다. 남자에게서 자꾸만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늘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남편을 비교한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언제나 승패는 뻔하다. 아버지는 딸에게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었지만, 어느 남편도 이런 사랑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이런 경우에 아버지를 떠난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그에 비례하여 남편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실망한다.

142. 
보웬은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탄생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결혼한 두 남녀가 부무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분리되는 것이다. 부무와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분리와 독립을 이룩한 두 남녀만이 행복한 결혼이 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자녀가 부모로부터 분리와 독립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분리와 독립은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낼 때 가능하다. 부모로부터 분리와 독립할 때 그 열쇠는 부모가 쥐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결혼생활의 외로움과 허전함, 실망감을 자녀를 통해서 풀려고 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 존재하지 못한다. 이 때 자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배우자나 대리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부모는 심리적으로 자녀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녀로 하여금 건강한 분리와 독립을 가능하게 해줄 부모는 건강한 부부관계를 갖고 있는 경우이다. 

142.
"이제 저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아내이고 남편입니다. 저는 당신을 저의 배우자로 선택했습니다. 이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148. 
시스템적 관점에서는 가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 가족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

160.
분명히 무언가 있고 그 때문에 불안과 긴장이 항상 느껴지지만 함부로 표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어떤 일이 가족 내에 존재할 때,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가족 비밀(family secret)'이라고 말한다.

162. 
가족 비밀이 존재하는 가정은 건강할 수가 없다. 자녀들은 가족의 비밀에 대해 어렴풋이 감지하는 바가 있지만 집안 분위기는 이를 부인하거나 모르는 체 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166. 
자신의 고통을 딛고 대범하게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헤아릴 줄 아는 한나는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큰 상처와 가족의 비밀에도 불구하고 가장 꿋꿋하게 자란 여성이다.

167.
왜 이런 가족의 비밀이 존재하는가? 가족 비밀은 현재의 가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즉자적 대응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언제 닥칠지 모를 가정의 변화를 두려워하여 가족으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문제를 부인하게 만든다. 가족은 변화에 저항한다. 가족 시스템에는 일종의 관성이 있어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가족 시스템의 경향을 '항상성(homeostasis)'라고 부른다. 가족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항상성 때문에 가족 비밀이 만들어지지만 그로 인해 가족 사이의 갈등은 증폭된다.

170.
성추행의 트라우마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가짜 기억이었던 것이다. 진실을 대면하는 시간은 언제나 소름이 돋고 고통스럽다.

171.
이 영화는 셀리나가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가족 비밀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넘어 어머니의 진심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가 잘 묘사했듯이, 가족 비밀은 결코 우회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족의 비밀을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그 진실을 마주할 때에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172.
이렇게 사서 고생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구태여 그런 자리를 맡으려 애쓰는 것일까? 그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안정감을 갖는 특이한 존재다.

173.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존 에너지다. 따라서 권력욕을 뒤집어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5.
(앞서 사례를 읽어야 함). 때문에 할머니보다는 남편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 남편이 태도를 바꿈으로써 질서가 자리 잡히면서 혼돈의 가정에 안정이 찾아올 것이다.


194.
스티얼린은 부모의 못 이룬 한을 해결하기 위해 한번 위임된 자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탈출죄'라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경우 평생을 통해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 부모의 욕구를 성취한다고 해서 자녀가 이 결핍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성취는 부모를 위한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
그러나 염려스러운 마음에 아무리 대리 역할을 하려 해도 자녀는 자녀일 뿐 부모가 될 수 없다. 가족관계에서 스스로 맡아야 할 그 이상의 역할은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오히려 가족의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201.
가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상처가 대개는 선한의도와 동기에서 출발한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려는 목적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동기 자체가 나쁘지 않을지 모르나 방법 면에서 문제가 너무나 많다.

207. 
우리에게 상처를 준 부모는 괴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그들 역시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고 부당한 가족관계에서 피해를 입었던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하다. 우리 역시 이러한 반복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늘 되풀이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31.
삼각관계 속에서 자녀는 부모의 대리자 역할을 맡게 되기도 한다. 부부간에 갈등이 발생하고 분노, 원망, 우울 등을 느끼면서 부부는 자녀를 배우자의 자리에 세우고 배우자를 대신해서 위로를 받으려 한다. 자녀를 통해서 일시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대신 자녀는 다시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삼각관계에 편입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서 존재하보다 부부 갈등을 담당하는 한 축이 되고 정서적 불안 상태에 놓인다.

239.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맺기에서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이다. 이것이 인생의 딜레마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고 트라우마 없이 성장한 사람이 아버지가 되면 그만큼 자신의  아들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거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경험을 아들에게 대물림할 우려가 있다.

245.
언제가 때가 되면 아들의 아버지를 넘어서는 법을 터득하므로 당장 가르치려 하기보다 공감하고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247.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결핍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상처나 결핍이 심할 경우 그의 인지적 정서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부정적 감정이 몸과 마음을 뒤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쳐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방어기제에는 원시 방어기제와 중독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249.
프로이트는 인간이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고나 행동을 방어기제라고 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상처의 고통을 잊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방어기제는 우리의 상처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지 못한다. 단지 상처의 충격으로부터 잠시 보호해 줄 뿐이며 오히려 상처를 더 오래 지속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251.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우리 속담 역시 투사를 나타내는 말이다. 배우자에게 투사의 대상이 된 사람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당한 심정으로 답답하고 억울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여도 투사를 보내고 있는 당사자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255.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해결하는 시도는 가족 안에서 무수히 발생한다. 법대나 의대 학생들을 보면 자기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인생을 사는 듯 삶에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돈이 없거나 권력이 없어서 서글펐던 과거를 자식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가 그들에게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과적의 상처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가족 안에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낸다.

256.
심리적 방어기제 가운데 가장 복잡한 형태는 투사와 동일시가 하나로 홉합된 듯한 투사적 동일시이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험한 속성을 다른 사람에게서 끌어낸 다음 그를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충동을 조종하려 한다. 이 때 상대방은 자신의 정서적 분신이 된다. 

260.
방어기제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사용한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고통스런 감정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닌 무뎌지게 하는 임시 수단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관계에서 이뤄지는 일정한 행동 패턴을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족은 언제나 일정한 틀 속에서 관계를 맺고 소통한다. 가족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패턴을 찾아내 그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방어기제에 이름을 붙이면 그 부작용을 해소할 길도 열린다. 사물이나 현상을 구분 짓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구별하는 것은 가족심리학에서 매우 주효한 해결책 중 하나이다.

262.
현재의 감정이나 행동은 과거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결핍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상처나 결핍이 심할 경우 그의 인지적 정서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부정적 감정이 몸과 마음을 뒤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쳐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으로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263.
반동형성 -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반대의 행동이나 태도를 취합니다. 속으로는 좋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시비를 거는 것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츤데레)

264.
퇴행 -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어린 시절 행동했던 방식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265.
전치 - 다른 사람에게 향해야 할 감정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퍼붓습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65.
승화 -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인 혹은 폭력적 충동을 다른 대상과 표현 방법으로 전화시키는 것입니다.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공격적 에너지를 학문에 쏟아부어 성과를 이루어 내기도 합니다. (똥파리의 경우)


271. 방어기제에서 벗어나는 길
세계적인 아동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방어기제를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먼저 어린 시절에 입은 트라우마 앞에 마주서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세워 놓은 수많은 방어기제를 밝혀 내야 합니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고통스런 감정과 기억을 억누를 뿐 해결책이 아닙니다. 방어기제를 통해 억압당한 슬픔, 절망, 분노, 공포, 무기력,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등과 같은 내면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볻는 것이 필요합니다. ..... 우리는 사막에서 물을 찾고자 헤맬 것이 아니라 사막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심치치료는 사막을 나가게 해주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곁에 선 사람은 사막에서 물이 되어주어야겠지?)


276.
아이들이 갖는 환상과 꿈의 세계는 그러한 환상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부모의 도움을 통해서 유지된다. 

277.
열악한 현실은 아이들에게서 환상과 꿈을 일찍 앗아간다. 환상과 동화의 세계는 연약한 아이들의 자아를 보호해 주는 방어 메커니즘이 된다. 성인과는 달리 아이들은 세상의 현실에 노출되면 감당해 내기 어렵다. 아이들은 동화화 환상을 통해 그들의 연약한 자아를 보호받는다.

277.
모든 인간에게는 건강한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가 필요하다. 자기애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갖는 상태를 뜻한다.

278. 
아기는 엄마의 표정을 통해 자기 자신과 세계를 보는 것이다. 엄마가 웃으면 아기는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여긴다. 엄마가 안아 주고 달래 주면 아기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엄마가 아기의 욕구에 반응을 보여주면 아기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엄마가 웃지도, 안아주지도 않고 달래주지도 않고 사랑해주지도 않는다면 아기는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느낀다.

279.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건물 잔해 사이에서 17일만에 구조된 박승현씨의 사례는 자기애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280.
한 기자가 승현씨에게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는지 물었다. 승현씨는 굶주림과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잠들다 깨기를 반복했지만 한 순간도 구조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어간 힘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들이었다고 대답했다. 가족들과 떠난 여행,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고 말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따뜻한 사랑과 함께한 즐거웠던 순간은 살아가면서 겪을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게 하는 소중한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애를 형성하는 근원이기도 하다.
(칠레 광부 이야기를 참고하자. 영화 128시간. 나는 과연? 자기애를 충만하게 발휘할 수 있을까.)

283.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더 형편없다고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 나의 모습. 나름 베를린에서 극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2015. 2.18)

287.
최선을 다하는 괜찮은 엄마 아빠는 완벽하기보다는 때로 실수하지만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부모이다.

288.
다른 이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자상한 선행은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는 슬프고 불안하고 외로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상처받은 자기애를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기부, 선행이 가장 빛날 때!)


289. 홀로서기를 잘할 수록 가족이 행복해진다.

289.
독일 가정에서 아내들이 화장을 하는 시간은 주로 남편이 퇴근하기 직전이다. 즉 그녀들은 남편을 위해 화장을 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 간의 사랑이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사라지면 결혼생활은 끝난다. 
(이 부분에서 난 반대다. 사랑하는 사람의 맨 얼굴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더럽고, 편한 모습을 볼 때 가장 좋다.)

292.
이처럼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잠을 자면서 자란 독일 아이들은 부모가 있는 공간과 자신의 공간을 분리하여 생각한다. 부모가 있는 안방에 들어갈 때면 반드시 노크를 하고 허락을 구한 후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있는 안방은 부모만의 공간이 아니다. 안방은 아이들에게도 속하는 공간이라 따로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적 차이와 양육태도의 차이로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는 데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


293.
독일과 한국을 비교한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방식에서 문화적 차이가 크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과제가 있다. 바로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율성 실현이다. 

294.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부모마저도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기 시작한다. 부모처럼 가까운 관계라도 자신의 인생을 누가 대신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한 사람이 책임과 자율성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게 된다. 당연히 이런 사람이 원만한 결혼생활과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296.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기 전까지 미혼의 시기를 독립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율을 허용받고 미래의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297.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에게서 성인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부모가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무시하고 여전히 아이처럼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면 부모 자녀 사이에 지루한 전쟁이 시작된다.

298.
자녀 독립기에 독립과 자율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초래될 불행을 생각해 보면 왜 부모가 자녀의 독립을 방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방해할 리는 없다. 다만 부모가 설정한 틀 속에 자녀를 강하게 끼어 맞추려 하다 보니 오히려 자녀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자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심리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엄마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너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 매우 듣기 싫은 말이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을 '내사(introjection)'라고 부른다. 

300. 
부모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성장해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어떻게 독립과 자율을 얻었는지 탐색하면 도움이 된다. 많은 경우 답은 거기에 있다. 부모 자신들이 독립과 자율을 어렵게 이룬 경우 자녀에게도 반복시키려는 무의식이 작동한다. 

306.
소통의 변화는 가족 안에 놀라운 기적을 불러 일으킨다. 진실한 대화는 상한 마음을 회복시키고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까지 풀어 준다.

309.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깨어진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다. 내 생각을 잘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통의 출발이다. 우리는 평소 얼마나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자. 과연 자녀가 이야기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쓸데 없는 말을 한다고 묵살하지는 않았는가. 언제나 내 말을 하려고, 내 생각을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훈계하고 소리치고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들에게는 훈계하는 부모보다 경청하고 성찰하는 부모가 필요하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진실한 소통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왜곡하지 말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외롭다는 것을, 힘들다는 것을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313.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315.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보통 한 개여야 하는데 두 개이상, 그것도 상반된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방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더 나아가 정신분열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

319.
어머니는 처음에 식사를 하려던 식당이 마음에 들었지만 아들의 뻔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한 번 사양해 본 것뿐인데 아들은 몇 번 더 권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와 서운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문화와 어우려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소소하지만 이 역시 일종의 이중구속이다.
왜 이런 답답한 일이 일어날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솔한 표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때문에 친밀한 관계일수록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러하기에 그 관계는 더욱 친밀감이 쌓인다. 

325.
부부관계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서운하게 행동하면 그 순간은 참는다. 그러나 다음 기회에 쌓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전에 받은 상처와 서운한 감정을 덧씌워 갚는다. 의식적으로 "그래, 당신 나에게 그렇게 했지, 두고 봐!"라고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손상당한 감정은 가슴 속에 잠복해 있다가 언젠가 반드시 상대에게 되돌려주려는 성향을 갖는다.

327. 부부 사이의 관계 통장
먼저 선순환 사례를 보자. 남편이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일해서 월급을 받아 왔다. 이때 남편은 아내에게 주고(give) 아내는 받은(take) 것이 된다. 힘들게 돈을 벌어온 남편이 고마워서 아내는 다음 날 아침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였다. 이제 아내는 다시 남편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었고 남편은 받았다.

327.
반면 악순환의 경우를 보면 선순환과 차이는 간단하다. 남편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아내는 모처럼 일찍 일어나 솜씨를 발휘한 음식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 남편이 답답해서 한마디 물어본다. "여보, 음식이 입에 맞아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심드렁하다. "맞기는 뭘, 그냥 먹는 거지!" 아침 시간이 썰렁해진다. 주고받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번엔 남편이 아내에게 받은 것을 돌려 줄 차례였지만 이 순환이 깨지면서 서로에 대한 미운 마음들이 연달아 똬리를 튼다.

329.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주기만 하고 받는 것이 없다고 느끼면 이용당한다는 기분이 들고, 상대방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 텅 비고 고갈된 느낌이 쌓여 불만이 생긴다. 반대로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죄책감과 빚진 기분에 시달린다. 둘 사이에 주고받음의 공평함이 깨지면 한쪽으로 억울하다고 느끼고, 다른 한 쪽은 빚진 기분이 된다.


334.
힘든 결혼생활과 잘못된 싸움 방식을 가진 부부들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아분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적 개념인 자아분화는 자녀가 얼마나 엄마로부터 분리와 독립을 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한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자아분화의 시작이다. 자기를 본다는 것은 아이가 이제 엄마로부터 자기를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335.
자아분화는 감정, 특히 그 중에서 불안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가족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지적 능력, 즉 이성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이성의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자아분화 능력이다. 가족에게 불안이 엄습했을 때 자아분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은 불안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과잉 행동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반면 자아분화가 잘 이뤄진 가족은 불안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대응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지닌다. 

336.
결국 자아분화라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닌 자기 내면 상태이다.

338.
(앞서의 경우를 살필 것) 세 가지 경우 모두 상황은 동일했다.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은 자기는 상대방 때문에 어쩔수 없이 화를 냈노라고 남을 탓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분화가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이 균형을 이룬다. 즉각적으로 흥분하고 화를 내기 보다는 감정적 충동을 이길 수 있는 자제력과 객관성을 갖고 행동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은 위기와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안정된 정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건강한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342. 긴장과 갈등을 푸는 열쇠는 나 자신에게 있다.
불행한 부부관계와 힘든 자녀관계를 푸는 열쇠는 상대방에게 있지 않ㄷ나.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변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부부사이나 부모 자녀 간에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푸는 열쇠는 다른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자아분화가 높아지면 가족관계 안에서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할 수 있으며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풀 수 있다.
.....
스트레스에 대해 즉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불안감을 안 겨 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대응한다. 일상 속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위기와 스트레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 한 번 더 생각하려고 애를 쓴다. 어릴 적 가정에서 형성된 낮은 자아분화 탓에 이렇게 노력을 해도 변화가 쉽게 생기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불안과 분노가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기인한 것임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조금은 덜 감정적으로 대응해야 변화가 생긴다. 이것이 낮은 자아분화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익숙해질 수록 후회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350.
발달심리학자들과 사회심리학자들은 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욕구 충족의 유예'를 매우 중요한 과제로 평가한다. 눈 앞의 욕구를 당장 충족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다음에 얻을 보상과 결과를 위해 미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353.
인생은 고해라고들 말한다.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내내 고통의 바다를 지나다가 어쩌다 한 번씩 허리를 펴고 숨을 쉴 수 있는 섬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크고 긴 괴로움은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지만 약간의 긴장과 괴로움은 우리에게 각성을 주로 도전해 볼 마음, 그리고 고생 뒤에 진정한 만족의 가치를 일깨운다. 자아가 형성되는 유소년 및 청소년 기의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더욱 절실하다. 가족의 화목과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좌절과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쉽게 저절로 얻어지는 평화나 기쁨, 행복은 없다.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을 때는 마냥 편한 것을 원할지도 모르나 건강한 가족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욕구의 유예, 고통과 불편함의 인내 모두가 필요하다. 가정은 다시 서로를 보듬어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따뜻한 둥지이기만 해서는 안된다. 언제가 둥지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날갯짓 할 힘을 길러 주는 곳 역시 우리의 가정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가족이다.







[박노자] <박노자의 만감일기>

밑줄 쫙 2008. 8. 4. 11:59 Posted by Ru
제목 : < 박노자의 만감일기>
박노자의 만감일기 상세보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간 박노자의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통찰의 기록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인간' 박노자의 사적이고 사회적인 고백을 전해주는 책이다. 개인과 가정, 역사와 사회에 대한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궁금증과 생각을 풀어낸 인터넷 블로그 일기들을 모아 엮었다. 너무 민감하거나 너무 개인적이라서 그동안 신문, 학술지 등지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박노자의 새로운
글쓴이 : 박노자
부제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출판사 : 인물과 사상사
출판일 : 2008. 1




2부 : 우리를 넘어
제목 : 제 손으로 제 무덤파기, 과잉성 혹은 예방성 폭력
쓴 날 : 2006. 5. 31


그제 운 좋게 1988년에 개봉한 명작 영화 <칠수와 만수>를 봤다. 나는 영화 비평가도 아니고 영화를 보는 전문적인 눈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일개 관람자로서 바라본 1980년대 말의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은 최근에 나온 영화들 (박찬욱의 '복수 시리즈' 등)보다 어쩌면 대사회적 효과는 물론 작품성(주인공 성격의 다면적 묘사 등)도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영화 <칠수와 만수>의 줄거리는 흥미롭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칠수와 만수가 술을 마신뒤 한탄하던 장면이다. 고층 건물 맨 꼭대기에서 술김에 세상에 대한 한탄을 쏟아놓던 칠수와 만수는 '농성자'로 오인받아 순식간에 '진압'의 대상이 된다. 굳이 '진압'하지 않아도 몇 시간 후에 조용히 내려갈 '생사람'을 놓고 권력자들이 하등의 필요성이 없는 '생쇼'를 벌이는 바람에 '블랙 코미디'가 연출된다. 당국자들은 만수 부친이 양심수라는 걸 파악하고는 확성기를 통해 자극적인 방법으로 그 이야기를 꺼낸다. 결국 과격한 행동을 할 것 같지 않던 만수가 밑으로 뛰어내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떤 명시적인 '전복적' 의도를 갖지 않은 사람이 '과잉성의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에 의해서 '폭도'로 둔갑되어 '진압', 즉 위로부터의 폭력 행사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공권력 남용이라는 의미에서 '과잉성 폭력'이라 명명해도 되고, 권력의 의도가 체제 반대의 의사 표현 그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는 것이기에 '예방성 폭력'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분명 전두환 말기이지만, '민주 인권 태평성세'인 지금도 권력의 이와 같은 속성은 바뀐 것 같지 않다. 강정구 교수 재판만 해도 그렇다. "6.25는 통일 전쟁, 우리는 신식민지!"라는 말을 듣고 성난 군중들이 죽창을 들고 청와대와 미군 기지를 공격할 것 같은가? 이와 같은 류의 주장들이 무수히 나왔던 1980년대 조차 한국은 명실상부한 혁명의 문턱에 닿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의 대북 포섭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강정구 교수와 그 주장이 현 권력체계에 대해 하등의 위협이 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권력자들은 '전복적 행동'의 그림자만 보여도 벌써 파리에 대고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사상 재판이라는 '생쇼'가 열리고 강 교수는 직장에서 마녀사냥의 대상자가 되었다. 기껏 해봐야 수백 명이 될까 말까한 농민과 학생, 시민운동가들을 '박살내려고' 약 1만 5,000명의 군경병력과 철거용역을 파견했떤 '대추리 대첩'은 어떤가. '안보' 관련의 분야라면 함부로 덤빌 생각도 말라는 어떤 협박성 (혹은 경고성)의 과잉 폭력 행사로 보인다. 정상적인 공권력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세계 12위의 통상대국을 통치하는 이들이 왜 이리도 겁에 잘 질리는 걸까?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상황에서 저들의 지배에 대한 민중적 동의 기반이 점차 파괴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이러는 것인가? 아니면 식민지-권위주의 시대 권력자들에겐 아비투스를 성찰, 교정할 만한 능력이 결여된 것인가? 북한과 '친북세력'들이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으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육군, 안보기관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점을 감지하여 본인들도 믿지 않는 '북한 위협론'을 계속 붙드는 것인가? 정치적으로 봤을 때 북한은 이미 하나의 (하위) '파트너'로 취급 받고 있음에도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간헐적인 '사상 재판'들이 터지는 것으로 봐서는 '공안 관료들의 할 일 만들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의외로(?) 많은가 보다. 희비극이다.
1960년 부정선거시의 발포, 1980년 광주 등의 사례에서 보듯 '과잉성 폭력'이 그들 스스로의 권력명분을 파괴시켰던 과거를 그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성숙도로는, 대추리에서 시민운동가와 학생들을 거의 '재미 삼아' 쓰러뜨려 집중 구타하는 경찰의 모습은 이미 '과거의 흉물'이상으로 보이지 않을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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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글의 전문(全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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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시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이모부의 친구가 극장과 관계된 누구시라는 덕분에 가끔씩 강남의 동아극장에 갔다. 그리고 형과 같이 미성년자 관람불가(정확치는 않음)였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우리형은 중학교1학년이었지. 어찌되었건 굉장히 충격적인 영화였는데, 사실 충격보다는 내겐 그 이상한 아이러니가 강하게 남았다. 내내 웃으면서도 씁쓸했던 기억은 아무래도 당시에 TV만 켜면 나오던 대학생 형, 누나들의 시위장면들이 생각나서였을까.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인 칠수와 만수는 대학생도 아니고 단지 칠쟁이(이자 장이)들일 뿐이었다. '칠수'. 정감가는 이름. '만수', 어쩜 이런 필부의 이름을.... ^^
박노자가 얘기하는 과잉성의 폭력은 또 다른 정권이 바뀌면서 훨씬 더 강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정권의 속성은 계속 이런 것일까? 어제 본 <존 레논 컨피덴셜>의 몇몇 장면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어떤 강한 마음속의 인상들을, 몇몇 용어와 논리적인 단어들로 머릿속까지 전달시켜주는 일!
게다가 이러한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에게는 이러한 과정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단순히 영화를 놓고서 내외적으로 보고 분석하는 것 다음으로 이제 당신들의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그것이 꼭 주먹쥔 손이거나, 구호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떠한 '인식'이 그냥 시작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