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컨셉역시 영화컨셉과 잘 어울린다!!!


일단 오랜만에 영화글을 블로그에 쓸 수 있게 해준 영화라서 고맙다고 선언!

무려 2004년, 즉 5년전의 영화를 다시 꺼내보게 만든 신정원 감독에게 또 한 번 감사.

<챠우>의 소문을 듣다가, 이 감독의 전작이자 데뷔작이 <시실리 2km>라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영상자료원을 찾으......려고 했으나,
너무 서둘렀던가.
소식을 듣고 돌아가던 버스에서 발목부상을 당하고,
겨우겨우 며칠이 지나 거동이 좀 괜찮아지고 나서 찾은 영상자료원 자료실.

바로 <시실리2km>를 꺼내달라고 요청하고 보기 시작.

영화는 초반부터 시끌벅적 이상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각종 줄거리들은 각설하고,
혹 필요하다면, 요기로 가보라.

1. 펑키 호러?
영화에 붙은 수식어다.
펑키는 또 뭐고 호러는 또 뭐람?
따지지 말고 입닥치고 보고 나면 대충 무슨 감인지 알 수 있다.
아주 폐부를 찌르는 감각은 없다 하더라도, 장르영화에서 장르를 적절하게 뒤섞어 내는 이 솜씨는 가히 절대 칭찬받을만 하다.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판에서 이상한 낚시성 카피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쯤의 카피는 사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호러와 코미디는 가장 안섞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웃음"의 감정과 "공포"의 정서는 누가봐도 물과 기름이 아니겠는가? 이 둘을 섞으려면 특별한 용매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매가 잘 작동하는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극장에서 사실 가장 삐딱한 관객이라면, 아마도 정말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는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무서워하고, 시작되는 연인들이 작정하고 무서워하러 갔는데, 곁에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사랑의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들. 그들은 일반관객의 적임에는 틀림없지만, 영화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절대 필수적인 관객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관객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영화이고, 사랑의 성장을 바라던 사람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시실리 2km>가 아닐까?

이런 장르가 사실 한국에서는 흔하진 않을 것이다. <시실리 2km>를 위시하여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도 당시에는 '코믹잔혹극'이라는 카피로 상영을 했다. 다른 영화들이 더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필시 이 2편이 아주 성공적인 관객몰이(?) 혹은 관객설득(!)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의 원류(?, 라기 보다는 같은 흐름)에 있는 한 편의 영화를 기억한다. 그것은 바로 <이블데드 3>!!!

어렸을 적 한동안 공포영화를 열심히 찾아보다가 찾아낸 <이블데드>시리즈의 (현재까지의) 완결작.
이 영화는 정말로 뒤통수였다. 당시에는 보면서 완전 끔찍하고 뭐 이따위 영화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다 크고 지나서 영화를 좀 더 좋아하게 되면서 이 영화의 과감한(!) 실험정신과 샘 레이미의 엉뚱함에 반해버린 영화다.
게다가 1,2편의 그 공포스러움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실망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절대 이 영화는 시리즈의 연작이기 보다는 단독적인 한 편의 영화로 재평가해야만 한다.

'펑키 호러'라는 단어를 알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야 말로 뭔가 무서운 듯 하지만, 웃음이 난무하는 골때리는 영화인 셈. 당시에 흥행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아~ 샘 레이미는 정말로 앞서가는 감독이었던가.

2. B급 정서.
한동안 'B급'이라는 용어가 많이 통용되었던 적이 있다. 물론 B급 영화가 나올때마다 다시 소환당해서 입담을 나눌 수 밖에 없는 단어이긴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이른바 영화광이라는 사람치고 자신만이 최고로 꼽는 영화들 중에 기괴한 영화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광도 아니며, 이상하게도 나의 베스트에 B급영화는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스스로도 괴로울 따름이다. 좋아하면서 완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이 나의 문제라면 문제.)
우리나라에도 B급영화를 좋아하고, 만드는 수많은 감독들과 영화광들이 존재한다. 거의 10년전의 키노(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언젠가를 둘러보면, B급영화에 대한 사랑을 논하고자, 박찬욱, 오승욱, 김지운, 임필성 등이 각자의 B급영화 예찬론을 펼친 기사도 있다. (기사제목 : 우리는 어떻게 망설임 을 멈추고 B무비를 사랑하게 되었나?)
예전에 트로마 스튜디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B무비에 대해서 쓴 글도 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왜 감독들은 B급영화에 열광하고, B급 정신을 추종할까?
또 다른면에서 왜 B급영화는 이토록 창궐하는가?
한편, 한국영화들에서는 유독 B급 영화들이 장사가 되지 않으며, 그런 드라마 역시 잘 제작이 되지 않는다. 작년에 굉장히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그것의 원작인 <노다메 칸타빌레>를 비교해보자. 두 드라마는 각각의 나라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두 드라마를 모두 본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드라마는 사실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정말로 핍박받고, 슬프고, 억압된 사람들의 성공적인 오케스트라 꾸리기에 집중하는 것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커다란 줄기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두 드라마를 모두 본 사람들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곤 한다. 나로서는 두 드라마를 모두 즐겁게 보았지만, 개인적인 선호도는 <노다메 칸타빌레>에 더 크게 작용한다. 이것은 결국에 드라마가 갖고 있는 정서의 문제인데, <베토벤>의 경우, 인물의 갈등들이 굉장히 첨예하고, 각자의 인물들이 자신의 갈등에 너무 집중하면서 정석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택하는 반면, <노다메>의 경우, 인물들이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고, 언제나 천방지축에 튀어다니며, 자신의 현실이나 갈등을 크게 혹은 심각하게 따지지 않는다. 굉장히 단순한 목표들을 설정하고 단순하게 반응하는 직선적인 캐릭터들이 난무한다. B급정서는 바로 이러한 점이다.

절대로 감정에 동화되지 않을 것!
절대로 현실에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

이것이 이른바 B급 정서의 핵심이다.
<시실리 2km>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봐라. 가장 우습게 등장하는 58년 개띠 조폭. 그에게 '상황파악'이라는 기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못을 박으라고 시켰는데, 망치가 없으면, 그것이 가장 해결해야할 숙제일 뿐이지, 형님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캐릭터다. 초반에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권오중'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그토록 맞고, 못이 이마에 박혔다면, 죽어도 일찌감치 죽어야 한다. 하지만 B무비에는 그런 사실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정신과 캐릭터들이 진정으로 영화의 장르를 섞는데 기초적인 재료가 된다.
가장 끝내주는 장면은 영화가 호러에서 멜로로 넘어서는 장면이다. 호러에서 멜로? 언뜻 상상이 가능할까? 이것이야 말로 일반 관객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관객들에게는 명장면이 새롭게 탄생한다. 쫓기는 임창정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들어서 폐교의 전화기. 그것을 방해하는 임은경 처녀귀신. 여기는 절대적으로 공포 영화의 관습을 철저하게 지켜가면서 분위기를 타고 간다. 그러나 영화가 뒤바뀌는 정점은 바로 '여기서 나가라'고 하는 처녀귀신의 대사에서 결정난다. 어느 영화에서 귀신이 '여기서 나가, 내구역'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통 공포영화에서는 있는 위엄, 없는 위협을 다 내보이면서 "냉큼 물러가지 못할까?"라는 식의 대사를 남발할 뿐이다. 그리고 임은경의 대사에 대해서 임창정은 '아침까지만 있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으잉??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이제 영화는 공포가 아니라 인간과 귀신 사이에 친밀감을 높이는 상황으로 바뀌어 간다. (정말 이런 캐릭터는 우리나라에서 임창정이라는 걸출한 배우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B급 캐릭터의 진수는 임창정의 독식이 아닐까?)


3. 지역 토호의 사회적 맥락.

<시실리>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새로운 맥락을 보여준다. 사실은 새롭다기 보다 감춰두었던 비기를 그제서야 발휘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싶다. 그 단서는 초반부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스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그 장면은 '시실리 2km'라는 팻말이 등장하는 컷인데, '시실리' 팻말 밑에는 '천사의 집 4km'라는 팻말도 있다. (천사의 집인데 죽음의 '4'km 팻말. 다분히 보이지 않는가?) 기본적으로 아무리 농기구에 단련된 사람들이고, 숫자가 많다한들 여자가 3명이나 포함된 집단에서 엄청난 연장(!)을 휘둘러대는 조폭 4명을 "제낄"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탐욕'이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하나의 설득을 얻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밝혀지는 그들의 과거에 의해서 또한 타당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과 탐욕이 만나서 제끼는 이야기에 대한 개연성을 더욱 확보해준다. 이 부분에 이르면 윤태호의 만화 <이끼>가 떠오른다. (지금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토호들은 이토록 강건하다. 토호는 단순한 토호도 아니며, 그것은 일종의 아성이다. 비록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중세 유럽과 같은 봉건제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그 토호들은 이 땅에 자리잡은 유사이래로 분명히 지속적인 힘을 발휘해왔다. 그러한 은유는 <시실리>에서는 가장 밑의 맥락에 깔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은 분명 이것에 대한 통찰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만화 <이끼>에서도 평화로워 보이는 그 마을에는 이상한 비밀이 있으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는 너무나 돈독하여 이방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이 단순한 주종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주는 예수같은 존재로써 비춰지는 우두머리라면, 그 결속력에다가 엄청난 냉기로 동결건조 시켜버린 결합력이 덧붙여진다.

<시실리 2km>는 장르영화의 규범을 마음껏 전복하는 즐거운 또 다른 반장르영화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꿰뚫어 가장 우회적으로 표현한 예술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한편, 만화 <이끼>는 이러한 사회적 속성들을 끔찍한 음모와 비밀을 파헤쳐가는 정공법의 이야기로서 양편의 극단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챠우>를 보기 위해서 찾은 신정원 감독의 데뷔작인 <시실리 2km>는 사실 여전히 진행중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차기작인 <챠우>에서도 자신만의 솜씨를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영화다. 곧 찾아볼 <챠우>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하다.
그러는 한편, 같은 이야기를 또 다른 방법, 정공법으로 파헤쳐간 <이끼>, 그리고 그것의 영화판인 강우석 감독의 <이끼> 역시 기다려진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질 때, 분명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