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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8 [메타영화]를 생각하다가 찾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인터뷰. 1

[영화] "첨단 테크놀로지 못 다루면 미래 영화감독 할 생각마라"

“텍스트 기반의 전통적 영화는 죽었다.” “영화는 100살이 넘은 올드 미디어, 시작하면 5분 만에 결말이 보이는 지루한 매체다. 영상 리터러시(해독력)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는 감각적으로 소비되고 마는, 나쁜 영화들이 왜 있어야 하는가. 영화의 4대 폭군인 ‘텍스트·프레임·배우·카메라’에서 해방돼야 영화의 재탄생이 가능하다. 영화의 미래는 인터랙티브·디지털 멀티미디어에 있다.”

거장의 선언은 심오했다. 신작 ‘야경’을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은 영국의 피터 그리너웨이(65·사진) 감독. 그는 축제의 한복판에서 침통한 ‘뇌사선언’을 했다. 기자회견(8일), 마스터클래스(9일)를 통해서였다. “지금 부산영화제에 온 영화의 대부분은 쓰레기(rubbish)다.” “세계적으로 3000개가 넘는 영화제가 있으나 너무 많아지면 공멸할 수 있다”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영화제란 영상 리터러시 훈련의 장이 돼야 한다”며 “21세기 영화감독은 멀티미디어의 항해자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너웨이 감독은 내러티브(이야기)보다 이미지를 강조하고, 수학·건축·과학·회화·영화의 역사를 아우르는 지성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야기를 할 거면 차라리 소설을 써라”고 강조하며 영화의 형식·문법을 실험하는 까다로운 작품을 발표해왔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 ‘차례로 익사시키기’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필로우 북’ ‘털시 루퍼 스토리’ 등 대표작들은 ‘메타영화(영화에 대한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1970년대 유럽 예술영화의 황금기 이후 영화의 관객은 점차 줄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암스테르담에서는 보통 2년에 한 번꼴로 극장에 간다. 현대인은 더 이상 ‘영화피플’이 아니라 ‘TV피플’이다. 그들에게 극장은 그저 ‘큰 TV’이고, 휴대전화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 내적으로도 아이젠슈타인이나 펠리니 같은 강력하고 풍부한 영상언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신작 ‘야경’은 ‘빛과 어둠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동명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다. 화가의 창작 과정을 통해 그림과 사회가 맺는 관계를 조망한다. 서구 문명·사상사를 이끌어온 회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화다. 감독은 영화에 입문하기 전 회화를 공부했고 지금도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왜 렘브란트인가.

“렘브란트는 지금 우리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모든 가치를 구현한 인물이다. 휴머니즘, 민주주의, 공화주의, 페미니즘, 포스트 프로이트주의까지다. 위대한 혁신가이자 새로운 회화의 시조였다. 새로운 회화·이미지에 대한 그의 고민은 지금 나(영화감독)의 고민과 같은 것이다. 또 영화란,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극장에 거는 것이기도 하고. ‘야경’을 기점으로, 승승장구하던 렘브란트가 몰락하는데 이 그림 안에 숨겨진 51개의 미스터리가 그의 삶에 대한 단서라고 봤다.”

-렘브란트의 빛을 스크린에 구현한 게 놀랍다.

“고화질 테크놀로지 때문에 가능했다. 예술가는 당대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를 잘 알아야 한다. 베르메르가 400년 전 이미 원시적 카메라를 사용했고 다빈치가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뇌사선언을 했다.

“누 구나 이미지를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는 시대에 아직도 7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의 틀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죽었다’고 한 것이다. 지금 영화는 거대한 연예오락산업이지만, 내 눈엔 꼬리는 움직여도 머리는 이미 죽은 공룡처럼 보일 뿐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아이디어·제작·유통·배급 방식을 찾아야만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다. 가령 극장영화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수동적 미디어다. 우리 시야는 본래 전방위로 열려 있는데 왜 깜깜한 어둠 안에 앉아 모두 한방향을 바라봐야 하는가. 그런 일방통행보다 1대1로 관계를 맺는 랩톱이 영화의 미래를 보여준다. 앞으로의 영화감독은 디지털 전자매체, 사이버 스페이스를 아우르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가 돼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산영화제에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4대 폭군’도 흥미롭다.

“텍스트·프레임·배우·카메라다. 대다수 영화가 이미지 아닌 소설 등 문자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 4각형 스크린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배우의 능력도 일부만 활용하고 있다. 배우의 감성은 물론 신체적 능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밖에 못한다. 그를 뛰어넘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영화에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