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의 촛불 시위는 어떤 단어로 표현해도 단어를 넘어서는 끔찍함의 날이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더이상 정권이라는 저들, 공권력이라는 이름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던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까지 저지르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거다.
멍청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움직이는데 어디로 왜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존재야 말로 downer cow인 셈이다.
언제들 그렇게 일찍 미쿡소를 즐쳐드셨는지.. 잠복기도 좀 빠른듯 하다.

29일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지켜보았다.
(물론 머릿수 채움의 '참여'이지만, 왠지 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10일에 진보신당 칼라TV 자원활동을 해본 인연으로, 왠지 칼라TV 근처에서 뭔가 도울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런 탓에 그냥 그곳에 자리를 잡고 계속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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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8시쯤 시청으로 도착해서, 시의회 앞을 지나, 프레스 센터쪽을 통과, 청계천 이상한 소라쪽으로 해서 종로까지 간 것이었는데..
이미 물대포와 소화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이 쯤되면, 공성전인 셈이다. 닭장버스 뒤에 무엇이 있는 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뒤에 앉은 놈은 뭐하는 놈이길래, 맨날 거짓말로 고개 숙이고, 돌아서서 하는 소리는 '불법시위 엄단', '배후세력 축출' 등등의 쥐소리인가.
그러니깐 쥐새끼 소리를 듣는 거다.
그런데 이 외계의 쥐는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행위에 더욱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나보다. 하긴 그런식으로 현대건설을 끌어왔고, 서울을 망가뜨렸지.

어디보자. 그런데, 이 상황은 묘하게도 영화 <미스트>와 닮아 있다.
이 날의 상황은 미친듯이 뿌려대는 소화기와 물대포 때문에 완전히 자욱한 안개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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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재난(!)에 맞서 싸우고 있는 거다.
몇가지 유사점을 얘기해보자.

영화 <미스트>의 재난은 과학자들의 실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이미 자연에 대한 도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 사회로 들어올 미쿡소는 단순히 먹거리의 광우병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죽은 소의 뼈를, 혹은 다른 가축들의 뼈와 내장을 버리기 아깝다고 갈아서 사료화해서 만든 자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어 버린 과학자들은 바로 우리가 실수로 뽑은 이명박 정권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와 같은 안개를 만들고 있고, 시민들은 그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싸우는 거다.
<미스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다.

이날 시위에서 결국 바리케이드인지 차원의 문이지 모를 줄줄이 버스사탕(아 맛없겠다.)을 끝내 끌어서 돌려낸 시민들의 상황. 사실 시민들은 정말로 순진하다. 무언가 진출을 하겠다고 버스를 흔들었고, 끝내 그것을 열었지만, 그것을 열었던 순간은 '와아~~'하는 함성이 다 였다. 함성 뒤에 아주 잠시의 공백상태. 아무도 어떻게 해야하는 줄 잘 몰랐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로 길을 막아서 뜯어내긴 뜯어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그런데 이내 상황은 돌변했다. 차원의 문을 뚫은 것 같은 이 곳에서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내던 녀석들이 저글링을 하며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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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이 11시 54분 되시겠다. 뜯어낸 직후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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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가 11시 55분 되겠다. 놀랍지않은가?


단 1분 만에 저글링해서 나오는 이 갑각류크리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나왔고, 바로 대오를 갖춘다. 기자가 아닌 터라 이 이후에는 갑자기 치고오는 의(!)경들 덕분에 무서워하며 뒤로 빠졌다.
이 상황직후, 강경진압을 바로 시작한 의경들은 집히는데로 아무거나 다 던지며 다가왔고, 사진 왼편에 계신 칼라TV 카메라맨은 소화기에 머리를 맞고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셨다.

의경들의 헬멧과 장구류, 소재들을 보면, 밤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정말로 무슨 벌레가 가득한 것 같다. <미스트>에서는 차원의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온 안개 속에서 이상한 갑각류 크리쳐들이 날아들어서 인간을 공격한다. 고스란히 지금, 2008년 6월의 한국에서 실사판으로 재현되고 있다.
본 사람을 알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스트>는 2008년 1월 첫 외화로 개봉을 했고, 나 역시 그 영화를 극찬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영화 <미스트>와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닮아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단순한 모양새의 비교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지적해서 찾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미스트>와 비교할 지점은 바로 이제부터다.

다들 가보면 알겠지만, 시위장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선 연합군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강경진압 후, 그냥 얌전한 대치 및 소강상태에 이르면, 대오 안의 의경들에게 아저씨들이 '형'이랍시고, '삼촌', '아버지'뻘이랍시고 반말로 자극하는 경우를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아.. 동방예의지국이라서인가? 어찌나 그렇게 나이값들을 열심히 하시는지.

음, 자꾸 이야기가 샌다.
아무튼 이토록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있어서 참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것은 고스란히 <미스트>에서 수퍼마켓 정국으로 비교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립후 처음으로 등장해서 아이를 찾으려 가야한다는 엄마이다. 이 엄마는 자신의 자식들이 집에 남겨져서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돕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외부의 안개는 두렵다. 나가면 죽을것 같은 곳이다. 영화는 이것을 매우 작은 에피소드로 얘기하지만, 그 여파는 정말로 영화의 모든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 보호를 핑계삼아서 수퍼마켓 안에 남는다. 즉, 주인공은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결국 집에 남은 그의 아내는 시체로 발견된다. 막연한 희망은 절대로 밝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법이다. 세상일 중에 어떤 것은 분명히 all or nothing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절망하여, 갖고 있는 권총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자신만이 혼자서 이 지옥을 견뎌내려 한다. 그러나 이내 곧 군인들이 등장하고, 점점 사태는 진정에 이른다. 이때 군용트럭에 실려가며 주인공을 보고 가는 이가 있으니, 바로 처음에 자식들에게 간다던,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여자다. 그녀는 그 덕분에 모두(all)가 살아남았고, 주인공 남자는 남은 가족이 없다(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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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정은 뭐라 할 말이 없다. 영화를 보다가 이 장면이 되면 정말로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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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울부짖어도 때는 늦었다. nothing.


자 이 지점이다.
결국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는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효율' 혹은 '효용', '실용'이 아닌 게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주인공은 자신의 효율적인 선택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바로 그 여자를 만나는 순간에 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늦다.
효율적인 선택이란 결국 자신안에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속물성과 다름없다. 결국 이명박을 뽑은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에게 무언가가 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뽑았고, 그에게서 실제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계급은 정녕 대한민국 1%이다. 자신이 1%가 되기를 원했거나, 그래도 무언가 콩고물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서 지금 이 촛불정국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머릿수는 중요하다. 그러나 내적인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 여전히 부화뇌동하면서도 가장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 마지못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얼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 깨쳐야한다. 자기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촛불로 광장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 안에 촛불을 집어넣어서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을 밝히고, 꺼내서 깨끗하게 불살라야 할 필요가 있다.


뱀발1.

그리고 이 게임은 소고기와 FTA를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결국엔 All or Nothing 게임이다. 순진하게 소고기는 문제가 있어도 FTA는 해야한다라는 식의 생각은 결국 NOTHING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전법이 아니라, 주성영같은 똘추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저열한 방법론이다.


뱀발2.
영화는 함의와 관계없이, 한국사회의 몇십년 후의 모습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국 내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영화 <고기 도시>도 결국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가장 안쪽의 싸움을 이겨야만, 가장 바깥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다.

한국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뭐 언제는 급변하지 않은 적이 있겠냐만...

지금의 변화는 가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지점이 아닐까 싶다.
거의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율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넷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의 영역에서 오프라인 영역의 확장, 그리고 다시 피드백!
자, 이제 어떡할 것인가?

한국의 인터넷 세상은 다른 나라와는 굉장히 다르게, 포털 중심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포털은 아성은 네이버의 독주 체제하에 2등인 다음의 추격이라는 구도다.
게다가 이 구도는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서, 네이버가 73%, 다음은 18%라는 지형도를 굳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고기 문제를 필두로, 결국 시민들의 힘에 의해 인터넷 세상마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시위 현장에 나타난, "토론의 성지, 아고라"라는 깃발은 정말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어떤 커뮤니티도 아니고, 그렇다 하여 웹2.0시대에 걸맞는 블로그와 트랙백으로 이루어진 섬과 섬 잇기의 새로운 형태도 아니다.
다음 내의 어떤 직원의 기획인지... 그리고 그의 이름짓기는 정말 말그대로 적중한 셈이다.
아고라.
이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토론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이름에서 엄청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의 한 인터넷 포털의 서비스이름으로 옮겨왔다. 결국 그것은 다시 실제로 광화문에 아고라를 만들어냈다.
21세기 동방의 한 나라의 핵심이라는 곳에서...

그러나 이것은 결국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이라는 한 멍청한 downer컨셉의 불도저가 엄한 짓을 하면서 만들어진 우리의 소중한 결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시대는 정말로 필요한 것들만 만들어낸다.
아고라의 깃발은 21세기의 새로운 혁명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는 자유로운 시민, 그리고 네티즌들에서 부터 시작했다.

자, 세상은 이미 매트릭스이고, 거대한 네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라 이미 하나인 상태다. 온에서 오프로, 오프에서 온으로 스위치를 바꾸어가는 것이 아니라, '온'과 '오프'는 단지 양상이 다른 것일뿐 실제적으로 언제나 'ON'인 셈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한국의 시민들은 '빨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즉, 포털의 이용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기호 혹은 정치성에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한거다.
이 상황에서 인터넷 세상의 양대 포털의 반응을 보면, 가히 기가 막히다.
이른바 '개이버'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소극적인 행동(아니 이미 접수, 점령당한 '정권의 개'같은 행태들)을 보이면서, 여전히 단순한 눈앞 이득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네이버. 그들의 생각은 겨우 이 수준이다.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중립성'을 표방한다고 하는 방식. 그것이 결국엔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점을 보여준다.
결국 포털의 뉴스는 단순히 클리핑이 아니며, 이미 편집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언론'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 이제 문제의 시작이다.
언론이라면 편집의 방향, 노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미 아닌 척 하지만, 네이버는 조중동'네'라는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미 덩치가 커질대로 커져버린 네이버는 인터넷상의 삼성이며, 대기업이다. 말그대로 골리앗이다. 하루아침에 망할리야 없겠지만, 레밍과 개미들은 점점 골리앗의 뇌를 파먹을 것이다.
한편, 다음은 어떤가? 상대적으로 좌편향인 것처럼 알려져 있고, 그렇게 보이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선언도 아니고 어떤 얼치기 양상일 뿐이다. 이쯤에서 다음은 사실상 편집의 방향에 선언을 해야 하진 않는가? 다음의 서비스인 '아고라'는 자생적으로 발생하여, 토론의 성지를 이루었고, 시민들의 행동선언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것을 수용하라는 뜻이다. 수용이란 꼭 같은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의 흐름을 수용하라는 뜻이다.

어찌되었건, 포털과 정치성은 더이상 인정을 유보하는 단계가 아니라, 선언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어서, 촛불이 줄어들고 있다는 둥의 기사를 보수언론에서 뽑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명박산성을 치고 뒤편에서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도 전혀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이 정권과 보수 언론들은 자신들의 뇌용량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 그냥 2mb라면 2메가라고만 생각하는 거다. 문제는 그 마저도 배드섹터 덩어리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은 한 사람이 잘난 척해서 바꾸려했을때 언제나 엇나갔음을 증명해왔다. 반대로 시민 혁명들은 가장 늦게 일어나서 가장 획기적으로 세상을 뒤집곤 했다.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반골이 바꾸어왔다.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진정한 정체성을 추구하려고 하면, 시민들은 그것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이미 세상은 거대한 네트이다.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의 세상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파란약을 먹고 살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7%에서 더더욱 떨어질 것이다. 빨간 약,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고, 방법이다. 얄팍한 잔머리보다 정통의 뚝심과 선택이 인터넷 세상, 오프라인 세상, 시민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순진과 순수 사이/

my usual epic 2008. 6. 17. 13:38 Posted by Ru
순진과 순수 사이에 커다란 간극.

글쎄, 내가 나를 보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많이 나오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난 순진하고 싶진 않다.
굳이 말하자면 순수하고 싶은데..
순진한거다.

이미 이런 글을 시작한 것 조차, 그리고 말들을 이렇게 쓰는 것 조차 내가 '순진'하다는 뜻이 아닐까.
괴로움이 크다고 하여, 마구마구 토로하고.. 나만 봐달라, 나를 이해해달라.. 하면서 주변부에 쏘아내버리는 어떤 바보같은 행동들이 이젠 나를 옥죄어 온다.

어제 아침에 방에서 깨어나면서, 무언가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그냥 깨달음이다. 무언가를 바꿔줄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래도 깨달음이다. 내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로에 섰다.

내 순수함을 주변부에 강요하고, 그것을 봐달라고 우기고, 토하고, 성내고,
상대들의 순수함을 전혀 보지 않으려고 한 것들, 사람들 사이에서 각자 '다른' 순수함을
비교해버리고, 맞고 틀리다의 차원으로 생각해버리고...
그러니깐 내가 '순진'한가보다.

그리고 그 '순진'은 정녕 부정적 뉘앙스일 뿐이다.

그러나 내 순진이 죄의식으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찌되었든 다른 사람의 '순수'들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해버린 것들은 미안하다.
그냥 나 역시 결함이 있는 사람임을 인정한다.

무엇보다도 앞으로가 중요하다.

검색을 해서 찾아보면.. 탄핵이란!!

탄핵 [彈劾]
[명사]
1 죄상을 들어서 책망함. ≒탄박(彈駁).
2 <법률>보통의 파면 절차에 의한 파면이 곤란하거나 검찰 기관에 의한 소추(訴追)가 사실상 곤란한 대통령·국무 위원·법관 등을 국회에서 소추하여 해임하거나 처벌하는 일. 또는 그런 제도.

이라고 되어 있다.

뭐. 뜻이야 아무렴 어떻겠나.
중요한 것은 역사적 경험이 아닐까?
그리고 그 경험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다.

대한민국의 60여년의 역사. 그 안에서 과연 우리의 민중들은 무엇을 해왔고,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캐릭터가 염세적인 것인지, 먹물근성이 있어서인지..(사실 이말은 내가 봐도 좀 엿같다. 내가 무슨 공부를 얼마나 하고, 얼마나 아는게 있어서 남에게 이런 식의 태도를 갖고 있는건지... 물론 그렇다고 그런 태도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더더욱 위선일테지. 어쨌거나 인정.)
난 사실 민중은 민중이라기보다는 '우중', '중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니면 순진하던가. 혹은 낭만적인 거지.

우석훈씨는 10대가 거리로 나서는 것은 20대가 움직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그 말에 동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위상은 좀 모르겠다. 4.19때의 10대들, 즉 중고등학생들이 나이가 10대였지, 사실상 당시에 그들은 혜택받고, 혈기넘치고, 정의롭고, 극악함에 싸우는 쁘띠 엘리트 쯤은 되지 않았었나? 요즘의 10대가 어디 그런가? 아무리 10대가 숫자상, 세대상 다다음 세대를 짊어지는 필연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현재의 위상이 과연 그러한가??
더더욱 요즘 10대의 부모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변절한) 386세대들이 아니던가. 자신의 욕망을 단순히 긍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고착화하고 세력화를 시작한 세대들이 그들의 부모임을 자신의 저서에서 가장 잘 밝힌 사람이 우석훈이다. 어찌되었건 나의 생각은 그의 것과는 여기서 좀 달라진다.

그리고 나의 생각의 또 다른 근거는 결국 역사적 경험의 문제이다. 4.19세대들은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켰고, 그로 인해 이승만은 하야했다. 또한 여기서도 탄핵이 아닌 '하야'라는 용어가 되었다. 당시에는 탄핵소추에 관한 것이 헌법상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검색해보려 했는데 좀 귀찮다.)

한편, 또 중요한 세대인 386들은 바로 87년 6월항쟁 세대와 일치하는데, 그들은 결국 80년 서울의 봄에서의 실패를 딛고 항쟁을 성사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끝내 호헌조치만 철폐하고 6.29선언이라는 눈가리고 아웅을 수용하기만 할 뿐, 끝내 정권을 부수는 데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그들은 9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의 각계각층으로 파고들어가 자신들의 밥벌이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IMF를 통과하면서 이상한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을 낳았고, 그들이 이제 바로 어제, 그제 촛불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10대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시키고 있다. 가장 세속적인 '장래희망'을 적는 세대들인 것도 사실이다. 뭔가 어불성설의 느낌도 있다. 과연 10대들이 왜 촛불시위(문화재인가?)에 나오는가?

촛불시위가 뭐랄까...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2002년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건에서 본격 등장한 촛불시위는,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광화문을 뒤덮었고, 이제는 다시 미친 소 먹고 미치고 싶지 않다고 다시 서울 시내를 메우고 있다. 여기서 분명 차이점이 있다. 미선, 효순 양이 죽임당한 후, 그것에 대한 추모의 시위에서는 기본적으로 인륜에 대한 느낌이 있다. 물론 그 와중에 sofa개선에 관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여전히 감성에 근간한 분노를 중심으로 행해졌다. 노무현 탄핵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정략적으로 움직인 정당들의 합작에 대한 불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왠지 내 스스로가 미쳐죽을 것 같은 불안감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이런 촛불시위의 맥락에서 개인적인 안위 혹은 욕망 또는 직접적 이익과 관련한 분위기를 읽어볼 수 있다. 이른바 요즘의 시위들이란 어떤 공적인 '가치'에 대한 수호의지가 작용하기 보다는, 개인들 또는 집단들의 실질적, 실용적 '실리'에 대한 욕망이 작동한다.
이것이 탄핵 시위, 온라인 서명, 촛불시위 등에 대한 나의 불신임(?)이란 거다.
세속적인 욕망이란 분명히 쉬이 떨어져 나간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단순히 '소고기' 문제가 아니다. 영화로 따진다면 '소고기'는 단순히 소재 혹은 테마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회의 구조에 있는 셈이다. 구조적인 인식 혹은 문제의식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것을 단지 '미치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정말로 '소고기 수입 금지'라는 국민 정서 "반영"으로 끝날 수 있다는 거다.

아씨. 이게 단지 소고기 문제가 아니잖아.



ps. 근데.. '소고기'가 맞아? '쇠고기'가 맞아? (이명박 철자법이 되버렸네.. 제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72423


쩝.

영화에는 도움이 되는 거냐?
현실에는 끔찍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