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

해먹었습니다.. 드디어..

역시.. 역대 서울시장들은 정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 같습니다요.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이렇게 잘도 해 먹습니다.

이게 무슨 냉장고도 세탁기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해먹어도 되는 건지..

푸하하핫..

운명은 이렇게도 운명스레 찾아옵니다요.

헛헛헛..

문화재청장 유홍준에 관한 우석훈씨의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결국엔 같은 물이죠.

오늘 청계천변에 앉아서 저녁에 술한잔 했습니다요. 딱 한잔.

징검다리 보면서 누가 건너네 마네 헛소리 찍찍 갈겼습니다.

그래도.. 다리밑에 옹기종기 신발벗고 다리 걸친 커플들이 부러웠습니다요.

아.. 청계천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였군요.

시청은 그렇게 부서지구요.

만쉐이... 꽥!

'寫眞 뎐 > from ru'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산동/ 옥상 야경.  (2) 2008.10.24
/구름/ 영상자료원에 갔다가...  (0) 2008.09.01
/Imagine!/ 상상해보세요..  (1) 2008.08.26
/성산동노을/ 2008 0823  (0) 2008.08.24
/다시 시작/ 다짐.  (2) 2008.07.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사는 되풀이된다!

다들 많이 들어 본 얘기일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혹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태도에 따라서 이 문장은
체념적으로 들리기도, 강렬하게 들리기도, 가치중립적인 느낌으로 들리기도 한다.

뻔하게도 역사는 단순히 한 민족, 국가 안에서 되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간을 옮기고, 또 거기서 시간을 옮겨서 다시 되풀이된다.
일단 이유는 차치하고 이 이야기를 꺼낸 앞뒤 정황을 얘기해보자면...

<존 레논 컨피덴셜>. 원제는 <The U.S vs John Lennon>
간단히 설명하자면, 비틀즈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존 레논의 독보적 행보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단순히 '반전운동'을 했다는 행적으로 나름 알려져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레논은 낯선 존재이다. 언제나 남의 나라의 위인들은 '일화'로써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비틀즈의 입장에서는 60년대 말, 70년대 초를 거치면서 멤버들간의 불화 및 음악 노선의 변화로 이미 해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오노 요코가 있다. 그리고 존 레논은 일단 요코를 통해서 새로운 예술가로서의 도약을 한다. 68년도를 거치면서 전 세계는 이미 들썩들썩한다. 물론 그전에 이미 베트남전은 발발했다. 20세기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기는 단순히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사회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존 레논을 낳았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냉전의 대리전으로써 진행된 베트남전 시기에 요코와 레논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사이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단 하나 '평화'다.
이미 비틀즈 시기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하곤 했던 레논. 세상은 연예인 조차 가만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요코와 신혼여행을 아예 '침대 시위'로 변모시킨다. 수년간 대중의 우상으로써 군림한 레논은 그에게 가해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플래시 세례를 적극 이용해서 세상에 거침없이 '평화를 택하라'고 소리친다. 그들의 침대 시위는 정녕 간디의 비폭력 투쟁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미 그것을 넘어서서, 그들을 찾아온 미디어를 향해 노래를 불러주며,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버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다름이 아니라, 레논과 요코가 전 세계 11개 도시에 "War is over"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를 닮은 포스터를 붙였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69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 메시지를 붙였다.
자세히 보면(아니 대충 봐도) "if you want it / Happy Christmas from John & Yoko"라고 적힌 이 문구.
TV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는 그 포스터를 붙이는 작업의 돈은 어디서 나와서 쓰냐고 묻는다. 레논은 당당하게 '지금은 우리의 주머니(pocket)에서 나온다'라고 대답한다.
어떤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레논과 요코는 자신들의 돈을 털어서 11개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저 메시지를 뿌리고 있었다. 저 메시지를 읽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이 바로 "John & Yoko"가 원하던 당신(YOU)이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미국 내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극도의 패권주의자였던 닉슨과 그의 공화당. 한편 존과 요코는 공화당의 전당대회를 따라 다니면서, 그 곁에서 평화콘서트를 주최한다. 한편, FBI국장이던 에드가 후버는 지속적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견제한다. 흑인들의 급진당이었던 블랙팬더는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인권 운동을 주창한다. 그러는 가운데 마틴 루터킹은 암살을 당한다. 이러한 장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72년 재선에 성공한다.
하지만, 존과 요코는 절대 실망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계속한다. 백악관 주변에서 반전평화론자들이 촛불시위를 펼치고, 닉슨은 촛불시위를 축구경기 구경하듯 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지저분한 방법으로 존과 요코를 추방하려 한다. 체류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음으로써 강제 추방을 하려고 하지만, 존과 요코는 이에 대해서 법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수년이 걸리는 사이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결국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고, 존과 요코는 마침내 미국 영주권을 획득한다.
이후 영화는 투쟁에 승리한 존과 요코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잠시 이어간다. 결국 80년 12월 9일 데이비드 채프먼에 의해 권총 암살을 당하는 걸로 생을 마감하는 존 레논.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영화를 보면서 섬찟한 것은 이 역사가 고스란히 2008년 한국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닉슨은 이명박, 에드가 후버는 어청수, 베트남전은 쇠고기 정국, 미국의 보수기독교는 한국의 보수기독교, 반전행동의 촛불은 시청앞 촛불, 관련한 수배자들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단 한가지, 다른 점은 2008년 한국에는 '존과 요코'가 없다.
앙꼬없는 찐빵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불만이 아니라 일종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도 존은 <Happy Xmas (war is over)>, <Give peace a chance>, <Power to the people>, <Imagine>, <Love> 등의 노래를 만들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고, 민중들 역시 그의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더욱 힘을 모았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우리에겐 <대한민국 헌법 1조>라는 노래가 있지 않느냐고 얘기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대칭항이 성립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윤민석 이라는 민중가요 작곡가가 만들었다. 이 노래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다름을 얘기하는 것이다. 존의 노래들은 메시지도 강렬하지만, 존 스스로가 원래 대중가수였고, 그의 의식이 발전하여 예술가가 되었고, 다시 사회참여로 이어진 경우인 거다. 그가 가지는 파급력은 단순한 호응과 집결을 넘어서, 예술적 승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최고의 힘이 된다. 그리고 시민들은 레논의 노래를 부르면서 정치적 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의 힘에 감복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정말로 "If you want it"라는 말을 보고 어떻게 원하지 않겠는가? 전쟁이 정말로 끝나기를 원한다면, 노래를 부르면서 옆사람의 손을 잡고, 군인들의 총부리에 꽃을 꽂으면서 '사랑'으로 감싸안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존과 요코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어떤 분야의 누군가가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또는 준비한다고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가 결국에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을 잘못 해석하여 '존과 요코'를 '영웅'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서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일 뿐이다. 좀 더 다르게 얘기해봐도 그래봤자 수많은 '예술가'들의 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안에서 어떤 영웅을 만들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잘못 택한 길이 될 거라 믿는다.

존은 스스로가 이렇게 노래한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
from <Imagine>
간단히 말하면, 함께 하자, 연대하자 쯤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도 나도 친구이고 평등한 관계로서 인간의 본연한 마음으로 만나서 함께 하자는 거다. 패권 따위일랑은, 나만이 잘살겠다는 욕심일랑은 버리고 같이 살자고 말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전쟁은 끝난다. 말그대로 당신이 원하면...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된다.

서글픔만을 따져서 본다면, 분명 우리는 아직 '존과 요코'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산 '존과 요코'를 만들거나 기다릴 것인가라면 그건 아닌것 같다. 정말로 필요하다면, 일단 이 영화를 보고, 존과 요코의 노래를 듣고 생각해보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서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함께 하는 거다. 진심으로...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해야할 일은
저 위의 사진...
마지막 줄에 쓰인 "Happy Christmas from John & Yoko" 옆에 당신의 이름을, 나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다.


<Give peace a chance>
처음에 나오는 장면은 존과 요코가 침대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호텔방에서 콘서트를 하는 장면이다.
뒤에 'Hair Peace', 'Bed Peace'라고 쓰인 문구를 보라.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는 모든 인터뷰에서 자신의 자료화면을 내보낼때 'PEACE'라는 문구를 꼭 내보라고 했다.


<Happy Xmas (War is over)>
존과 요코의 메시지의 마지막에 우리의 이름들을 적어놓고 전세계를 누비는 투어를 시작해보고 싶다.
누군가의 피스보트가 출발한다면, 나의 이름을 같이 적어주기를.. 그 피스보트에 붙일 메시지는 내가 직접 만들어서 꼭 선물하겠다.


<Love>
존과 요코의 사랑인 듯 하지만,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쾌하고.. 그래서 강렬하다.
우리의 이야기다.



<Power to the people>
민중에게, 시민에게 권력을...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촛불을 꺼트리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나가자구요.
대한민국의 '존 레논'은 어떤 사람이나 예술가가 아니라 일단 당신의 마음에 있구요. 그것들을 모두 꺼내서 서로서로 보여주고 나눠주고, 더욱더 키워나가면 그 곳에 '존과 요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비슷한 사람도 나오리라 믿습니다. 순진한게 아니라 진심입니다.


ps.
또 다른 혁명영웅이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한마디.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존의 노래 <Imagine>의 가사와 놀랍도록 이어지는 이야기다.

뭐랄까 체와 레논은 만난적이 있을까? 어찌되었건 천상의 세계에서 두 사람은 만났겠지.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ps2.
영화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 칼 번스타인은 <힐러리의 삶>의 저자이며, 닉슨을 하야 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대우자동차 CF에 출연한 적도 있다. <대통령의 음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인물이다.
그외에 노암 촘스키, 타릭 알리, 월터 크롱카이트 등도 인터뷰이로 나온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영화도 보고, 더 찾아보는 기쁨을 누리기를..


6월 28일의 촛불 시위는 어떤 단어로 표현해도 단어를 넘어서는 끔찍함의 날이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더이상 정권이라는 저들, 공권력이라는 이름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던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까지 저지르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거다.
멍청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움직이는데 어디로 왜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존재야 말로 downer cow인 셈이다.
언제들 그렇게 일찍 미쿡소를 즐쳐드셨는지.. 잠복기도 좀 빠른듯 하다.

29일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지켜보았다.
(물론 머릿수 채움의 '참여'이지만, 왠지 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10일에 진보신당 칼라TV 자원활동을 해본 인연으로, 왠지 칼라TV 근처에서 뭔가 도울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런 탓에 그냥 그곳에 자리를 잡고 계속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엔 8시쯤 시청으로 도착해서, 시의회 앞을 지나, 프레스 센터쪽을 통과, 청계천 이상한 소라쪽으로 해서 종로까지 간 것이었는데..
이미 물대포와 소화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이 쯤되면, 공성전인 셈이다. 닭장버스 뒤에 무엇이 있는 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뒤에 앉은 놈은 뭐하는 놈이길래, 맨날 거짓말로 고개 숙이고, 돌아서서 하는 소리는 '불법시위 엄단', '배후세력 축출' 등등의 쥐소리인가.
그러니깐 쥐새끼 소리를 듣는 거다.
그런데 이 외계의 쥐는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행위에 더욱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나보다. 하긴 그런식으로 현대건설을 끌어왔고, 서울을 망가뜨렸지.

어디보자. 그런데, 이 상황은 묘하게도 영화 <미스트>와 닮아 있다.
이 날의 상황은 미친듯이 뿌려대는 소화기와 물대포 때문에 완전히 자욱한 안개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제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재난(!)에 맞서 싸우고 있는 거다.
몇가지 유사점을 얘기해보자.

영화 <미스트>의 재난은 과학자들의 실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이미 자연에 대한 도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 사회로 들어올 미쿡소는 단순히 먹거리의 광우병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죽은 소의 뼈를, 혹은 다른 가축들의 뼈와 내장을 버리기 아깝다고 갈아서 사료화해서 만든 자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어 버린 과학자들은 바로 우리가 실수로 뽑은 이명박 정권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와 같은 안개를 만들고 있고, 시민들은 그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싸우는 거다.
<미스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다.

이날 시위에서 결국 바리케이드인지 차원의 문이지 모를 줄줄이 버스사탕(아 맛없겠다.)을 끝내 끌어서 돌려낸 시민들의 상황. 사실 시민들은 정말로 순진하다. 무언가 진출을 하겠다고 버스를 흔들었고, 끝내 그것을 열었지만, 그것을 열었던 순간은 '와아~~'하는 함성이 다 였다. 함성 뒤에 아주 잠시의 공백상태. 아무도 어떻게 해야하는 줄 잘 몰랐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로 길을 막아서 뜯어내긴 뜯어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그런데 이내 상황은 돌변했다. 차원의 문을 뚫은 것 같은 이 곳에서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내던 녀석들이 저글링을 하며 쏟아져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거이 11시 54분 되시겠다. 뜯어낸 직후란 말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거가 11시 55분 되겠다. 놀랍지않은가?


단 1분 만에 저글링해서 나오는 이 갑각류크리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나왔고, 바로 대오를 갖춘다. 기자가 아닌 터라 이 이후에는 갑자기 치고오는 의(!)경들 덕분에 무서워하며 뒤로 빠졌다.
이 상황직후, 강경진압을 바로 시작한 의경들은 집히는데로 아무거나 다 던지며 다가왔고, 사진 왼편에 계신 칼라TV 카메라맨은 소화기에 머리를 맞고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셨다.

의경들의 헬멧과 장구류, 소재들을 보면, 밤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정말로 무슨 벌레가 가득한 것 같다. <미스트>에서는 차원의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온 안개 속에서 이상한 갑각류 크리쳐들이 날아들어서 인간을 공격한다. 고스란히 지금, 2008년 6월의 한국에서 실사판으로 재현되고 있다.
본 사람을 알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스트>는 2008년 1월 첫 외화로 개봉을 했고, 나 역시 그 영화를 극찬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영화 <미스트>와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닮아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단순한 모양새의 비교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지적해서 찾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미스트>와 비교할 지점은 바로 이제부터다.

다들 가보면 알겠지만, 시위장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선 연합군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강경진압 후, 그냥 얌전한 대치 및 소강상태에 이르면, 대오 안의 의경들에게 아저씨들이 '형'이랍시고, '삼촌', '아버지'뻘이랍시고 반말로 자극하는 경우를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아.. 동방예의지국이라서인가? 어찌나 그렇게 나이값들을 열심히 하시는지.

음, 자꾸 이야기가 샌다.
아무튼 이토록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있어서 참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것은 고스란히 <미스트>에서 수퍼마켓 정국으로 비교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립후 처음으로 등장해서 아이를 찾으려 가야한다는 엄마이다. 이 엄마는 자신의 자식들이 집에 남겨져서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돕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외부의 안개는 두렵다. 나가면 죽을것 같은 곳이다. 영화는 이것을 매우 작은 에피소드로 얘기하지만, 그 여파는 정말로 영화의 모든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 보호를 핑계삼아서 수퍼마켓 안에 남는다. 즉, 주인공은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결국 집에 남은 그의 아내는 시체로 발견된다. 막연한 희망은 절대로 밝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법이다. 세상일 중에 어떤 것은 분명히 all or nothing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절망하여, 갖고 있는 권총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자신만이 혼자서 이 지옥을 견뎌내려 한다. 그러나 이내 곧 군인들이 등장하고, 점점 사태는 진정에 이른다. 이때 군용트럭에 실려가며 주인공을 보고 가는 이가 있으니, 바로 처음에 자식들에게 간다던,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여자다. 그녀는 그 덕분에 모두(all)가 살아남았고, 주인공 남자는 남은 가족이 없다(nothing).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녀의 표정은 뭐라 할 말이 없다. 영화를 보다가 이 장면이 되면 정말로 절망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울부짖어도 때는 늦었다. nothing.


자 이 지점이다.
결국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는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효율' 혹은 '효용', '실용'이 아닌 게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주인공은 자신의 효율적인 선택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바로 그 여자를 만나는 순간에 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늦다.
효율적인 선택이란 결국 자신안에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속물성과 다름없다. 결국 이명박을 뽑은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에게 무언가가 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뽑았고, 그에게서 실제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계급은 정녕 대한민국 1%이다. 자신이 1%가 되기를 원했거나, 그래도 무언가 콩고물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서 지금 이 촛불정국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머릿수는 중요하다. 그러나 내적인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 여전히 부화뇌동하면서도 가장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 마지못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얼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 깨쳐야한다. 자기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촛불로 광장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 안에 촛불을 집어넣어서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을 밝히고, 꺼내서 깨끗하게 불살라야 할 필요가 있다.


뱀발1.

그리고 이 게임은 소고기와 FTA를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결국엔 All or Nothing 게임이다. 순진하게 소고기는 문제가 있어도 FTA는 해야한다라는 식의 생각은 결국 NOTHING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전법이 아니라, 주성영같은 똘추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저열한 방법론이다.


뱀발2.
영화는 함의와 관계없이, 한국사회의 몇십년 후의 모습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국 내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영화 <고기 도시>도 결국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가장 안쪽의 싸움을 이겨야만, 가장 바깥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다.

도저히 못참겠다.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도대체가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란 제 스스로의 자존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인가?

이명박이라는 인간이 취임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돌이킬수 없다 치자.(사실 이것도 성숙한 시민들만 200만 이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보지만...)

다 좋다 이거다.
이건 영화판하고 똑같이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영화사가 정말로 후진 영화를 만들었다. 그게 뭐 동어반복이자, 왕 유치한 조폭영화라 치자.
그래도 거기에 인지도 있는 배우가 나오고, 또한 돈을 좀 들여서 만든 거다. 게다가 배급력을 왕창 들이는 거다. 스크린을 점유하는 거지. 거기다가 배우 혹은 영화사끼리와, 극장까지 흑색선전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그렇게 걸린 영화란 말이다.

그렇다 해도, 안보면 그만이다!!
왜 보냔 말이다.
왜 찍냔 말이다.

그래. 찍었다 치자.

취임식 왜 가냔 말이다.
자존심은 다 어따 팔아먹었냐?
때로는 보통 우스운 상황이 아닌 셈이다.
뭐 김연아, 박태환 등의 스포츠 선수들은 거기에 왜 초대를 하는 것이며, 초대받은 그 선수들은 거기에 참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이명박의 지지자인가? 혹은 지지를 표명했는가? 아니면 왜 거기에 참석하는가? 단순히 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리의 사람이 초청했기 때문인가?
그것을 거절하면 무언가 미운털이라도 박히는 셈인가? 혹시 그게 두려운가?

사실 난 취임식을 보지 않았다.
1차적으로 우리집에 TV가 잘 나오지 않는다. 원래 TV따위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때마침 끊어진 케이블 TV에 공중파 안테나를 연결하기 귀찮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켜면 sbs만 살짝 보이는데, 느즈막한 아침밥을 먹다가 보니, 취임식은 다 끝나고 무슨 서울광장으로 향하는 장면이 헬리콥터 장면으로 나오더라. 서울광장에는 왜 가는데? 사실 숭례문이 불타지 않았다면, 숭례문도 갔을 텐데...
그런가 하면, 이명박의 참모들은 바보들임에 틀림없다. 가장 좋은 정치쇼를 왜 안했을까? 오히려 취임식 당일날 숭례문에 들러서 무언가 지시 혹은 헌화따위를 하는 쇼를 연출할 생각은 못하는가? 너무 속보일까봐 그랬을까? 어찌되었든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밖에안되는 서울시청과 숭례문 사이에서 의전차량들이 U턴을 하는 장면은 직접 보았고, 그 서울 광장앞에서 이명박의 손 한번 잡아보겠다고 모여든 안타까운 민중들을 보았다.

나중에 여기저기 글들에서 보니, 장사익씨도 취임식에 가서 공연을 했다고 하더라. 우리는 정말 단호하지 못한 게 문제다.
노브레인이 자신들의 히트곡 <넌 내게 반했어>를 이명박 캠프에 팔아먹고, 정말로 이름값한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던 것과, 장사익씨가 취임식에 가서 공연을 했다는 것은 정말로 너무나도 어이없이 동어반복 삽질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박태환, 김연아 등의 스포츠 스타들이 거기에 참석하는 것 조차 우습다. 민족주의 스포츠 광풍 자체를 굉장히 끔찍히 여기는 '나'란 사람이지만, 거기에 일희일비하는 한국사람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들이 거기에 가면,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행동하고, 호응하면 정말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연예인들의 정치 성향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이젠 스포츠 스타들의 힘이 더 큰 부분도 있다. 취임식에 초대받은 것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착각하지 말기를... 오히려 그것을 거부했다면, 좀 더 그들의 생각과 이유를 들여다보려고 했을 것이다. 초대받아서 그곳에 간 것은 정녕 부끄러운 일임을 모르는가?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몰라서 뻔뻔한 인간들 덕분에 숭례문이 불탄 것임을 모르는가?

내친김에 이명박을 비롯한, 그의 참모들은 좀 생각좀 하길 바란다.
아무리 옛날에 배운 맞춤법이라고 한들, '읍니다'라고 쓰는 것을 계속 하는 것은 웃기지 않은가? 벌써 몇번째인데 그것을 고치지 않으며, 참모들은 미리 언질을 주지 않는가?
그런식으로 하면서, 무슨 영어 몰입교육을 주창하면서, 영어만 쓸 수 있는 돌아이 양산에 힘을 실어 주려는가?

좀 기본을 해라.
기본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세계 경제가 어쩌고, 민간 주도가 어쩌냔 말이다.
수신을 못하는 데 무슨 평천하겠냐...

연예인들, 스포츠 스타들도 정신 좀 차리기를..

한참 삼성 특검이 진행되면서 리히텐슈테인의 '행복한 눈물'이 주목받을 때 흘러나온 이야기가 있다. 미술품 중개사(거래사라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든)는 예술품을 팔면 돈을 번다, 그러나 예술품을 못 팔면 완전 돈벼락에 앉는다고 했다.
연예인들, 스포츠 스타들, 예술인들! 당신들이 취임식에 초대받으면 기사거리가 된다. 그러나 그 취임식의 참여를 거부했다면, 더더욱 큰 주목을 받고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부적합한 권위에의 호소 혹은 편승은 명백한 오류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사실 투표 며칠전까지만 해도, 이명박이 당선되면 어떡하지? 하는 근심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그 며칠전부터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았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서, 가장 안 좋은 점은??
정말 어떤 누리꾼의 댓글마냥, 자유당 독재 시절 같은 암담한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충분히 오바다.
정말 안좋은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딱 하나다.
진정으로 이 땅에서 도덕성 불감증의 시대(? 혹은 시기)가 도래하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 앞에서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는 것일테지..
FTA가 어쩌고, 부익부 빈익빈이 어쩌고 하는 것은 결국에 경제적 개념에 관한 것 뿐이다. 어찌되었거나 가장 시급한 것은 이 물질과 숫자 등의 계량화를 그만두고, 정신적 가치와 윤리 도덕을 회복하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선 묻지마라, 이건 어떤 젊은 개인의 진단일 뿐이니깐..)

(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파악과 그에 대한 경제적 대안은 <88만원 세대>를 참고하기 바란다. 굉장히 날카롭고도, 정확한 분석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러나 그 간극이 사실은 가장 걱정할 부분일테다. 요즘 대부분 젊은이들은 정신적 가치나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하는데에 정신이 없다. 뉴스랍시고 나오는 것이 새만금 간척지가 600조원의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던지, 벌써부터 MB효과라면서 부동산 경기가 풀리며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를 환영하고 있다. 집값 상승에 대해서 하루아침에 뒤바뀐 평가를 보면 거참 말도 안나온다. 망할 보수언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이명박 당선은 우리에게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엄밀하게 진보적인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슬픈 것이다. 그만큼 유권자들 스스로가 보수적 성향을 여지없이 내비친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서민이면서 자신의 서민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부자들에게 투표해버린 말도 안되는 현실에서 더이상 슬퍼하지 말자. 일단 현실의 인식은 개인으로 자기 자신에서 슬퍼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히스테리를 부리지 말 것. 이명박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조금 덜 보수적인 시민들이 '이제 이민가야 하는 건가?'하는 말을 농반진반으로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물론 그 개인에게 이민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해도 뭐라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명박이 된 것은 현실 정치를 바라봄에 있어서 슬퍼하기보다는 환영해야할 일임은 분명하다!

첫번째로, 이명박이 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범여권의 단결을 통해 정동영이 된다는 현실적 추측이 생긴다. 그러나 분명 이것은 이명박 당선 이상의 커다란 폭탄임을 예측해야 한다. 대표적인 386세대들의 집결체인 대통합 민주신당은 그들이 언제나 개혁 민주세력이라는 정당성으로 떳떳하게 행세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이제 더이상 민주화세력의 정당성은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만한 어떠한 매력포인트도 없다. 그들은 90년대에 들어서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이 모든 제반에서 새로운 세력으로써, 수혈의 차원에서, 기득권을 급속히 쟁취했다. 그리고 그 기득권은 10여년 동안 더욱 공고해졌고, 앞으로도 더욱 공고해질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이어지는 뒷세대들의 진출을 막고 있고, 지들끼리 해먹는다는 말이 가장 쉽게 이 상황을 묘사하는 말일 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미FTA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력들이 바로 노무현계의 정치인들이고, 이 지점에 있어서는 극우 한나라당 역시 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노무현 정부가 획득한 이름이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는 표현이 아니었던가? 이 말 조차도 사실 너무 어이없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정동영이 당선된다고 가정하면,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하여 정통성(?)을 잇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이럴 경우, 그들이 서민을 위하는 척 하는, 그리고 적어도 정치적인 정당성에 오인되는 선한 이미지나 정책적 정당성이 국민의 눈을 흐리는 데 계속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부 5년의 본질적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은 채 그 진행되는 끔찍한 사태를 앉아서 계속 당해야 한다는 거다. 여기서 가장 슬픈 것은 국민들의 히스테리다. 이 히스테리 중심엔 '국민소득 *만불'이라는 문구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2만불이건 3만불이건, 그 돈은 모두 국가적인 소득에는 포함되는 것이지만, 국민 개개인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돈이다. 그러나 이것이 히스테리인 이유는 그 돌아오지 않는 돈을 두고서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마치 자신이 부자가 된다고, 국가가 부강해진다고, 선진국이 된다고 생각하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히스테리는 정동영이 대통령이 되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든 차이가 없다.

두번째로,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을 그래도 환영해야 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경제, 사회, 정치적) 모순들이 급속하게 가속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악화가 더 빨리 구축되는데 이걸 왜 환영하냐고? 미친거 아니냐고? 간단히 말하면, 미친게 아니라 정말로 이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환영할 만한 일인 셈이다. 더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가장 큰 틀에서 언제나 양화의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다. 당장 5년은 나락으로 치달을 지 모르지만, 이 단위를 한 세대(30년)단위로 보고, 세기 단위의 장기적 관점으로 간면, 앞으로 5년은 양화로 변하기 위한 잠시 뒷걸음질인 셈이다. 그리고 그 뒷걸음질이 정동영 보다 이명박의 당선이 좀 원시적이고, 단순하고, 극악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뒷걸음질에서 걸음의 방향을 바꾸는 데 더 낫다는 점이다.


한편,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댓가는 끔찍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뒷걸음질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혹독한 댓가를 치루게 된다. 그것에 대해서는 슬퍼해야 할 것이지만, 결국 우리가 잘못 뽑은 셈이니 어쩌랴 슬퍼하기 보다 담담하게 댓가를 치러나가야 할 것이다. 당장에 나오고 있는 경부운하 2011년 완공 목표의 계획, 그리고 그것이 착공이 시작되고 진척을 보이기 시작하면, 거기서 파낸 흙을 갖고서 새만금의 복토작업에 쓴답시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장기적으로 거기서 치러야 할 댓가가 엄청날 것이다. 경부운하는 이미 검토된 바에서 실용성 자체에 의구심을 갖고 있고, 그것을 차치하고서 가장 타당하게 반대해야할 이유가 우리가 마실 물을 운하로 사용함으로써, 당연히 물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환경의 오염이 예견된다. 혹시라도 이 상황에서 수돗물 불소화가 또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서 생수회사의 배는 불려질테지..  잠시 이야기가 샜다. 다시 돌아와서 그리고 새만금을 그대로 계획대로 복토하고 간척지로서 끝내 마무리 짓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연유산을 내버리는 셈이 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커다란 갯벌이고, 동시에 그것은 아름다운 생태계의 표본이다. 또한 자연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것이 단순히 간척해서 경제가치 600조라고 한다면, 사실 묻고 싶다. 어느 기간이며, 얼마만큼 기간동안에 발생할 경제 가치이고,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갈 경제 가치인지.. 정말로 제대로 검토한다면, 그 기간단위를 늘려서 볼 생각은 없는지? 장기적으로 새만금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갯벌과 삶의 터전으로서 보존해가는 것이 더 큰 경제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에 정책을 세우고 이행하는 주체들이 근시안적으로 보고, 행동하는 데게 큰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인 셈이다. 게다가 그들이 강력한 공권력을 앞세운 채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성의 목소리들을 탄압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뻔히 보이는 것은 우리가 결국 치러야 할 댓가는 엄청나게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끝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끝내 가져야 할 것은 객관이고, 냉정함이다. 여전히 근대화(뭔가 굉장히 학자적인 입장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단어가 아니다. 그냥 냉정하게 봐도 그렇다)를 이루지 못한 우리 사회는 정말 정념의 사회다. 그것이 가진 긍정적 영향도 분명히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건전하게 바뀌고, 생산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하는 데에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 또한 정서적 따뜻함을 빙자한 판단의 혼란이다. 결국 이번에 우리는 도덕성과 관계없이 CEO로서 제조업 중심의 경제발전의  한가운데를 관통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끝내 이것은 후세 길이 남을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정녕 CEO로서 우리의 경제를 살릴 것이 아니라,  친 재벌적이고,  미국적 방식의  신자유주의 경제 속에 우리 모두를 무한경쟁의 개미지옥으로 몰아넣어서 결국 모두가 자멸하거나 (그것 조차 사실 쉽진 않을 테지만) IMF같은 국가적 경제 위기가 다시 한 번 찾아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이제 더이상 당신들은 금을 내놓지 말아야 한다. 더이상 당신들의 경제력을 팔아서 재벌들의 빚을 갚아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사실 이것도 결국엔 국민적 히스테리에서 기인한 것이다. 국가의 빚을, 재벌의 부도 사태를 자신들의 빚으로 착각한 정녕 어리석고 착한 백성들이 나서서 그들을 살려준 셈이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5년을 통과할 때는 조금이라도 냉정하게 판단하자. 그리고 힘들다고 슬퍼할 필요도 분노할 필요도 없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하면 된다. 비록 우리가 치러야 할 댓가가 커서 그것에 대해서 슬퍼할 수 있지만, 보다 더 후회해야할 것은 언제나 힘든 현실이나 그 순간의 양상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선택임을 잘 생각해야 한다.


뱀발.
박정희때는 '그분'이라는 표현으로서 그를 지칭했다.
전두환때는 '각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노태우때는 '노태우 대통령'이라고 오히려 노말한 단어를 썼다.
김영삼, 김대중은 언제나 YS, DJ였다.
노무현때는 '놈현'이다...
이명박은 당선 전부터 'MB'라고 부른다. (혹시 보수 언론에서만?.. 다 살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왜 이렇게 부르는 걸까? 한 번 생각해보자.
(그냥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