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의 촛불 시위는 어떤 단어로 표현해도 단어를 넘어서는 끔찍함의 날이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더이상 정권이라는 저들, 공권력이라는 이름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던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까지 저지르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거다.
멍청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움직이는데 어디로 왜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존재야 말로 downer cow인 셈이다.
언제들 그렇게 일찍 미쿡소를 즐쳐드셨는지.. 잠복기도 좀 빠른듯 하다.
29일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지켜보았다.
(물론 머릿수 채움의 '참여'이지만, 왠지 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10일에 진보신당 칼라TV 자원활동을 해본 인연으로, 왠지 칼라TV 근처에서 뭔가 도울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런 탓에 그냥 그곳에 자리를 잡고 계속 있었다.
처음엔 8시쯤 시청으로 도착해서, 시의회 앞을 지나, 프레스 센터쪽을 통과, 청계천 이상한 소라쪽으로 해서 종로까지 간 것이었는데..
이미 물대포와 소화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이 쯤되면, 공성전인 셈이다. 닭장버스 뒤에 무엇이 있는 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뒤에 앉은 놈은 뭐하는 놈이길래, 맨날 거짓말로 고개 숙이고, 돌아서서 하는 소리는 '불법시위 엄단', '배후세력 축출' 등등의 쥐소리인가.
그러니깐 쥐새끼 소리를 듣는 거다.
그런데 이 외계의 쥐는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행위에 더욱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나보다. 하긴 그런식으로 현대건설을 끌어왔고, 서울을 망가뜨렸지.
어디보자. 그런데, 이 상황은 묘하게도 영화 <미스트>와 닮아 있다.
이 날의 상황은 미친듯이 뿌려대는 소화기와 물대포 때문에 완전히 자욱한 안개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실제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재난(!)에 맞서 싸우고 있는 거다.
몇가지 유사점을 얘기해보자.
영화 <미스트>의 재난은 과학자들의 실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이미 자연에 대한 도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 사회로 들어올 미쿡소는 단순히 먹거리의 광우병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죽은 소의 뼈를, 혹은 다른 가축들의 뼈와 내장을 버리기 아깝다고 갈아서 사료화해서 만든 자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어 버린 과학자들은 바로 우리가 실수로 뽑은 이명박 정권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와 같은 안개를 만들고 있고, 시민들은 그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싸우는 거다.
<미스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다.
이날 시위에서 결국 바리케이드인지 차원의 문이지 모를 줄줄이 버스사탕(아 맛없겠다.)을 끝내 끌어서 돌려낸 시민들의 상황. 사실 시민들은 정말로 순진하다. 무언가 진출을 하겠다고 버스를 흔들었고, 끝내 그것을 열었지만, 그것을 열었던 순간은 '와아~~'하는 함성이 다 였다. 함성 뒤에 아주 잠시의 공백상태. 아무도 어떻게 해야하는 줄 잘 몰랐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로 길을 막아서 뜯어내긴 뜯어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그런데 이내 상황은 돌변했다. 차원의 문을 뚫은 것 같은 이 곳에서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내던 녀석들이 저글링을 하며 쏟아져 나왔다.
단 1분 만에 저글링해서 나오는 이 갑각류크리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나왔고, 바로 대오를 갖춘다. 기자가 아닌 터라 이 이후에는 갑자기 치고오는 의(!)경들 덕분에 무서워하며 뒤로 빠졌다.
이 상황직후, 강경진압을 바로 시작한 의경들은 집히는데로 아무거나 다 던지며 다가왔고, 사진 왼편에 계신 칼라TV 카메라맨은 소화기에 머리를 맞고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셨다.
의경들의 헬멧과 장구류, 소재들을 보면, 밤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정말로 무슨 벌레가 가득한 것 같다. <미스트>에서는 차원의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온 안개 속에서 이상한 갑각류 크리쳐들이 날아들어서 인간을 공격한다. 고스란히 지금, 2008년 6월의 한국에서 실사판으로 재현되고 있다.
본 사람을 알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스트>는 2008년 1월 첫 외화로 개봉을 했고, 나 역시 그 영화를 극찬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영화 <미스트>와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닮아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단순한 모양새의 비교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지적해서 찾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미스트>와 비교할 지점은 바로 이제부터다.
다들 가보면 알겠지만, 시위장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선 연합군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강경진압 후, 그냥 얌전한 대치 및 소강상태에 이르면, 대오 안의 의경들에게 아저씨들이 '형'이랍시고, '삼촌', '아버지'뻘이랍시고 반말로 자극하는 경우를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아.. 동방예의지국이라서인가? 어찌나 그렇게 나이값들을 열심히 하시는지.
음, 자꾸 이야기가 샌다.
아무튼 이토록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있어서 참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것은 고스란히 <미스트>에서 수퍼마켓 정국으로 비교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립후 처음으로 등장해서 아이를 찾으려 가야한다는 엄마이다. 이 엄마는 자신의 자식들이 집에 남겨져서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돕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외부의 안개는 두렵다. 나가면 죽을것 같은 곳이다. 영화는 이것을 매우 작은 에피소드로 얘기하지만, 그 여파는 정말로 영화의 모든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 보호를 핑계삼아서 수퍼마켓 안에 남는다. 즉, 주인공은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결국 집에 남은 그의 아내는 시체로 발견된다. 막연한 희망은 절대로 밝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법이다. 세상일 중에 어떤 것은 분명히 all or nothing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절망하여, 갖고 있는 권총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자신만이 혼자서 이 지옥을 견뎌내려 한다. 그러나 이내 곧 군인들이 등장하고, 점점 사태는 진정에 이른다. 이때 군용트럭에 실려가며 주인공을 보고 가는 이가 있으니, 바로 처음에 자식들에게 간다던,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여자다. 그녀는 그 덕분에 모두(all)가 살아남았고, 주인공 남자는 남은 가족이 없다(nothing).
자 이 지점이다.
결국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는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효율' 혹은 '효용', '실용'이 아닌 게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주인공은 자신의 효율적인 선택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바로 그 여자를 만나는 순간에 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늦다.
효율적인 선택이란 결국 자신안에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속물성과 다름없다. 결국 이명박을 뽑은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에게 무언가가 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뽑았고, 그에게서 실제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계급은 정녕 대한민국 1%이다. 자신이 1%가 되기를 원했거나, 그래도 무언가 콩고물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서 지금 이 촛불정국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머릿수는 중요하다. 그러나 내적인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 여전히 부화뇌동하면서도 가장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 마지못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얼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 깨쳐야한다. 자기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촛불로 광장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 안에 촛불을 집어넣어서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을 밝히고, 꺼내서 깨끗하게 불살라야 할 필요가 있다.
뱀발1.
그리고 이 게임은 소고기와 FTA를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결국엔 All or Nothing 게임이다. 순진하게 소고기는 문제가 있어도 FTA는 해야한다라는 식의 생각은 결국 NOTHING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전법이 아니라, 주성영같은 똘추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저열한 방법론이다.
뱀발2.
영화는 함의와 관계없이, 한국사회의 몇십년 후의 모습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국 내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영화 <고기 도시>도 결국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가장 안쪽의 싸움을 이겨야만, 가장 바깥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제 더이상 정권이라는 저들, 공권력이라는 이름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던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까지 저지르고 있다.
간단히 말한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모르는 거다.
멍청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움직이는데 어디로 왜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존재야 말로 downer cow인 셈이다.
언제들 그렇게 일찍 미쿡소를 즐쳐드셨는지.. 잠복기도 좀 빠른듯 하다.
29일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지켜보았다.
(물론 머릿수 채움의 '참여'이지만, 왠지 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10일에 진보신당 칼라TV 자원활동을 해본 인연으로, 왠지 칼라TV 근처에서 뭔가 도울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런 탓에 그냥 그곳에 자리를 잡고 계속 있었다.
처음엔 8시쯤 시청으로 도착해서, 시의회 앞을 지나, 프레스 센터쪽을 통과, 청계천 이상한 소라쪽으로 해서 종로까지 간 것이었는데..
이미 물대포와 소화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이 쯤되면, 공성전인 셈이다. 닭장버스 뒤에 무엇이 있는 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뒤에 앉은 놈은 뭐하는 놈이길래, 맨날 거짓말로 고개 숙이고, 돌아서서 하는 소리는 '불법시위 엄단', '배후세력 축출' 등등의 쥐소리인가.
그러니깐 쥐새끼 소리를 듣는 거다.
그런데 이 외계의 쥐는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행위에 더욱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나보다. 하긴 그런식으로 현대건설을 끌어왔고, 서울을 망가뜨렸지.
어디보자. 그런데, 이 상황은 묘하게도 영화 <미스트>와 닮아 있다.
이 날의 상황은 미친듯이 뿌려대는 소화기와 물대포 때문에 완전히 자욱한 안개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실제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재난(!)에 맞서 싸우고 있는 거다.
몇가지 유사점을 얘기해보자.
영화 <미스트>의 재난은 과학자들의 실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이미 자연에 대한 도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 사회로 들어올 미쿡소는 단순히 먹거리의 광우병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죽은 소의 뼈를, 혹은 다른 가축들의 뼈와 내장을 버리기 아깝다고 갈아서 사료화해서 만든 자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어 버린 과학자들은 바로 우리가 실수로 뽑은 이명박 정권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와 같은 안개를 만들고 있고, 시민들은 그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싸우는 거다.
<미스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다.
이날 시위에서 결국 바리케이드인지 차원의 문이지 모를 줄줄이 버스사탕(아 맛없겠다.)을 끝내 끌어서 돌려낸 시민들의 상황. 사실 시민들은 정말로 순진하다. 무언가 진출을 하겠다고 버스를 흔들었고, 끝내 그것을 열었지만, 그것을 열었던 순간은 '와아~~'하는 함성이 다 였다. 함성 뒤에 아주 잠시의 공백상태. 아무도 어떻게 해야하는 줄 잘 몰랐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로 길을 막아서 뜯어내긴 뜯어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그런데 이내 상황은 돌변했다. 차원의 문을 뚫은 것 같은 이 곳에서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내던 녀석들이 저글링을 하며 쏟아져 나왔다.
요거이 11시 54분 되시겠다. 뜯어낸 직후란 말씀.
요거가 11시 55분 되겠다. 놀랍지않은가?
단 1분 만에 저글링해서 나오는 이 갑각류크리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나왔고, 바로 대오를 갖춘다. 기자가 아닌 터라 이 이후에는 갑자기 치고오는 의(!)경들 덕분에 무서워하며 뒤로 빠졌다.
이 상황직후, 강경진압을 바로 시작한 의경들은 집히는데로 아무거나 다 던지며 다가왔고, 사진 왼편에 계신 칼라TV 카메라맨은 소화기에 머리를 맞고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셨다.
의경들의 헬멧과 장구류, 소재들을 보면, 밤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정말로 무슨 벌레가 가득한 것 같다. <미스트>에서는 차원의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온 안개 속에서 이상한 갑각류 크리쳐들이 날아들어서 인간을 공격한다. 고스란히 지금, 2008년 6월의 한국에서 실사판으로 재현되고 있다.
본 사람을 알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스트>는 2008년 1월 첫 외화로 개봉을 했고, 나 역시 그 영화를 극찬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영화 <미스트>와 한국의 현실이 묘하게 닮아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단순한 모양새의 비교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지적해서 찾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미스트>와 비교할 지점은 바로 이제부터다.
다들 가보면 알겠지만, 시위장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선 연합군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강경진압 후, 그냥 얌전한 대치 및 소강상태에 이르면, 대오 안의 의경들에게 아저씨들이 '형'이랍시고, '삼촌', '아버지'뻘이랍시고 반말로 자극하는 경우를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아.. 동방예의지국이라서인가? 어찌나 그렇게 나이값들을 열심히 하시는지.
음, 자꾸 이야기가 샌다.
아무튼 이토록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있어서 참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것은 고스란히 <미스트>에서 수퍼마켓 정국으로 비교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립후 처음으로 등장해서 아이를 찾으려 가야한다는 엄마이다. 이 엄마는 자신의 자식들이 집에 남겨져서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주인공을 비롯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돕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외부의 안개는 두렵다. 나가면 죽을것 같은 곳이다. 영화는 이것을 매우 작은 에피소드로 얘기하지만, 그 여파는 정말로 영화의 모든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 보호를 핑계삼아서 수퍼마켓 안에 남는다. 즉, 주인공은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결국 집에 남은 그의 아내는 시체로 발견된다. 막연한 희망은 절대로 밝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법이다. 세상일 중에 어떤 것은 분명히 all or nothing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절망하여, 갖고 있는 권총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자신만이 혼자서 이 지옥을 견뎌내려 한다. 그러나 이내 곧 군인들이 등장하고, 점점 사태는 진정에 이른다. 이때 군용트럭에 실려가며 주인공을 보고 가는 이가 있으니, 바로 처음에 자식들에게 간다던,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여자다. 그녀는 그 덕분에 모두(all)가 살아남았고, 주인공 남자는 남은 가족이 없다(nothing).
그녀의 표정은 뭐라 할 말이 없다. 영화를 보다가 이 장면이 되면 정말로 절망적이다.
이렇게 울부짖어도 때는 늦었다. nothing.
자 이 지점이다.
결국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는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효율' 혹은 '효용', '실용'이 아닌 게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분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주인공은 자신의 효율적인 선택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바로 그 여자를 만나는 순간에 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늦다.
효율적인 선택이란 결국 자신안에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속물성과 다름없다. 결국 이명박을 뽑은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에게 무언가가 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뽑았고, 그에게서 실제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계급은 정녕 대한민국 1%이다. 자신이 1%가 되기를 원했거나, 그래도 무언가 콩고물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서 지금 이 촛불정국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머릿수는 중요하다. 그러나 내적인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 여전히 부화뇌동하면서도 가장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 마지못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얼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 깨쳐야한다. 자기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촛불로 광장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 안에 촛불을 집어넣어서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을 밝히고, 꺼내서 깨끗하게 불살라야 할 필요가 있다.
뱀발1.
그리고 이 게임은 소고기와 FTA를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결국엔 All or Nothing 게임이다. 순진하게 소고기는 문제가 있어도 FTA는 해야한다라는 식의 생각은 결국 NOTHING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전법이 아니라, 주성영같은 똘추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저열한 방법론이다.
뱀발2.
영화는 함의와 관계없이, 한국사회의 몇십년 후의 모습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국 내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영화 <고기 도시>도 결국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가장 안쪽의 싸움을 이겨야만, 가장 바깥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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