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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01 [이바구] 도덕성이 무슨 상대평가 답안지인가?
  2. 2009.02.22 역사의 필연성. 1
오랜만의 포스팅.

막혀있던 혈들을 초큼 뚫어내기 위해서라도 억지춘향 글쓰기를 해야할 때가 아닐까.
맨날 쳐다보고 있는 뉴스들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리겠다. 가공할 손가락으로 내 혈을 뚫어줄 그 사람은 어딘가?

뭐 잠시 쓸데없는 소리좀 하고,
오늘은 언제나 반복하는 정치적 문제로 시작.

꾀꼬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죽는 것도 기술인가 싶다.
으악새는 슬피우니깐.

구 열린우리당 전 의원 우상호께서 파워블로거로 나섰다는 데, (지금은 그의 블로그는 보지 않고, 일단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글을 쓰는 중) 박연차 리스트 관련 문제다.

언제나 터지는 도덕성 논쟁이다.
물타기 전술의 고전은 '비교 우위'다.
간단히 말해 상대평가 전술이라는 뜻이지.
'내가 아무개보다는 낫지 않느냐' 라는 식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뭐랄까 주어가 잘못 되었거나, 문장 자체가 절대 성립불가능한 '거짓 명제'라는 게 핵심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갖고 나서 부터 가장 끔찍한 현실은 누구도 더이상 도덕성의 잣대를 제대로 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버니어 캘리퍼스 라는 측정기가 있다. 19mm의 길이를 20눈금으로 나누어서, 1/20mm 오차를 통해 그 오차범위를 5%로 낮추는 측정기다. 이러한 공학적인 도구로 우리가 도덕성을 측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5%라는 신뢰도로 혹은 누구보다는 좀 더 정확하거나, 낫다는 식으로 들이댈 문제라면, 언제나 우리 국호 대한민국의 점점 더 맑아졌으리라.

386세대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저런식의 상대적 도덕성으로 빠져나가려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세력들에게 내적으로 체화되어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는 이명박의 당선 직전부터 도덕성을 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민적인 의식으로 그를 당선시켰고,
그 안에는 역시 상대적인 비교에서 마음이 작동하는 어설픈 한 표들을 양산해 버린 셈이다.
노무현보다는 뭔가 낫겠지라는 기대감들이 그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1년여시간동안 수많은 문제들을 터뜨렸고, 그 문제들은 더욱 해운대의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다.
그 가운데 아고라에는 노무현을 그리워 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은 다른 문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대선관련 정치후원금 문제에서 한나라당과 비해 1/10이 넘으면 '하야'를 하겠다고 했던 모습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일단 '하야'라는 단어를 썼다. 틀릴수도 있음.)
어찌되었거나, 그 역시 상대적인 비교론을 통해서 '나는 쟤네보단 좀 낫다. (그러니깐 봐달라)'라는 식의 생각방식이다.
결과적으로 1/10이 넘기도 했었지만, 그 결과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상호의 말들은 언뜻 틀린 바가 없어 보인다.
'정치적 의도'라는 둥의 말은 입장만 바뀔 뿐 언제나 같은 전략으로 임하는 그들의 고전 전술이다.
그러니 더이상 설득력은 없을 수 밖에 없다.

제 살을 진짜로 도려낼 줄 알아야 도덕성은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 상대주의 전술식의 문장은 사실 한 구절만 바꾸면, 점점 신뢰도가 높아진다.
'내가 저들보다는 조금 낫지 않느냐'라는 문장을

'내가 저들보다 좀 "못한" 것 같다. 잘못했다.'고 인정해보면 어떻겠는가?

낮은 데로 임하고, 겸손을 떨어서 자신을 높이라는 고도의 전술적 문장이 아니다.
정말로 스스로 더 잘못한 것들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정치인들은 정말로 없다는 거냐.

대한민국의 도덕성은 언제나 '물타기'로 넘어가는, 담넘는 구렁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ps.
정치인들에게 '도덕' 과목 하나로 일제고사를 시행해보고 싶다.

역사의 필연성.

my usual epic 2009. 2. 22. 04:08 Posted by Ru
살면서 가장 큰 시간의 단위는 무언가.

갑자라는 60년일까?

세대라는 30년일까?

그 무엇도 적용되지 않는 한국에서, 시간이란....

단위보다는 타이밍인듯 하다.



아..

안타깝게도.

김수환 추기경은 21세기에 돌아가셨다.

'선종'이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그도 일개 개인에 불과할 것이니까.

이 새벽녘에. 갑자기 블로그를 건드릴 수 밖에 없는 뉴스는,

다름 아닌 "급" '장기기증'환자가 늘었다는 소식이며,

여전히 김수환 추기경의 무덤에 추모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돌려말하고 싶지 않고, 그러지도 않겠다.

쓰읍.

김수환은 꼴통이었다.


80년도 그의 말은 인용하면서 기사를 내는 것은

이명박의 419시절을 언급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나 역시 출발은 천주교의되, 이제는 너무 질려버린 종교중의 하나다.

천주교에서야 무슨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의 움직임은 사실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30년이 지나버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말과, 성향은 다시는 언급되지 않을 것인가?

그가 과연 성직자로서의 삶을 잘 살았을지는 몰라도,

진정 인간으로써, 진정한 존엄과 실존을 전파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갑갑한 모든 것은 '종교'다.

김수환 1명의 죽음이라도 재단해버리고 싶다.
(싶다!!!!! 에 악센트다. 부정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괴롭고, 안타깝다.)

하지만, 용산 6명의 죽음이 김수환 1명의 죽음과 대치할 수 있을끼??

수치로도 말이 안되지만,



무엇보다도, 삶의 무게를 누가 감히 비교할까?

어찌되었건, 모든 삶은 존엄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