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보다는 스티븐킹과 프랭크 다라본트의 3번째 만남이라는 것에 훨씬 기대를 했고, 결국엔 극장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난 그게 이번주 개봉인줄은 몰랐다. (개봉일 따위가 무어랴.. 왠만해선 영화에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은 개봉일이 언제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영화를 그냥 보는 편이다. 무취향!)
고등학교 2학년이었나... 천호동의 한일시네마라고 당시에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나름의 2관짜리 멀티플렉스였고, 내 인생 처음으로 혼자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바로 <쇼생크 탈출>이었다. 어렸을 당시에 그 영화는 왠지 강한 인상을 주었고, 심지어 삶이 지옥같았던 군 생활에 나의 수첩에는 그 영화의 주요한 대사이자, 카피인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라는 문장이 적혀있기도 했다. 그렇게 만났던 다라본트 감독이다.
SOMETHING in the Mist!!!!
SOMETHING in this Film!!!!!!!!!!!!!!
영화의 줄거리는 하등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다. 영화 포스터 그림을 그리는 데이빗은 어느날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에 집이 난장판이 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들과 같이 생필품을 사러 읍내에 나온다. 그전날밤의 사고로 인해 읍내의 마트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사람들은 모두들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런 가운데 동네의 한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면서 마트로 뛰어들어온다.
"SOMETHING in the Mist!!"
순식간에 덮쳐오는 안개를 두고서 사람들을 자연히 마트안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견제하고 싸우고, 죽여나가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결말은 과히 충격적이다. 이 결말을 놓고서 Film2.0의 프리뷰는
원작과는 확연히 다른 결말을 택하고 있는 영화의 결정은 상당한 의아함을 남긴다. 소설이 열린 결말을 지향하며 희망도 절망도 아닌 모호한 상태로 현재의 암울함을 끈적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데 반해, 영화는 훨씬 더 충격적인 결말을 택한다. 그러나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결정에 대해 쉽게 납득할 만한 근거도 마련되고 있지 않거니와, 이어지는 상황 종결은 관점에 따라서는 헛웃음을 자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플롯상에서 무언가를 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분위기를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유를 어떻게 범주화시키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영화는 거대한 공포를 근간으로 하여 중요한 인물들을 (자본주의의 전시장이자, 전쟁터인) 마트로 몰아넣는다. 아니 엄밀하게 보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어떠한 공동체 혹은 집단, 직장 또는 반대로 물리적인 건물, 광장, 공원 등에서 어떤 부분을 딱 택해서 수십명을 뽑아내더라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고스란히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 영화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곳이 다른 곳이 아닌 '마트'라는 곳이다. 그곳은 언제나 풍요롭지만, 한편으로 상품들은 언제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캠벨 수프 캔들이 간택되어지기 위해서 항상 제일 앞에 나오려 하고, 그것은 결국 영화를 다보고 났을 때, 그 안에 수많은 인간들과 다를 바없다. 아니 그 인간들이란 결국 하나의 캠벨 수프 캔과 다를 바가 없다. 어찌되었든 영화는 마트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균열이 드러난다. 그것은 여러가지 양상을 가진다.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계급적 갈등, 외지인과 현지인들사이의 지역적 갈등, 젊은이와 나이든이 사이의 세대적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인과 비종교인(혹은 광적이지 않은 종교인)사이의 원형적 갈등(이는 분명 종교적 갈등이라고 할 수는 없다) 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어찌되었건 주인공 데이빗을 근간으로 그 Something을 확인한 사람들은 공포감을 갖게 되고 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대처하려고 한다. 이 가운데에 주된 갈등이 원형적 공포를 주술적으로 풀어내려 하는 카모디 부인(마샤 게이 하든)을 중심으로 풀려나간다. 이 때 부터는 영화는 외부의 공포를 내재화 시켜서 사람을 선동 혹은 다스리려 하는 보복의 기독교같은 중세적 커뮤니티와 이성적 사유를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는 근대적 커뮤니티 사이의 전쟁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했을 때는 오히려 영화가 시대에 너무 낙후되어 보이지 않느냐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21세기는 여전히 중세와 근대가 계속적으로 진행중이다. 심지어 기득권을 위해서 언제나 공포 혹은 두려움을 '발행'하는 행위들이 서슴치 않고 일어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보고 있으면 그렇다.
그러나 결국에 영화는 한쪽을 선택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내러티브적 한계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데이빗을 위시한 무리들이 과연 이 곳을 벗어나서 살아날 수 있느냐 라는 부분이다. 즉, 다시 말해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 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영화의 2/3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갈등의 전개양상에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마트를 벗어나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과연 가장 바깥의 세계 또는 신의 눈에서 그들은 어디로 향할 수 있을 것인가? 기름이 다 될때까지 달려보자고 해서 나갔고, 혹시나 그들을 덮칠 두려운 생물체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끝내 챙겨온 권총의 그 트리거는 어떻게 쓰일 것인가? 이 결말은 정말로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성경을 든 '마녀'같은 카모디 부인(마샤 게이 하든 분)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중심점은 말 그대로 이 시대를 은유하고 재현해내는 지점이다. 한 집단에 커다란 숙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두고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다시 그것이 어떤식으로 커뮤니티를 분화시키고 그들은 어떠한 갈등양상을 전개하며, 해결해가는가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단선적이지 않고 다층적임을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마트를 하나의 국가 혹은 집단에 위치시키고, 카모디 부인을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에 대입하고, 데이빗을 조금 진보적인 성향으로 사람으로 위치하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다. (물론 이 하나의 범주화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미국 사회의 현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현실에 이 영화를 병치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 게다가 소소한 대표성들을 찾는 것 또한 이 영화를 보는 재미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상품들간의 경쟁은 다시 마트안에서 인간들 간의 경쟁으로 대치되고 은유된다. 또한 그 분화된 집단 혹은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결말이 뻔히 보이기 까지 하다.(이 부분에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서 '경쟁'을 강조하는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엔 커다란 "SOMETHING"이 존재하는 마트 바깥 = 개미지옥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거기서 살아남는 방식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쳐밀어넣는 것이 아님은 분명할 진대, 카모디 부인은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상황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제물을 찾아나설 뿐이다. 마치 기업의 구조조정, 혹은 한국 사회에서 비리가 터졌을 때 그 기관의 장이 사퇴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데이빗을 중심으로 한 집단의 이성은 역시 사태를 해결해나가는 데에 아주 좋은 수단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가야 하는가를 합의를 통해 도출해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까지는 이성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끝내 결말에 가서 배반을 당한다. 글쎄 감독은 무슨 생각인걸까? 결국에 이성 혹은 감성에 절대적 힘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미인가?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헛헛해 하거나, 심지어 분노를 하거나 혹은 악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싶은게 미리 내리는 결론이다.
결국 영화에서 가장 멀리 벗어났을 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수단으로써의 이성과 절대 버리지 말고, 지켜야할 가치로서의 감정을 같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설의 결말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멘트라고 한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추상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것을 영화적으로 변주해 낸 결말이지, 이것을 두고서 영화와 소설이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좀 미흡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별점 : ★★★★★
뱀발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잡생각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크리처들은 어디서 왔을까? 사실 다른 영화들을 만들면서 그려진 수많은 스케치들을 모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가장 무섭거나 징그러운 것들을 골라보라고 해서 선택한 것들을 아닐까 하는 잡생각.
왜 인간들이 두려워 하는 괴물 혹은 외계 생명체들은 갑각류와 비슷한 걸까. 혹은 곤충과 비슷한걸까? 인간은 키틴질이 아닌 soft한 피부를 갖고 살기 때문에 단단한 갑옷 같은 피부를 가진 생명체에 대해서 원형적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일리언, 에일리언 마스터, 프레데터, 프릭스, 스타쉽 트루퍼스 등등)
영화에는 다양한 크기의 생명체가 나온다. 마치 거미를 형상화한 녀석들. 그 작은 것들과 영화 말미에 나오는 공룡보다도 거대할 것 같은 절대적 크기의 거물. 그런가 하면 최초로 등장한 연체류의 촉수와 벌침을 합쳐놓은 생명체 등등등.
한편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생명체들에게는 이름이 있을까? 뭐 영화를 만들면서 부르는 이름은 있겠지만, 영화상에는 누구도 그것을 불러주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알 수 없다. 언뜻 극장에서 보았던 D-war의 크리처 중의 하나인 '불코'가 떠올랐다. 그건 뭐하러 이름을 붙이고, 굳이 불러주기까지 했을까? 그리고 외형적 디자인 같은데에서 어떤 맥락들이 있을까?
마샤 게이 하든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나 역시 그녀의 종으로써 움직여야 할 기분이 든다. 그녀가 가진 분위기는 맹목적인 느낌이 있다. 그녀는 잭슨 폴락의 전기 영화인 <Pollock>에서 폴락의 연인이자 정신적 지주로써 등장했고, <미스틱 리버>, <밀러스 크로싱> 등의 독특한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이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선택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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