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등록된 포스터들을 정리하는 와중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만났다.
포스터를 정리하는 일이지만, 난 왠지 포스터를 찾았다기 보다는 '만났다'고 표현하고 싶다. 마치 영화를 만나는 것처럼..
게다가 에드워드 양(양덕창)은 뭐랄까?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젊음을 유지했던 감독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우습게도, 너무 부끄럽게도... 혹은 너무 안타깝게도.. 나는 영화광이 아닌 영화쟁이로써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하나 그리고 둘]이 내가 본 첫 작품이었다. 몇년 전에 Film2.0의 부록으로 나눠줄때 옳다구나 DVD 한 장 더 늘리는 데 급급했던 나의 허영이 그의 작품을 만나게 해준 계기였으니 더이상 말해봤자 그냥 부끄러울 뿐이다.
기억에 그렇게 받은 DVD조차 한 달은 그냥 꽂아두었던 듯 싶다. 어찌되었건, 부피 채우기는 항상 나의 허영을 일시적으로 만족시켰다가 이내 곧 부끄러움을 주는 까닭이 겨우겨우 꺼내서 본 영화다. 당연히도 미루고미루는 와중에 두려움 (혹은 변명?) 중 하나는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일단 시작하고나서는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왠지 거리를 둔 카메라가 그다지 다이나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지만, NJ와 틴틴, 양양의 애정 플롯들이 평행하게 교차하는 순간에 나는 완전히 놀라버렸다. 아마도 난 그 때 처음으로 영화가 영화답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그의 영화는 현실을 지극하게도 잘 담고 있었다. 더도 덜도 아니게.....
그리고 2005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대만 뉴웨이브전에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았고, 그제서야 벼르고 벼르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만났다. 4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에 역시나 쫄아서 들어갔지만, 단 한번도 졸지않고 좌왁 빨려들어가서 보았다. 마지막에 정녕 그녀를 찌르던 장첸의 모습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영화는 대만의 근현대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었고, 한편으로 그것은 남한의 모습과도 너무 흡사했다.
그리고 참석하진 못했지만.. 올해는 양덕창을 기리면서, 부산영화제에서 그의 회고전을 열었다. 대부분은 보았지만 그의 진정한 데뷔작인 [해탄적일천]을 부산이 아닌 서울, 서강 데뷔작 영화제에서 볼 기회가 있었고... 당연히도 달려가서 보았다. 역시나 그의 힘은 뭐랄까.. 자신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확고한 방향성. 그리고 그것을 복잡하지 않고, 젠체 하지 않는 평범한 방식, 그러나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개인과 사회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도 않으면서 잘 담고 있다는 거다.
일본판 포스터
이제 더이상 그의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장편이 8편밖에 되지 않은 많지 않은 필모그래피에서, 그의 영화들이 언제나 우리에게 거울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더욱 자주 갖고 싶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의 포스터를 만나서, 기뻤지만... 흥분하진 않았다. 무언가 아스라한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떠올리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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