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늘은 등산을 가려고 한 날이다.
어찌나 가고싶은 생각을 했던지, 주변에게 가고픈 사람을 좀 모으면서, 날씨 걱정에 살피면서도 아주 약간의 비는 상관없으니 가는 쪽으로 생각하자고 말을 한 터였다.
그냥 요즘은 그렇게 자연이 그리웠다.
어제 퇴근후, 마음을 서둘러 서강대에서 에드워드양의 데뷔작 <해탄적일천>을 보고 나서, 집에 왔는데 저녁을 제때 못먹어서 라면을 하나 사들고 들어왔고, 이상하게 피로감이 밀려오면서도 시간은 후딱 지나버려서 이미 2시가 넘어서 잠이 든 상태였다.
7시반까지 서울대 입구 역으로 가기로 해서, 6시반에 일어날 생각으로 알람을 맞춘터였다.
거지같은 동네에 사는 지라....
최악의 소음이 난무하는 휴일의 전날, 겨우겨우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울려대는 전화.
(사실 이 따위 전화 소리쯤은 못듣고 잠을 자야 하는데.. 너무 예민하다)
혀가 배배 꼬인 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확 짜증이 밀려왔다.
홍대 앞에 왔다는데, 자기가 정확히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대뜸 같이 있는 자신의 팀장을 바꿔준다.
형보다는 좀 정신이 있어뵈는 목소리였으나... 어차피 그 분과 얘기할 수는 없는 법.
다시 형을 바꿔달래서 얘기를 했는데..
난 내 잠을 방해받고, 오늘의 일정에 지장 생기는 게 싫어서 전화를 그만 끊자고 했다.
대뜸 쌍소리의 욕을 막 해댄다.
어차피 쌍소리의 욕 자체 때문에 화가 나는 건 없다.
무시하고 끊었다.
예민한 상태에서 잠을 깬거라.. 다시 잠이 들리 만무했다.
그리고 따로 사는 나의 집을 찾아오는 핏줄에게 너무 했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10분 후에 다시 전화를 해서 나갔다.
로데오 거리 바이더웨이 앞에서 건들거리고 있는 형을 발견했다.
(몇년에 한번씩 술이 떡 되어서 나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 모습이 다시 겹친 거다.
나보고 술을 한 잔 더 하자니 어쩌니 하면서 혀가 완전 꼬부랑탱구리다.
집으로 들어가자는 걸, 억지로 자기네 팀장한테 술 한잔 더하자고 난리 부르스다.
그 실랑이를 겨우 기다려서 집에 들어온 것이 4시반이 넘어 5시가 다 되었다.
대충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나 역시 이불을 깔고 잤다.
6시반,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잠시 후, 같이 등산을 가기로 한 룸메이트 정호형이 방에서 나온다.
자초지종 설명.
사실 굉장히 민망했다. 어찌되었거나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나와 정호형이다. 아무리 원래 나의 집이고, 내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형이란 사람은 이런식으로 남의 집에 쳐들어오면 안되는 거다.
결국, 산행은 포기했다.
그냥 두고 나가자니, 집 열쇠도 문제고..
굉장히 짜증이 난 채로 난, 정호형과 아침을 차려먹고 그냥 다시 잤다.
산을 가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휴일이라면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밥을 먹다보니, 평소 출근을 위한 알람이 울린다. 쳇.
자고 다시 일어난 시간은 12시가 다 된 시각.
난 망연자실해진다.
내 하루가 망가져버렸으니...
그나마 그때마저도 일어나지 않은 형은, 워낙에 게으른 인간이라..
잠을 깨고나서도 침대에서 계속 뒹굴거린다.
그 안에서 개기면서, 샤워기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느냐는 둥, 어리광을 부린다.
짜증이 심해져버린 나는, 완곡하게 화를 냈지만..
말귀를 못알아듣는다.
대충 얼버무리면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한다.
이는 곧, 자신의 속풀이도 해야하고, 밥을 사주겠다는 뜻이다.
그 따위 한 끼밥이 중요한가. 난 지금 화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냐고 물었다.
여지없이 얼버무리는 말투로 '왜 지랄이야~'하는 형.
그래... 말귀를 못알아들으니 저런 말을 하는 거다.
핏줄이란 명목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서 인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비단 우리 형 뿐이랴?
대한민국에선 이런 상황에서 나같은 사람을 욕하는 경우도 많다.
'핏줄'을 방패삼아서!!
내가 화가 난 것은 핏줄이라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의 생활과 계획, 그리고 내 시간을 날리게 한 것에 대해서 화를 내는 거다.
왜 말귀를 못알아듣냐.
정서중심의 일이 아니라, 이성중심의 상황이란 말이다.
나 역시 이 사람이 내 핏줄이기 때문에 아침에 깨우지 않고, 나만을 생각해서 산행을 포기하지 않았냔 말이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인간들이 지겹다.
끔찍한 사람들.
그러니 이 사회가 변하지 못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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