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비처럼]이 드디어 개봉했다.
언제나 돌아오는 명절 시즌에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잔뜩 고스톱판으로 얼굴을 붉혔다가, 돈을 모조리 딴 사람이 들고 나서는 판돈의 모음으로 극장은 넘쳐난다.
당연하게도 돈을 딴 사람은 온갖 생색과 자부심으로, 잃은 사람은 얻어보는 영화로 대충 만족하며 마무리하는 명절의 극장 풍경이다.
그 풍경에 이번에 특이하게(?) 끼어든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나 컨셉에 대한 설명은 간단히 생략한다. 포털에서 제목만 입력해도 바로 나온다. 굳이 이 블로그에서 수고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영화의 출발, 그러나 실망스러운 이야기.

'민자영'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영화는 이 질문에서 시작했을 것 같다. 우리는 "을미사변" 혹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면서 재조립해왔다.
그러나 영화는 '명성황후'가 아닌 '민자영'이라는 한 "여성"의 사랑을 다루고자 한다. 
말그대로 그녀의 이름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이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기획의) 출발은 좋았다.
동명의 원작인 야설록의 소설을 원전으로 영화는 각색되었는데, (나 역시 원작은 읽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한다) 
영화 안에서의 이야기는 일단 굉장히 실망스럽다.

예비 중전과 사공의 사랑이야기라는데, 다른 모든이들도 공감하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언제 어떻게 사랑에 빠져드는가 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대놓고 첫 장면을 잘못 풀고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무명'(혹은 요한)의 어린 시절을 잠시 보여준다. 무명이라는 인물이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서학을 믿게 되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엄마는 목이 달아나고, 그것을 막지 못하는 어린 아이의 흑백장면으로 오프닝을 처리했다. 사실은 뒤를 보지 않고도 이 장면은 굉장히 뜨악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면, 아무래도 이 아이는 뻔히 '무명'(즉, 조승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가 가진 배경인, '천주교'가 과연 이야기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일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씬이 지나고 나면, 개화기의 어떤 풍광들을 계속 비추다가, 잠시의 역사적 배경 설명, 그리고 등장하는 민자영의 모습이다. 
자영은 중전 간택을 앞두고,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는, 그리고 기대감을 갖고 있는 신여성의 모습을 보이고, 이내 혼자서 바닷가를 다녀오는 '신식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사공 무명. 
둘은 하루 동안의 긴 데이트를 한다. 자영에겐 아주 중요한 추억과 기억이 자리한 바닷가. 그러나 그 중요한 추억과 기억은 무엇인지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대사로 '들려줄' 뿐이다. 그런가 하면 그 긴 하루의 시간과, 아무도 없는 배라는 공간, 탁 트였지만, 역시 둘만 남은 아름다움 바닷가에서 무명과 자영은 서로 뜬금없는 대화만을 하며, 직접적으로 사랑에 빠질만한 행동도 하지 않고, 카메라는 더더욱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이것은 어찌보면 (앞으로 멜로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최소한의 선행조건일 텐데, 영화는 그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그리고 무명은 혼자서, 자영에게 '이미 빠져들어서' 사례로 댕기를 달라는 둥, 오바를 한다. (이건 명백히 오바다.) 그런 오바가 펼쳐지는 가운데, 자영을 습격하려는 자객들이 나타나고, 뱃사공에 불과했던 무명은 갑자기 무림 고수의 풍모를 보여준다. 그리곤 자영을 구해낸다. 여기서도 관객들은 좀 의아함을 가지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이기 때문에 어떤 무협 서사의 관습인 양, 절대 무림 고수가 초양에 묻혀지내고 있었다라는 설정을 억지로 넘겨받을 수도 있지만, 명백히 어색함은 남는다. 게다가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는 어려서 천주교를 따르던 천주학쟁이의 일원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천주교와 무림고수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다.)

참아준다. 여기도 참겠다. 이후, 무명은 자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언제 느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석날 전부치던 '며느리'도 모른다.) 그리고 평생 목숨을 바쳐 자영을 지키겠다는 오바를 남발하기 시작한다. 자영은 나중에 궁궐에서 자신을 왜 그리 지키려 하느냐고 무명에게 묻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가관이다. 무명은 '어려서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던 아픔이 남아있어서, 자영만은 꼭 지키겠다'고 대답한다. 이 대목, 역시 좀 코미디다. 굳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작법을 논하진 않겠다. 이 말 자체가 좀 이해가 되는가? 엄마를 지키지 못해서, (그래서 무예를 익혔다고도 스스로 상상했다. 나 열심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자영이다. 좀 있는 체 하면서 정리하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지키지 못해서, 연인에 대한 사랑을 지키겠다"는 말이다. 이 말은 언뜻 '사랑'이라는 항목을 보면 성립가능한 문장 같지만, 사실 성립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면 한강물 더럽힌 걸 못내 잊지 못해서, 대동강물을 깨끗하게 지켜내겠다는 말이다. 즉, 오류의 문장이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가장 심각한 반칙을 일으키고 만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어떡하나? 이후에 남은 러닝타임은 1시간도 더 남았다.

좀 더 매끈한 이야기적 출발을 하려면, 영화의 첫장면은 무명의 어린 시절이 아니라, 자영의 어린 시절이 나와야 했었다. 그것도 자영과 아버지 사이의 그 잊지못할 기억이 영화의 첫장면으로 등장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명의 어린시절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바닷가에서 이러저러한 데이트 하면서, 결정적으로 빠져드는 장면을 넣어주기만 하면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을 지키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하나?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 어쨌다는 둥?? 제대로 빠지기만 한다면, 사랑을 지키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영화의 이야기는 정말 uncanny하다.


견딜 수 없는 CG의 도배, Uncanny Valley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이후, 엄한 방향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려 한다. 그 첫 시도는 바로 대원군의 호위무사인 뇌전과 무명의 대결.
밤에 홀로 배위에 누워 있는 무명에게 뇌전은 '조각배'를 타고 나타난다. 이 장면 조차 관객들은 피식 하는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서로 현란한 액션을 선보이면서 대결한다. (꽤 긴 장면인 이 시퀀스는 딱 1줄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한 CG는 관객들을 당황케 한다. 너무 어깨에 힘을 준 영화속 캐릭터들은 관객의 마음을 저쪽으로 차버린채 지들끼리 현란한 칼싸움을 벌인다.
누가 봐도 명백한 CG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CG가 주는 느낌에 대해서 영화를 만든 이들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했다.

Uncanny Valley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본래 로봇공학에서 나오는 용어이다. 그래프를 잠시 설명하자면, 가로축은 '인간과 닮은 정도'이고 세로축은 '(보는이들 혹은 인간들이 느끼는) 친근함'을 뜻한다.
그리고 uncanny는 1 초인적인, 초자연적인, 이상한, 비정상적인   2 섬뜩한, 으스스한  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Uncanny valley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만화 캐릭터와 같이 희화화된 캐릭터는 귀엽게 느끼고 친근감을 느끼는 반면에 그 캐릭터가 점점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 질수록 실제 사람과 캐릭터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고 그 차이로부터 불편함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이 개념은 일본의 로봇학자 Masahiro Mori 교수가 1970년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로봇과 같은 “진짜” 인간이 아닌 개체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론이다. 즉 Barely human 과 Full human 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로봇에 대한 호감도는 로봇의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 질수록 증가하다가 로봇의 생김새가 인간과 어중간하게 비슷해 지는 지점에서 급속히 떨어지고(거의 좀비 또는 시체의 수준까지) 이후 로봇이 인간과 더 비슷하게 되면 다시 증가한다고 한다. 그 변화폭은 로봇이 움직이게 되면 크게 증가한다.

참고로 아래 로봇의 사진들을 올린다.

1차 산업용 로봇. 딱 기계라는 느낌을 준다.

군사용 로봇.

인간과 닮은 로봇이라는 뜻의 휴머노이드. 2족보행을 한다.

휴머노이드의 인간과 유사성을 재현하겠다며, 아인슈타인의 머리를 붙였다. 이제부턴 역겨움이 시작된다.




영화에서 이 씬은 위의 이론이 명백하게 들어맞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누가봐도 CG이면서, 3D로 렌더링되어서 싸우는 뇌전과 무명은 우리가 쉽게 보지는 못한 장면을 재현해내서 '멋있다'라는 쾌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짜라는 느낌과 함께, 왠지 이상한 역겨움을 가져온다. (아쉽게도 영화의 한 스틸이나, 동영상 장면을 구할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영화는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배우들의 얼굴이 몰핑된 클로즈업까지 보여주는 기괴함을 감행한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아휴~하는 소리를 토해낸다. 
물론 여태껏 이런 장면을 보여준 영화가 최초는 아니다. 올해만 해도, <국가대표>에서 스키점프를 하는 선수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로 재현 불가능한 장면을 3D의 CG로 처리해서 새로운 쾌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박쥐>에서 날아다니는 송강호와 김옥빈의 모습을 비슷한 느낌의 CG로 보여준 적이 있다. 
물론 예로 든 2편의 영화들이 uncanny valley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들이 탄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두 영화들이 정말로 현실에서 실사촬영을 하기 불가능한 장면을 살짝 CG를 활용하는 선에서 그치기 때문에 용인하면서 봐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의 CG는 도가 너무 지나치다. 이야기도 따라주지 않고, 분위기도 받쳐주지 않는데, 무협 액션씬의 쾌감을 무리하게 재현하겠다는 욕심을 전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3D렌더링을 내내 돌리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는 계속해서 uncanny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나아가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서 무성의하다는 생각까지 가질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실사로 찍어주면서 정말로 무림고수들의 정통한 대결을 보이다가, 특별한 기술을 위해서 쓰는 CG였다면 조금은 용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싸우는 배경은 또 어찌나 오바인가.)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이런 실수는 대원군의 군대 동원 장면에서 또 한 번 재현된다.

또 하나 나비의 CG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제목(엄밀히는 원작의 제목)을 지어놓고, 뭔가 '나비'가 등장해야 겠다는 강박에 시달린 나머지, 쓸데 없는 CG 나비를 등장시키고 있다. 영화에서 나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괜히 쓸데없이 날아다니느라 바쁜 불쌍한 캐릭터, 나비!
(이 나비 CG를 보면서 떠올랐던 것은 오우삼의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비둘기이다. 그는 홍콩에서 활동할 당시, 실제 비둘기를 동워해서 가장 멋드러진 비둘기 장면을 찍어내곤 했다. 그러나 헐리우드에 가서 만든 영화들, 예를 들면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 2] 등에서는 CG로 만든 비둘기가 등장한다. 난 이 장면들에서 격세지감과 함께 이상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드는 "민자영"이라는 개인.

그런가 하면, '민자영'이라는 캐릭터 역시 시대의 비극과 개인의 삶이 제대로 병치되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는 영화적 이야기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데서 기인하는 게 크지만, 그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벌어지는 명성황후 민자영의 사랑은 왠지 그녀를 거꾸로 이상한 인물로 비춰지게끔 만든다.
그다지 민족주의자가 아닌 나에게도 이러한 인상인데, 혹시라도 열정적인 민족주의자가 이 영화를 본다면, 다분히도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어올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은 내가 한번 오바 해보는 거다.) 한 명의 신여성으로서 신식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고, 열강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독립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명성황후과 사랑놀음에 정신이 팔린 민자영이라는 캐릭터는 하나의 인물로 잘 섞이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영화 내에서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지, 역사안에서 명성황후 민자영에 대한 논평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잘 못 건드려서 영화 속의 캐릭터는 다 분리되고 파편되어서, 앞뒤가 안맞는 행동을 하느라고 정신팔린 인물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명성황후"라는 인물은 역사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드라마와 뮤지컬, 심지어 뮤직비디오 등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장면을 숱하게 봐왔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신화화 되어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은 또 다른 명성황후 시해장면을 찍기 위해 고뇌했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일단 그녀의 인간적, 개인적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그 성격은 출발부터 달라지는 감은 있지만, 시해장면의 마지막은 또 어이없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만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는 상투적인 대사는 국민적 정서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던 듯 하다. 이런것들을 다 빼버린다면, 관객들의 거부감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테니.. 그래서 나오는 대사는 "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이다"라는 대사였다. 이 대사에서 나오는 '국모'와 '민자영'은 영화가 명백하게 실패하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두 가지 정체성을 같이 가져갈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러나 영화 초반부부터 실패해버린 무명과 자영의 사랑의 감정을 대비 지점에서 이 대사 '국모 민자영'은 왠지 잘 붙지 않는다. 뭔가 어색한 기분을 정녕 지울 수 없다.


아쉬움과 실수의 영화, 나아가 실소를 하게 만드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토록 총체적인 어색함과 어눌함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결국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등을 좌석에서 떼어놓았다. '자영~'이라는 이름을 자꾸 불러대는 무명, 그리고 어떤 관객도 사랑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데 군란의 난리 때 도망가서 동굴에서 펼치는 사랑의 키스신(황순원의 소나기인가?), 그리고 은근 삼각관계를 병치시켜서, 질투심을 유발하면서, 자신의 승리를 누리기 위해 무명을 침소밖에 세워두고 자영과 정사를 벌이는 고종 등의 장면을 보고 있으면 계속 웃음이 나오기만 했다.
이 영화는 추석날 가족들끼리 벌인 고스톱에서의 승부를 무마하는 오락 영화가 되기는 커녕, 돈을 딴 사람이 잃은 사람이나 모두 본전 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고, 그들 모두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을 여실하게 재현하고 말았다. 정녕 uncanny valley에 빠져버린 uncanny story, uncanny movie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