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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6 [간단리뷰/까페 뤼미에르] '등'이 말하는 영화. 2
이 글은 최근 다니고 있는 카페 더 블루스의 커피미팅 후기임을 미리 밝히며..
(싸이 클럽에 썼던 가벼운 소감을 그냥 긁어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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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팅 후기는.. 다들 영화만 보고 스르륵 가시는 바람에.. ㅜ.ㅜ
소심한 저로서는 말도 잘 못걸고 그러는 터라..
(정말로 소심한거에요.. 낯가림 없는 듯.. 있는 거에요. ㅡㅡa)

영화 시작전, 정말 생크림같이 곱게 부푼 카푸치노로 속을 데워주시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정면 보기"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좌석인지라..

뭐 언젠가는 재미난 뒷풀이도 할 날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카페 뤼미에르>라는 영화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작품이구요.
어제 영화 초반 크레딧을 기억해보면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면 기념작품'이라는 자막이 있었죠.
말 그대로 입니다.

오즈 야스지로라면,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감독중의 한 명입니다.
어찌되었든 그의 탄생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영화답게 처음에 나오는 제작사 크레딧도 옛날 걸로 붙여놨지요
(이것 역시 기억하시면 좀 옛날그림 풍의 후지산 그림밑에 松竹映畵라고 쓰인 걸 보셨을 겁니다. '쇼치쿠 영화사'의 로고입니다.
물론 옛날 거에요. 일부러 옛날걸 붙인 듯...^^ 오즈 야스지로가 쇼치쿠에 소속되어 작품활동을 했구요. 이 영화도 쇼치쿠에서 만들었어요)

허우 샤오시엔 역시 현재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감독입니다.
1947 년생일거에요. 저의 아버지뻘 세대인데요. 대만 출신이고, 에드워드 양(양덕창)과 더불어 80년대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이끈 감독이구요. 그 이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대단한 감독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최근작 <빨간 풍선>은 프랑스에서 제작하여 스폰지에서도 2월에 개봉할 예정이랍니다.

간단한 내막소개였구요.
처음 보시는 분들은 조금 의아할 영화들입니다.
저 역시 그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끝도 없는 지루함에 미칠것 같았죠.
하 지만, 쉽게 생각해서 우리가 여태껏 봐왔던 영화들 (드라마, 스토리가 강하고 볼 것 가득한 영화들)이 양념을 가득히 해서 막 담근 남도식 김장김치라면, 그의 영화는 대충 살짝 간을 해서 물이 가득하게 만든 평양식 백김치 같다면 비유가 될까요?
간단히 말하면 그냥 다른 맛일 뿐입니다. 김장 김치와 백김치간에 어느것이 더 우월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 하겠죠?

저로서도 실은 <까페 뤼미에르>를 3번째 본 겁니다.
처음엔 끝도 없이 잤구요.(그의 영화를 자꾸 보아도, 여전히 처음에는 자꾸 잡니다. 남도김치에 익숙하면 백김치가 맛이 없거든요.)
2번째는 본 게 사실 처음 본거나 다름 없구요. 어제가 3번째인데... 엄밀히 2번째라고 할 수 있을 듯.

보는 와중에 혼자서 키득거려서 방해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뭐랄까 '감자조림'만 나오면.. 그렇게 재밌을수가 없어요.
요코와 엄마(계모라고 하지만, 실제 계모들이 그런정도 아닐까요? 신데렐라의 계모나 팥쥐엄마는 오히려 잘 없을 듯), 요코와 아버지 사이의 답답한 듯, 정말 우리와 비슷한 모습들을 보다보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애정가득한 시선이 가게 되구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법과도 같은 장면, 이 한 장면을 위해 13일을 찍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 지하철 장면, 하지메(아사노 타다노부)가 녹음을 하고 있는 장면이 건너편의 지하철에서 보이다가 카메라가 그걸 따라 이동해서 보면, 이쪽 지하철 안에 요코가 외로이 서있는 장면. 그 장면을 제일로 좋아했어요.
그 자체로 영화가 주제를 함축하고 있고, 거의 마법같은 장면이라서요.
그런데 어제 보면서는 요코가 아버지 집에서 자다가 밤에 기어나와서 야식을 챙겨먹고, 엄마가 따라나와서 곁에 앉아 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보니 이 장면이 더 좋다.


밥 먹는 와중에 엄마에게 '나 임신했어'라고 하는 장면. 그 전체 씬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감자조림을 좋아하는 요코의 마음을 잘 몰라서, 혹은 준비를 못해서 썰렁한 모녀관계. 그런가 하면 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니
야식먹는 딸의 곁을 지켜보는 엄마.
낮 에는 안먹고, 밤에 일어나서 야식을 먹으려는 행동들. 피가 통했나 안통했냐의 느낌도 있지만, 따로 나와살던 자식이 오랜만에 집에 가면 참 이상한 느낌이 있잖아요. 이게 우리집인지 아닌지... 맞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이 영화 안에 그런 게 잘 드러나 있어요.

요코와 하지메간의 관계도 마찬가지구요.
둘 사이에 어떤 로맨스를 기대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로맨스가 있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굉장히 열정적이거나, 서로간에 관계설정에 열을 올리는 데이트가 아니라서 그렇지.
둘 간에는 어떤 신뢰같은 게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도시의 소음과 소리들을 저장하는 하지메의 모습이 왠지 친근하거든요.
소음 자체는 싫어하지만, 도시의 소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왠지 아득함이 있어요.
만약에 하지메 처럼 누군가 소음을 녹음해서 계속 저장해둔다면, 그 소음은 언젠가 소음이 아니라 특별한 소리가 될 거에요.
얼마전 김포공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김포공항을 들어가니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거든요. 왠지 80년대의 느낌이 가득한 곳.
그런 것 처럼 하지메가 녹음한 소리들은 그런 시간성과 공간성을 담아내겠죠.
이는 다시 허우 샤오시엔 감독만이 가장 잘 찍는다는 '철도장면'들과도 연결되요.
그의 영화에는 빠짐없이 '철도', '기차' 등이 등장합니다. 그의 철도장면들은 이상스럽게 정서적으로 충만해요.
감히 도전해보고 싶지만, 너무 아득한 경지에 있는 장면들이죠.

뭐.. 두서없이 몇 마디를 적어본 거에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잘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ps. 어제 보면서 느끼는 건데, 허우 샤오시엔의 화면에서 '등'을 찍는 장면이 많아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도 인물들간에 관계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실 보통 영화에서는 등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