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뭔가 여태껏 봐왔던 영화들을 보는 것과 다른 지점이 나타난다. 지난 주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알렉산더 소쿠로프/ 특별전의 마지막날 마지막회에 이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전적인 서사에 여전히 길들어져있는 나로서는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번 특별전에서 4편의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작년에 멜번영화제에서 본 <태양>을 포함해서 5편의 영화를 보았을 뿐이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나에게 생경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서 뭔가를 적어봤자, 그것이 소쿠로프의 스타일에 관해서라기 보다는 이 영화 한 편에 대한 짧은 감상과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힌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요즘은 자꾸 그 고통을 마주하고 싶어진다. 변태가 되어가고 있다. ㅡ.ㅡ)
이 영화의 단적인 특징(?)이라면 영화 전편이 1개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탄생하고, 멜리에스가 우연히 편집의 원리를 발견한 순간 이래로, 장편영화가 온전히 1개의 쇼트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히치콕의 <로프>는 논외로 치자. 눈속임에 의한 것이니까...) 그것을 해낸 사람이다. 해냈다기보다는 상상했다고 해야 할까?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선택한 영화. 1쇼트 영화는 디지털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전히 필름은 이 영화를 배신한다. (상영 프린트의 매 권이 바뀔때마다 튄다. 디지털 상영만이 이 영화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방법이다.) 필름은 디지털로 완성한 영화적 현실을 배반한다.
1. 카메라를 타고 떠나는 하나의 경험, 엑설런트 어드벤쳐!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논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두 명의 화자를 두고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고, 한 사람은 카메라의 앞에, 또 한 사람은 전적으로 카메라 뒤에 놓여서 자칫 영화가 흐트러질 수 있는 것을 끌고 가는데 조력자의 역할을 할 뿐,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누군가 다른 의견을 제시해준다면 더 재미날 듯). 내러티브를 벗어나서 이 영화는 사실 하나의 체험이라는 생각을 했다. 혹은 거대한 항해! 영화는 카메라라는 배를 타고서 떠나는 여행이다. 카메라 앞의 화자가 저 멀리 무엇이 있는지를 내다보고, 알려주며 안내하는 자(뭐라고 부르더라...)라면 카메라 뒤의 화자는 키잡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객은 이른바 <러시아 방주>라는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거다. 그리고 미술관 안의 공간을 누비고, 역사도 넘나들며 미술과 음악에 관한 관광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내러티브 보다는 영화 자체가 하나의 여행 혹은 체험이라는 차원에서 다가가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적으로 역사를 넘나들고 만나서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을 뿐, 이는 정말로 신나는 엑설런트 어드벤쳐!! 인 셈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카메라 뒤의 긴장.
내가 영화쟁이라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드는 긴장감이 있었다. 절대적으로 머릿속으로 계속 찾아드는 물음표가 있었다. 지금 저 카메라 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저 카메라를 이끌고 가는 배우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저 사람은 카메라에서 때때로 벗어나고 있는데, 카메라를 잡고 있는 촬영감독, 또 다르게 쫓아갈 감독, 그리고 여러 파트의 스탭들. 사실 배우들은 각각 나뉘어진 공간에 따라서 카메라가 등장하는 순간에 타이밍을 맞추어서 연기를 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고 있는 스탭들은 카메라가 돌기 시작한 순간부터 멈출때까지(다시 말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쉼없이 일을 해야 한다. 이는 다시 스탭들이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거꾸로 말해 오히려 스탭들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체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3. 다시 카메라 앞으로.....
그런가 하면 수천명의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카메라에 반응(!)한다. (물론 합을 어느정도 맞추긴 했겠지만) 특히 수천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마지막 무도회 장면은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가는 동안에 지나치게 되는 수백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카메라를 비켜서고 지나치고, 카메라는 또 그들을 잘 따라가고 있다. 이쯤 되면, 영화는 카메라를 중심으로 앞과 뒤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도대체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뭐 혹자는 북한의 매스게임처럼 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무도회가 끝나고 무도회장을 빠져나가는 엄청난 인파와 그 가운데를 빠져나오는 카메라는 가히 근두운을 탄 손오공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식의 촬영은 하나의 표현 수단일 뿐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아니다'고 소쿠로프는 말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식의 촬영이 목표가 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도대체가 100분의 영화를 1쇼트로 완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면, 가서 당장에 따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표현수단이라고 한 것은 나쁘지 않은 답이라고 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영화적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커다란 가치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안에 담긴 내용을 따지는 것은 하찮지는 않겠지만 부수적이라고 생각한다.(실은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시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고려해보겠지...)
딱히 정리된 글이 아니라서 언제나 골치 아프다. 하지만 꼭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으리라....
뱀발.
만약 내가 이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고 상상했을 때, 난 이 영화를 처음에 시작할 때 뭐라고 소리치고, 마칠때는 뭐라고 해야할 지 궁금했다. 쇼트를 찍는 것이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것이기도 하고.... 액션, 컷.. 시작, 여기까지.. 뭐 구호가 중요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시작과 마무리가 굉장히 달라보이는 느낌이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 카메라를 내내 따라가는 동안에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아니면 어떻게 따라가고 있었을까? 시나리오 상 끄트머리에 다가갔을 때, NG가 나면 어떡하나?... 망연자실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얼마나 난감할까.. 별의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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