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알다시피, <인베이젼>은 이번이 4번째로 만들어지는 영화다. 잭 피니라는 소설가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4명의 자식이 만들어진 셈. 그러나 이는 돈 시겔의 1956년 <신체강탈자의 침입>, 필립 카우프만의 1978년작 <신체강탈자의 침입>, 아벨 페라라의 1993년 <바디 스내쳐즈>(국내 출시명 : 바디 에일리언)에서 현재 올리버 히르비겔의 <인베이젼>까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거꾸로 보았다. 시대의 역순을 따라가면서 이번 추석 프로젝트(?)를 실행한 셈. 괜찮은 느낌의 순서를 나열해 본다면, 첫번째로 1978년 필립 카우프만 작, 2번째로 1993년 아벨 페라라 작, 1956년작과 2007년작은 비슷한 느낌이라고 혼자서 나열해본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재미와 관심에 관한 것이며, 특별한 기준에 의거해서 순위를 매긴 것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4작품 모두가 각각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각각의 어설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영화란 보는 자의 취향과 마음에 달린 법이니까! 딴지를 건다면 내 맘대로 ‘즐!’을 날려주리라. 푸하하하..
여러 군데의 리뷰(최소한 네이버 검색에 의해서 나오는 홍성진의 영화해설이나 어떤 개인들의 영화평)들을 살펴보면 뻔히 나오는 말들이 바로 시대와 엮어내는 지점들이다. 이런 분석은 결국엔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라면 누구나 찾아낼 수 있으므로 별로 얘기하고 싶진 않다. 그런 건 내가 써도 내 것이 아니니깐. 정 궁금하면 알아서 찾아볼 것. 억지로 세로축을 사다리 삼듯 이어야 하는 부분에서만 다시 조금씩 언급하는 수준일 것임을 미리 알리는 바이다.
우선적으로 살필 영화는 당연히도 <인베이젼>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처음으로 뒤에서 들린 말은 ‘완전 무서, 완전 무서. 허리가 다 아파’라는 어떤 여성의 말이었다. 그 문장 속의 느낌은 몇해 전 내가 <큐브>를 (지금은 없어진) 동숭 씨네마텍에서 보고 나오면서 느꼈던 그러한 촉각과 동일한 것이었다. 생생히 기억하건데, 난 그 때 <큐브>를 보고 나오면서 허리에 굉장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상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허리가 굳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뻣뻣함을 느꼈던 가장 무서운 영화였고, 그 기억을 그대로 소환하는 말이었다.
한편, 그 사람의 말은 나의 기억을 떠올렸으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나에겐 그 때 그 느낌을 고스란히 재현시키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여기저기 검색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올리버 히르비겔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올리버 히르비겔이 촬영을 완료하고, 편집한 버전에 대해서 제작자(조엘 실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감독(제임스 맥테이그)을 고용하여 많은 군중씬들을 재촬영했고, 다시 편집되었다. Imdb의 데이터로는 제임스 멕테이그는 ‘not credited’이다.
그래서 일까? 올리버 히르비겔의 편집본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랬더라면, 이전의 3편의 작품들과 비해서 어떤 평가를 들었을까? 막연히 상상해 보지만, 그것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만약에 존재만 한다면, 제임스 본을 고용해서라도 그 편집본을 훔쳐오게끔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랬다면, 좀 더 이 시대상과 맞물려서 영화는 더욱 강한 인상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간단히 전작들을 얘기하자면, 돈 시겔의 작품은 당시의 매카시즘을 암시하는 바가 있고, 필립 카우프만의 작품은 70년 후반의 급격한 사회의 보수화를 꼬집는 면이 있다. 또 다른 리메이크작 아벨 페라라의 작품은 90년대 초 미국의 첫번째 이라크 침공과 관련한 미국사회의 보수성을 짚어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샛길, 무엇보다도 아벨 페라라의 작품에서는 그 변화하는 주체로서, 군인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군인들은 외계의 식물에 의해 변화했지만, 내 생각에는 군인들은 굳이 그렇게 변화하지 않았어도, 똑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그러한 공포와 경직성들을 잘 표현하는 캐릭터(?)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가서 폭격에 의해 부서지는 군대의 모습은 이상한 쾌감을 전해주고, 뭔가 아이러니컬함을 남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베이젼>은 충분히 앞의 작품들의 성향을 이으면서, 또 한편으로 독자성을 획득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2007년 현재,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서 괴뢰정부를 세워놓은 상태이다. 물론 그렇게 확대 해석 하지 않더라도, 현재 미국(한국도 다름 없지만) 사회에서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을 충분히 은유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사회는 이것을 가족주의의 온정(?)으로 치유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인베이젼>을 위시한 “신체 강탈자” 시리즈가 갖고 있는 강점이자, 독자성은 한 문장의 대사로 대표된다.
“My husband is NOT my husband.”
익숙했던 사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감정과 표정 등이 탈색되어서 나타난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위의 문장에서 주목할 것은 ‘~~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원래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일 뿐이고, 어떤 다른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된 것이 아니다. 즉, 알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대상이나 사물이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져오는 두려움은 무엇보다도 크다. 그것은 어떤 괴수보다도 무섭고, 에일리언 보다도 무섭다. 저 대사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네 편의 영화를 통틀어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 역시 그러한 ‘NOT’의 지점이다. 우리 사회안에서도 그러한 폐쇄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거꾸로 반대로 그것을 작용시키고 있다. 예전에 박노자씨는 한국사회의 폐쇄성을 언급하기 위해서 자신이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이미 귀화한 지 수 년이 지난 그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 시장의 아줌마는 박노자씨를 한국인이 NOT(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모 언론의 기사는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몇몇 출연자들의 국적인 ‘한국’임을, 다시 말해 그들이 외국인이 NOT임을 걸고 넘어지면서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그러한 연유로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고, 다들 좀비가 되어버린다. 한국에서 외국인은 ‘외계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이 영화가 1차적으로 깔고 있는 메시지는 이렇게 억지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매우 굉장한 상업적 완성도로 잘 편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메시지 따위를 지우려고 편집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히르비겔 감독의 편집본이 궁금하다.)
사실 요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녕 그러한 외계인들과 같다. 획일화하는 우익집단이 판치고, 스포츠 민족주의가 판치고,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신체강탈자’ 시리즈에서 보이는 미국의 모습과 다를 것은 크게 없을 것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볼 때 별 씁쓸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은 <몰락>을 만든 독일 감독 올리버 히르비겔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고, 그의 완성본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제작자 조엘 실버는 다른 감독을 데려다가 재촬영, 재편집을 통해서 완성한 새로운 영화가 ‘가족주의’라는 또 다른 우파적 생각으로 영화안의 비극 혹은 재난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그럼 어디쯤에 서야하는 걸까 의문이 생기지만, 그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78년판 필립 카우프만의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 답이지 않을까? 결국엔 그 도날드 서덜랜드 처럼 되는 게 아닐까?
ps. 그래서 요즘 괴상한 소리과 그 제스쳐를 연습중이다. ^^ 그건 바로 이거다
OoO☞
궁금하면, 78년작 <신체 강탈자의 침입>을 보시길.. 이걸 알고 나면 열라 무서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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