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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6 [PINA 3D] 기술과 미학 사이의 상호 작용.
드디어 PINA 3D를 보았다.
난 피나 바우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이름만 아는 수준, 그리고 무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배경지식이 없다.
그러나 빔 벤더스가 연출했다는 이 영화는, '3D'라는 수식어가 영화 앞에 붙기 시작한 이래 내게 가장 관심이 가는 영화였다.

기본적으로 그동안에 몇 편의 3D 영화를 보면서 (고전적인 기술 말고, 이른바 '아바타' 이후), 난 절대로 3D라는 기술이 왜 영화에 들어와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굉장한 피로감. 보고 있으면 어느 새 눈이 아파온다.
두번째, 인지에 관한 문제, 우리가 정말로 '입체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물론 사물의 크기에 따라서 거리감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말로 '입체'인가 라는 문제다.
르네상스 이후, 회화(2D)에는 '원근법'이 보편화되었고, 이는 사람이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법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서는 이 원근법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회화이후, 카메라가 발명되었고, 이 카메라의 렌즈는 결국 다시 원근법의 원리에 의해서 렌즈가 '하나'로 채택된다. 인류는 태초부터 눈을 2개 달고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은 아마도 '인지'(perception)의 문제다. 원근법을 이용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보는가를 정의한다. 실제로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재현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인지'하느냐 하는 감각을 재현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기에 렌즈를 하나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보편화되어있다. 즉, 사진 기술의 모든 공학에 '시간'의 차원을 입힌 '영화' 역시 하나의 렌즈로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그 자신의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해 '서사'를 도입하고, 영화는 '이야기' 중심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물론 영화의 역사 이래 여전히 치고 나오는 질문은 바로 '형식'에 관한 것이며, 무엇이 영화를 스스로 영화답게 하는가? 어떤 것이 영화적인가? 라는 질문 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아바타'를 보면서, 어떻게 이 영화를 보아야할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난 일단 이 영화가 재미가 없었다. 내용적으로!!! 뭐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입과 손이 동시에 아픈 일이고... 어찌되었건 '3D' 블록버스터. 제임스 카메론. 이라는 수식어들에서 중요하게 다뤄줘야 할 것은 결국 3D라는 기술이었다. 다시금 정성일의 글을 불러온다.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59556 또한 이 글 안에서 언급하는 다른 글. ‘최후의 승리까지 한뼘 더 필요해’ <씨네21> 736호

이 두 개의 글을 읽는 것은 나름 3D라는 기술에 대한 어떤 질문 제시로서 괜찮다. 그러나 각자의 답 혹은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리라. 나는 PINA를 보면서 비로서 질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에 몇 편 보지 않은 3D영화에서 왜 나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피곤해만 했었는지.... 일단 PINA의 특징을 몇 가지 거칠게 열거하자면,

- PINA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일종의 공연 기록영상으로써, 내용적인 측면에서 고전적인 서사가 있지 않다. 공연 자체가 중요한 내용이다.
- 이 내용은 그 자체로 형식이 된다. 공연을 찍는다는 것!
-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거의 없다. 일단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뛰고, 그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 대부분의 FS이거나 와이드샷이 많다.
- 3D를 구현하면서, 일반 2D 영화같은 심도(혹은 입체감)를 발견할 수는 없다. 전, 중, 후경에 있는 무용수들은 대부분 초점이 맞으며, 화면에서 튀어나와(!) 보인다. 그래서 눈이 바쁘다. 이것은 보통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한 점일 수 있다.

결국 2D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포커싱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포커스의 이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장면을 비스듬하게 찍어도 모든 사람을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이건 그럼 딥포커스인가? 일단 임시적으로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딥포커스라고 부를수도 있겠다. 그래서 무슨 상관이냐고? 이렇게 찍히고, 영사되는 화면에서 물음은 자연스레 나온다. 3D영화들은 애시당초 3D를 감안하고 찍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면 그 영화들은 아직 3D 시설이 없는 곳에서 본다고 했을 때 그 차이란 무엇인가? 뭔가 좀 도드라져 보인다는 단순한 대답은 여기서 그만. 그런 말을 할 사람들과는 더이상 얘기할 시간이 없다. 3D(로 찍혀진) 영화를 2D로 본다면, 그것은 과연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인가? 그 수식어에 진짜 질문이 없는 수많은 헐리우드 3D영화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들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냥 (3D) 영! 화! 이지. 3D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을 피곤하게만 할 뿐이고. 그 피로감에 대한 보상으로 약간은 도드라진 '신기함'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인식하는 '인지'에 대한 눈속임 뿐.

다시 PINA얘기로 돌아오자. 내가 받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해본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 중심으로 돌아온 세계는 이미지에 원근법을 적용시키면서 인간이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PINA에서는 새로운 지점을 제안한다. 중, 후경 들에 존재하는 풍경과 다른 인물들, 움직임들의 포커스가 맞고, 고스란히 '존재'한다. 이는 마치 르네상스의 캔버스 위에 고대, 중세의 신화적 존재가 입혀진 듯하다. 르네상스 이전의 회화들은 오히려 2D위에 2D처럼 기록했다. 한국의 민화들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작가의 자의성(혹은 또다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그려진 피사체들이 주를 이뤘고, 거의 대부분의 피사체가 초점이 맞아 있었다. 피사체들은 말 그대로 '존재'했다. PINA는 그렇게 3D를 구현해낸다. 빔 벤더스는 새로운 질문을 야기할 토양을 마련한 셈이다. 

이제 영화에서 3D란 얄팍한 신기함을 넘어, 그 자체로 형식이며, 새로운 붓이 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제 포커싱에 의한 감정적 거리 혹은 인지적 거리를 만들어내는 고전적 서사의 영화가 아닌, 그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존적 피사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이제 '3D'영화 시대의 한 발판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영화가 스스로 영화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라는 시선, 르네상스의 원근법에 종속당해서 그대로 재현되는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문학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2시간동안 우리를 붙들어두었던 영화는 이제서야 스스로 종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인간의 인지와는 관계없이 이제 영화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